# 검은 월요일
1987년 10월 19일, 미국 다우존스제조업지수(DJIA; Dow Jones Industrial Average Index)는 단 하루 동안 23%나 폭락했다.
우리는 이 날을 일컬어 블랙먼데이(Black Monday), 즉 검은 월요일이라 부른다.
이 날 수많은 시장 참여자들은 혼돈 상태에 빠져버렸고, 또 많은 플레이어들이 부도를 냈다. 검은 월요일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주식시장 폭락으로 기록되었다.
블랙먼데이가 발생한 직후, 그 당시 미 연준의 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즉각적으로 금리를 내리고 시중에 통화를 공급하여 추가적인 경제 위기의 발생은 피할 수 있었으나, 블랙 먼데이 사건은 금융시장의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흔을 남겼다.
# 포트폴리오 보험
블랙 먼데이 발발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바로 포트폴리오 보험이라고 불리는 녀석이었다. 포트폴리오 보험(Portfolio Insurance)은 기본적으로 주식 포트폴리오의 하방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현물이 아닌 지수 선물을 매도하여 포트폴리오 헤지를 추구하는 전략이었다. 1976년 두 명의 젊은 금융공학자인 헤인 리랜드(Hayne Leland)와 마크 루빈스타인(Mark Rubinstein)은 포트폴리오의 위험을 헤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바로 이 포트폴리오 보험이라는 전략을 고안해내었다.
기본적으로 이 포트폴리오 보험이라는 것은 블랙숄즈 옵션 모형을 토대로 시장의 변동성을 계산해 그에 따라 현금과 주식의 비중을 조절하는 기법이다. 그들은 블랙숄즈 모형을 사용한 다이나믹 헤징을 하면 선물 매도를 통해 주식에 대한 풋옵션을 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러한 포트폴리오 헤징 전략은 1982년에 S&P 500 지수에 대한 선물계약이 시카고상품거래소에 상장되면서부터 더욱 인기를 끌게 된다.
그들의 의도는 매우 좋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블랙숄즈 모형이 가정하고 있는 아주 제한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 하에서만 완벽히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포트폴리오 보험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선물에 대한 매도 포지션을 통해 풋옵션을 구축하는 것인데, 이는 근본적으로 지수가 빠지면 빠질수록 더 많이 선물을 매도해야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시장에 수많은 포트폴리오 보험 포지션이 구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수가 더 빠진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연출될까? 시장에 매도를 받아줄 거래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유동성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리며 선물시장과 현물시장 모두에서 과대한 낙폭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포트폴리오 보험을 사용함으로 인해 매수 주체의 실종이 발생했으며 지수의 하락이 대규모 매도세를 부추겨 결국 이것이 블랙 먼데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퀀트들에 의해 창조된 모델이 결국 그것의 기반인 금융시장을 강타한 것이었다.
# 벨커브 :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처럼 금융공학자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블랙숄즈 세계는 결국 금융시장 역사상 최대의 시장 하락을 창조해냈다.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은 주가의 랜덤워크라는 허상 위에 건설되었으나 실제 세상은 매우 큰 가격 변화들이 랜덤워크 가설이 생각하는 정도보다 더욱 빈번하고 요란하게 발생하는 곳이었다. 아주 예쁜 정규분포 곡선은 결국 퀀트들의 플라토닉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었고, 현실은 양쪽 끝부분이 들린 두터운 꼬리(Fat-Tail) 분포를 보였다.
금융공학자들의 이러한 프로크루스테스적 오만은 결국 금융시장을 그들이 만들어낸 모델이라는 침대에 의해 시시때때로 고통받게 만들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발생한 전 세계적 경제 위기 또한 이러한 금융사적 맥락과 그 궤를 같이 한다.
# 변동성 스마일과 변동성 모델링의 시작
블랙먼데이는 역사상 전례 없는 시장의 대폭락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블랙숄즈 모델이 상정한 가정을 보기 좋게 짓밟아버렸다.
블랙숄즈 모델은 변동성을 상수로 가정했는데, 그것은 시장의 변동성이 행사가와 만기에 대해 독립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 말인즉슨 옵션 시장의 변동성이 행사가와 만기에 상관없이 일정한 모습, 즉 잔잔한 호숫가의 표면과 같은 모습을 띄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블랙먼데이가 발생하기 이전의 옵션 시장은 아래의 그림과 같이 블랙숄즈 모델의 가정을 꽤 잘 설명했다.
하지만 블랙먼데이 사태 이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블랙먼데이를 경험한 시장 참여자들이 이제는 급작스러운 시장의 폭락에 대한 공포심을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행사가가 매우 낮은 과외가격(DOTM; Deep Out-of-the-Money) 풋옵션의 내재변동성이 이전보다 급격히 상승하게 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처럼 외가격의 내재변동성이 상승한 모습이 마치 웃는 모습 같다 하여 이러한 현상을 변동성 스마일이라 일컬었고, 이는 결국 블랙숄즈 모델이 하나의 모델에 불과하며 모델이 현실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동성 스마일 현상은 단지 주식 옵션 시장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외환, 채권, 원자재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다른 옵션 시장에도 널리 퍼지게 된다.
금융공학자들은 이제 블랙숄즈 모델이 절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시장의 변동성은 고정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비로소 변동성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변동성이 고정적이지 않다고 한다면 과연 이 변동성이란 녀석은 어떤 방식 혹은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변동성 모델링(Volatility Modeling)이라는 세계의 문이 이제 막 열리려고 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