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그리고 딥시크에 이르기까지, 가히 AI들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AI의 성능은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비용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AI는 삶의 곳곳에 스며들고 있으며, 이제 AI 없는 생활로 되돌아가기는 불가능해졌다. 물론 돌아갈 수는 있겠으나 누구도 굳이 그런 수고로움을 기꺼이 겪으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AI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이거다. 과연 내 직업 혹은 내가 현재 추구하고 있는 커리어 패스가 AI로 대체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만약 그 가능성이 높다면 현재 우리는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까? AI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을 또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이번 달 한국은행에서 발간한 BOK 이슈노트 <AI와 한국경제>에서는 결국 어떤 직업군이 AI에 쉽게 대체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가를 매우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보고서의 핵심 골자 중 하나는 AI 노출도와 AI 보완도다. AI 노출도는 어떤 직업이 AI에 의해 어느 정도 대체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며, 한편 AI 보완도는 AI로부터 인간의 직업이 보완되고 오히려 생산성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AI 노출도와 AI 보완도를 두 가지 축으로 하는 4분면을 만들고 각 직업군이 이 4분면의 어디에 속하는지를 매우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위의 그래프에서 주목할 부분은 당연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AI 노출도가 낮다는 것은 사실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낮아 미래 변화에 대한 민감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AI 노출도가 낮은 직군들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AI를 사용했을 때의 한계비용이 인간 노동력의 한계비용보다 오히려 높아 굳이 AI를 쓸 경제적 유인이 없는 직업군들이거나 혹은 사람을 직접적으로 대하는 하이 터치가 필요한 일들이다. 한마디로 비디지털 세계의 일들은 AI에 의한 대체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AI로 인해 실직의 위험 혹은 임금 하락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바로 4사분면, 즉 AI 노출도는 높으면서 AI 보완도는 낮은 단순 사무직 같은 일들이다. 만약 자신의 일이 컴퓨터로 하는 일이지만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내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이 없다면 곧 위험이 다가올 것임을 감지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비해야만 한다. 결국 AI노출도가 높은 직업군들 중에서 향후 AI로 대체될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은 바로 '의사결정의 유무'다. 비록 AI 노출도가 높아도 인간이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직업이라면 이는 AI 보완도가 높아 AI를 활용해 오히려 자신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또 이로 인해 임금 상승의 혜택도 누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함의는 이거다. AI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체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보조적인 일들은 전부 AI가 떠맡아하게 될 것이고 인간은 오직 코어한 일들, 즉 현명한 판단을 내리고 또 거기에 책임을 지는 일들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는 마치 아이언맨과 그의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와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이는 이제 학교 공부만으로는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그저 주어진 것을 습득하는 매우 수동적인 방식의 교육이었다. 이는 학생을 글라이더형 인재로 만들어 바람을 타고 떠다니게 만들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엔진을 장착해 스스로 방향을 잡고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는 비행기형 인재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AI 시대에 글라이더형 인재는 결국 폐기처분된다. 왜냐하면 정해진 답을 내는 것은 이미 AI가 훨씬 더 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챗GPT나 클로드 같은 AI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느낀 점은 이제 굳이 퀀트 리서처나 퀀트 디벨로퍼 같은 직군이 굳이 필요할까 하는 점이다. 예전에는 '사람 좀 뽑아주세요.'라고 말했다면, 이제는 '챗GPT나 클로드 좀 구독해주세요.'라고 회사한테 요청한다. 한 달에 20불만 내면 리서치도 코딩도 뚝딱이다. 이제 웬만해서는 AI가 인간보다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심지어 얘네는 파업도 안하고 휴가도 안쓰며 먹지도 자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나를 위해 일해준다.
이처럼 그저 주어진 일을 하는 건 이제 AI의 영역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중요한 것은 능동성이며 인문학이고 철학이다. 스스로 사고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만이 AI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보다 극단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판단하는 철학자와 그 철학자를 보필하는 AI의 시대'가 될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해 본 적이 없거나 삶과 일 속에서 굵직굵직한 의사결정을 내려본 경험이 없다면 정말로 주의해야 한다. AI가 바로 그 자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