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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부채는 없다

by 퀀트대디


정부가 돈을 미친 듯이 찍어내는 게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버리면서 요새는 어딜 가나 부채가 과도하다는 이야기를 정말 쉽게 접할 수 있다. 부채가 역사적 수준에서 볼 때 너무나 과도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채가 많은 국가들은 곧 금융위기나 대공황을 겪을 수 있다는 게 이러한 이야기들의 골자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실제로 이렇게까지 부채가 많았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사실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부채를 가져다 쓰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가 바로 신용 창조이기 때문이다. 신용 창조를 쉽게 말하면 결국 돈을 빌려다 쓴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발생한 부채가 사회의 어느 곳에 투입되어 사용되고 있는가다. 다시 말해, 생산성이 나오는 곳에 부채의 리소스를 몰아주면 그것은 경제 시스템 내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에 건강한 부채가 된다. 하지만 그 부채의 사용처가 어떠한 생산성도 제공하지 못하면 그 부채는 그야말로 악성 레버리지가 되어 결국엔 파국을 맞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판단해야 할 것은 한 나라의 가계, 기업, 정부가 일으킨 부채가 새로운 부가 가치를 생산하고 있는데 사용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 지다. 신용 창출의 원리는 결국 돈을 빌린 사람이 그것을 바탕으로 갚아야 할 원리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냈는가에서 비롯된다. 무형의 신용이 발생한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더 큰 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신용을 공여한 것에는 충분한 메리트가 있다. 하지만 빚을 냈는데 새로운 부가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고 돈만 날리게 된다면 그때부터 경제는 신용 창출의 역방향인 신용 파괴의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투자 구루 중 한 명인 켄 피셔는 그의 저서 『주식시장은 어떻게 반복되는가』에서 부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 국가의 재정에 치명상을 가한 것은 지나치게 사회주의적인 정책이었다.

1950~1970년대에 영국의 성장이 지체된 것은 부채 부담보다 대처 정부 전까지 이어진 강한 사회주의 정책 기조와 관련이 있었다고 본다.

본질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위한 요소를 모두 갖춘 나라들은 부채가 많아도 감당할 수 있다.

- <주식시장은 어떻게 반복되는가> 中


결국 부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부채가 건강한 부채인지 아니면 악성 부채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부채만 볼 것이 아니라 대차대조표 상에서 그 부채가 어떤 자산에 매칭되어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가령 레버리지를 일으켜 어떤 상업용 부동산을 취득했다고 해보자. 만약 그 부동산에서 매달 원리금을 갚고도 남을 만한 충분한 캐리 수익이 큰 위험 부담 없이 계속해서 나온다고 한다면 그 부채는 건강한 부채다. 그러나 만약 그 건물에 들어오려고 하는 임차인이 한 명도 없고 계속해서 공실이 발생해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부채는 도리어 악성 부채가 되고 해당 부동산은 부실 자산이 된다. 즉, 부채의 꼬리표는 매칭되어 있는 자산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돈을 빌려다 쓰는 것은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빌린 돈으로 뭔짓거리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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