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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Mar 13. 2021

스토리텔링

퀀트 투자와 일곱 개의 대죄

# 옛날 옛적에, 스토리텔링

일곱 개의 대죄 중, 그 세 번째는 바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서사, 즉 이야기를 좋아한다. 만약 청중을 사로잡는 발표나 연설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면,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조언들 중 하나는 바로 스토리텔링을 하라는 것이다. 단순한 사실이나 숫자를 무작정 늘어놓기보다는 어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매개로 사용한다면 이를 통해 우리는 청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일례로, 새치기를 하는 실험에서는 무작정 끼어들었을 때보다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새치기를 할 때 확률이 더 높았다고 한다. 서사의 파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투자 영역에서도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직관을 가졌다고 느낄 때 좀 더 확신을 가지고 편한 마음으로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만약 어떤 패턴을 찾았을 때 우리가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그럴듯한 스토리를 항상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는 표본 외 성과와 큰 관련이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오류는 우리가 쉽게 가지게 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즉 우리가 발견한 패턴에 대한 정보만을 찾으려 하고 그렇지 못한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과 깊은 연관이 있다. 어떤 패턴이 보이는 것 같기만 하면 그 패턴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증시가 움직이는 것에 대해 무조건 그 원인을 설명하려 들고 또 이를 기사화하고자 하는 것 또한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 밸류 팩터 성과와 스토리텔링의 오류

영업이익률을 사용하여 주식 영역에서의 대표적인 리스크 팩터인 밸류를 예로 들어보자. 학계와 실무에서 밸류와 모멘텀은 아마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받아들여진 팩터들이 아닐까 싶다. 만약 미국 주식에 대해 밸류 팩터를 사용하여 87년부터 97년까지의 백테스팅을 해보면 아래의 그림처럼 이 팩터는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안겨다 줄 것이다.

87년부터 97년까지 밸류 팩터의 성과 추이 (출처: Deutsche Bank)

즉, 이 시기 동안에는 저평가된 주식을 사고 고평가된 주식을 파는 전략의 성과가 매우 좋았던 시기였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의 스토리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가치주가 매우 위험한 주식들과 같아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투자자들이 과잉 확신에 빠져 계속 핫한 주식만을 찾다 보니 이러한 주식들의 미래 수익률은 실망스럽다는 주장이다. 이 두 가지 스토리 모두 어느 정도 신빙성 있게 들린다. 자, 그럼 가치주에 투자를 해보자.

97년부터 2000년 중반까지 밸류 팩터의 성과 추이 (출처: Deutsche Bank)

그런데 웬걸 97년부터 2000년 중반까지 밸류 전략으로 투자를 했다면 정말 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 아래의 그림과 같이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전략이 무려 70%의 손실을 보였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신경제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이 신경제라는 개념의 탄생과 함께 사람들의 이목이 전부 기존의 산업에서 IT 쪽으로 쏠렸기에 가치주가 소외를 받았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그 당시 핫했던 이른바 닷컴 주식들로 인해 가치주들이 소외되었고 이로 인해 밸류 전략의 성과는 부진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신경제의 스토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IT 붐은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쓸쓸히 막을 내렸고, 이후 다시금 밸류 스타일의 전략은 성과를 빠르게 회복했다.

2000년대 초반 밸류 팩터의 성과 추이 (출처: Deutsche Bank)

스토리텔링의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떤 전략이나 팩터의 성과를 매우 협소한 시각에서 그리고 근시안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만약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밸류 전략의 전체 성과를 한 번 조망해본다면, 아까 우리가 언급한 테크 붐과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닷컴 버블 시기에 이 전략의 변동성이 매우 컸을 뿐이지 사실 이것이 밸류 전략의 성과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원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스토리텔링의 오류는 매우 단기적인 관점에서 팩터 성과의 원인을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데서 비롯된다.

전체 기간에 대한 밸류 팩터 성과 추이 (출처: Deutsche Bank)


# 스토리텔링에 대한 해결책

그렇다면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가장 기초적인 접근법은 가능한 한 많은 역사적 데이터를 가지고 백테스팅을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여러 번의 경제 사이클과 정책 사이클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접근법은 통계적인 확신을 높인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로 너무 과거의 데이터는 현재의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즉, 자연과학과 다르게 금융 시계열 데이터는 정상성을 띠지 않는데서 생기는 우려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한 한 오랜 기간의 데이터를 사용하되 서로 다른 경제 사이클 및 정책 사이클에 따라 국면을 나눌 필요가 있다. 각각의 국면에 따라 같은 팩터라고 하더라도 성과의 특성은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면 전환(Regime Shifts)의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기준을 만들어놓고 성과분석을 한다면 단기적 이벤트에 따라 스토리텔링의 오류를 범하는 우는 피할 수 있다. 물론 국면을 나누고 이를 분석하는 일은 퀀트 투자자들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숙제들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마지막으로는 패턴을 설명하는 일에 그리 힘을 쏟지 않는 방법도 있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사용한 패턴인식 기법들이 바로 이러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우리가 아닌 모델이 패턴을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패턴을 찾을 뿐 이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적어도 패턴이 단기적으로는 유지될 것이라고 가정하며, 소위 통계적 차익거래라 불리는 전략은 이러한 생각을 따르고 있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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