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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미시구조와 내비치는 세계

by 퀀트대디

# EMH라는 신기루

금융시장에서 가격은 왜 움직이는 것일까? 이에 대한 가장 단순한 답은 당연히 새로운 정보(Information) 때문이다. 시장에 새로운 뉴스가 흘러들어오면 투자자들은 어떤 자산에 대한 미래 현금 흐름을 다시금 계산하게 되고, 그 결과 가격은 달라지게 된다.


효율적 시장 가설(EMH, Efficient Market Hypothesis)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 주장한다. "가격은 모든 정보를 이미 반영하고 있으며, 그 반영은 즉각적으로 일어난다." 즉, EMH에 따르면 어느 시점에서든 거래는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반영한 자산 가치에 대한 최선의 추정치와 동일한 가격으로 이루어진다. 자산 가치에 대한 최선의 추정치, 우리는 이를 기본 가치(Fundamental Value)라 부른다. 결국 EMH의 주장은 수학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할인율이 빠져있는데 그 이유는 장중의 매우 짧은 기간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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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가격 변동을 주도하는 것은 새로운 정보뿐이며, 자산 가격은 이용 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본 가치에 '즉시' 수렴된다. 따라서 가격 변동이라는 것은 완전히 예상치 못한 정보에만 기인해야 하며, 과거 정보, 특히 이전 가격 변동으로부터 예측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EMH는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바로 '도대체 시장이 어떻게 효율적일 수 있냐?'는 것이다. EMH의 결과는 그 결과만 놓고 본다면 굉장히 우아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철저히 생략되어 있다. 즉, '위의 수식이 성립하게 되는 과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EMH는 답을 할 수가 없다. 이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거래 과정의 세부 사항과 시장 참여자들이 보유한 정보의 본질에 대한 더 구체적인 요건들이 필요하지만, EMH는 그런 현실적인 부분들을 철저히 무시해버린 채 다음의 가정들을 앞세워 현실을 외면해버린다.


투자자들/트레이더들은 시장 조성자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시장 조성자들은 위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위험 중립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시장은 완전 경쟁적이다.

증권을 거래하는 데 있어서 거래 비용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



# 마찰투성이의 시장

실제 시장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EMH가 상정한 이러한 전제들이 지나치게 이성적이며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 장 필립 부쇼와 그의 동료들이 함께 저술한 논문 『Stock Price Jumps: News and Volume Play a Minor Role』에서 그들은 뉴스와 시장 변동성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는데, 그들의 결론은 꽤나 의외였다. 왜냐하면 이 논문의 결론은 특별한 뉴스가 없이 주가가 변동한 사례가 훨씬 더 많았다는 것, 그리고 아래의 그림과 같이 오히려 확실한 뉴스가 있을 때는 시장이 빠르게 안정화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극심한 가격 변동이 더 오래 지속되었다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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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결론은 뉴스 발생만으로는 주식 시장의 가격 움직임을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의 전통적인 답변은 새로운 정보가 유입되어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치가 수정되기 때문에 가격이 움직인다는 것이었으나, 현실은 이와 달랐다. 뉴스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계속해서 움직였으며 심지어 때로는 꽤 큰 폭으로 움직였다. 이는 '거래 행위 자체' 즉, 주문 흐름(Order Flow)의 변동이 시장 가격의 변동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효율적 시장 가설은 시장을 보다 단순화시켜 추상적으로 이해하기에 기준점이 되는 모델임에는 분명했지만, 이는 현실의 중요한 측면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과 조우하게 된다.


"그렇다면 시장의 현실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모델이 필요할까?"


바로 여기서 시장미시구조론(Market Microstructure Theory)이 등장한다. 시장미시구조는 EMH가 외면했던 가정들을 하나씩 현실적으로 완화해 나가면서,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내려 한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오롯이 직시하는 것이다. 시장미시구조론은 마찰투성이의 시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 금융시장의 내비치는 세계를 찾아서

귀멸의 칼날에서 주인공 탄지로가 극한의 위기 속에서 불현듯 도달하게 되는 경지가 있다. 바로 ‘내비치는 세계’다. 이 경지에 이르면 단순히 눈앞의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혈관, 근육의 움직임, 심지어는 숨결까지 투명하게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표면 아래의 보이지 않는 진짜 움직임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춰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금융시장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은 주가라고 하는 표피적 수준의 가격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 가격이라는 것을 그저 외생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가격은 수많은 주문, 유동성 공급자, 투자자 심리, 정보 비대칭이 뒤엉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즉, 겉으로 보이는 가격만 바라보는 것은 적의 칼끝만 보고 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이면에는 호가창의 두께, 주문 흐름의 불균형, 스프레드의 크기, 마켓 메이커의 재고 위험과 같은 보이지 않는 힘들이 숨어 있다. 시장미시구조론은 금융의 영역에서 이러한 숨겨진 힘들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렇기에 시장미시구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금융시장에서의 ‘내비치는 세계’를 얻는 것과도 같다. 즉, 시장미시구조는 단순히 가격을 넘어서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과 메커니즘을 꿰뚫어 보게 해준다. 우리가 매일 보는 주가는 사실 시장의 겉모습일 뿐이다. 사실 그 이면에는 훨씬 더 복잡한 움직임이 숨어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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