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과 삶, 트레이딩 그리고 불확실성

by 퀀트대디

나는 프로 바둑 기사들에 대한 컨텐츠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그들의 생각 흐름을 면밀히 따라가다 보면 결국 바둑에 대한 그들의 사고방식 및 태도가 트레이더의 그것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출간된 저서 『이세돌, 인생의 수읽기』또한 트레이더의 멘탈 훈련을 위해 종종 들춰보고 읽어야 할 참고서임에 틀림이 없는 책이다.


한 명의 트레이더로써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프로 기사들의 삶과 생각을 이따금씩 흡수해 심리적 훈련의 도구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는 바둑과 삶, 그리고 트레이딩이 '불확실성'이라는 하나의 본질로 엮여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불확실성 하에서 어쨌거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의사결정을 내리기 싫은 회피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프로 기사는 수를 두고 트레이더는 포지셔닝을 해야만 한다.


바둑에서 '수읽기'란 정답을 맞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의 의도를 해석하고, 앞으로 펼쳐질 가능성의 지형도를 그려보는 일이다. 트레이더의 '장세 판단' 또한 마찬가지다. 장세 판단이란 시장이 내일 오를까 내릴까를 맞히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정확한 예측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지금 시장이 어떤 칼라를 띠고 있는지, 리스크 온에 가까운지 그렇지 않은지, 추세적 움직임이 지배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시장 참여자들의 포지션이 어느 쪽으로 더 쏠려 있는지와 같은 현재 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단서들을 종합해 앞으로 펼쳐지게 될 확률 분포를 그려보는 일이 바로 트레이더의 장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해야 할 사실은 시장이 절대 단일한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은 오직 확률만을 제공할 뿐이다. 숙련되지 않은 초보 투자자나 트레이더들은 불확실성을 그들이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착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더 많은 지표를 갖다 붙이고, 더 복잡한 모델을 만들려고 하며, 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불확실성이란 잘못된 것 즉, 오류가 아닌 시장의 본질 그 자체다. 이러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트레이딩은 두 가지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데, 한 가지 극단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이며, 다른 반대쪽 극단은 한 번의 결정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둘 다 살아남지 못하는 것은 매우 자명하다.


시장에서의 리스크란 단순히 손실 위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리스크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하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내린 결정에 의해 손실이 발생하는 위험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잠재 수익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위험이다. 일반적으로 리스크라고 하면 첫 번째 유형의 리스크만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두 번째 유형의 리스크 또한 절대수익을 만들어내야 하는 트레이더에겐 크나큰 리스크다. 따라서 트레이더라면 모름지기 현재 상황에서 이 두 가지 형태의 위험 중 어떤 것이 더 큰가를 비교해 확률적으로 베팅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결국 바둑이나 트레이딩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능력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전제로 책임감 있게 결단을 내리는 태도다. 완벽한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순간, 시장의 기회는 이미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프로 기사가 최선의 수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묵묵히 흐름을 읽고 돌을 놓듯, 트레이더 역시 불완전한 정보와 흔들리는 확률 속에서 지금 이 순간 가장 합리적인 포지션을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이 항상 옳을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의 합리적 판단 기준과 리스크 관리 원칙 위에서 내려진 결정이라면 그 결과는 다음 수를 더 잘 읽기 위한 자양분이 된다.


바둑이든 트레이딩이든, 그리고 삶이든 마찬가지다.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불확실함에도 침착하게 자신이 설계한 전략과 판단을 믿고 매 순간 자신의 수를 두는 사람만이 판 위에 끝까지 남아 있을 수 있다. 트레이더인 내가 조훈현 국수와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 같은 세기의 승부사들에 존경을 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마감][원데이클래스]인플레이션, 자산배분으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