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분의 일 Jul 11. 2023

당신만을 위했다 말하고 나만을 위했다 쓴다.

사랑하는 사람만을 위한다 생각하며 저 만을 위해 사랑했습니다.

오늘은 보기 좋은 글보다는 그저 솔직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누구나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만나는 경험을 합니다. 해가 뜬 뒤 차갑게 식어있던 공기가 뜨거워지고 해가 지면 뜨거운 공기들은 다시 차갑게 식어갑니다. 만남도 이별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거의 1년 동안을  길 면 길었던 병원생활로 인해 누워서 하늘도 아닌 천장만 바라보며 퇴원을 한 뒤에도 제가 가지고 있던 삶에 대한 욕심들을 내려놓고 살았습니다. 가질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것들에 욕심을 부리면 결국 괴롭고 힘든 것은 저 자신임을 알기에 흘러넘치던 욕심들을 남김없이 비워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의욕도 없고 열정도 없는 삶을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저의 건강, 일상, 욕심과 야망은 제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고 소중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저의 어리석었던 선택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저의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포기하고 잃게 했습니다. 저의 건강을 잃어버리게 되니 욕심과 야망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당연하게도 저의 일상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흔하게 말하는 죽지 못해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죽어있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 시간 동안 제가 이루어낸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단 한순간도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요.


그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던 중 저에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던,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것 같던 상상도 못 한 만남이 찾아왔습니다. 오직 그분을 만나고 싶다는 욕심과 다짐만으로 저 자신을 가둬 놓았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고, 그렇게 무서워하던 망가진 저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저는 그저 목발을 짚고 걸었습니다. 그저 한 없이 걸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은 방금 해가 다 떠서 선선한 새벽에 잠옷 차림으로 산책을 나갔었는데 유독 그날 제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빛이 힘내라고 말해주는 그분의 말 한마디처럼 따스할 수가 없었어요. 가던 길을 멈추고 멍하니 하늘을 보면서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마 지나가는 사람들은 제가 굉장히 위험하고 사연 많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을까요?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어떻게 그렇게 하나씩 이루어내기 시작한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그분이 주신 힘을 받고 계기를 받아들였을 뿐이에요. 그분은 막다른 길에서 그저 서있기만 하던 저에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기에 저는 그저 그 길을 걸었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이것 또한 그분의 힘이겠지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두 번 다시는 절대로 겪어보지 못할 경험이라 생각해요.


그 분과의 거리와 저의 성치 않은 다리 때문에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운전대를 다시 잡아야 했습니다. 다시 운전을 하기 전까지 운전대를 잡지 않아서 몰랐었는데 저도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것이 있었나 봅니다. 손에 땀이 날 때까지 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고 다시 운전에 익숙해지기 위해 운전연수를 했던 것이 떠오르네요. 앞차와의 간격이 가까워지거나 옆에 다른 차가 다가오면 괜히 식은땀이 다 나기도 하고 괜히 운전대를 더 꼭 잡기도 했지만 다시 방문을 열고 나왔던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들을 견뎌냈던 것처럼 어렵게 찾아온 소중한 만남이었고 다시는 포기해 가면서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견뎌냈고 이겨냈습니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많이 익숙해져서 날 좋은 날에는 괜히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는 정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처음 그 분과의 만남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떠오릅니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고 죽어있다 그저 죽지 못해 살고 있던 제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날인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정말 흔해 빠진 말이지만 이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기에 첨언을 하나 해보자면 저는 그날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날은 비가 많이 내리던 밤이었습니다. 고속도로 운전도 그렇고 빗 길 운전도 다시 운전대를 잡고 난 뒤 그때가 처음이라 정말 손에 땀이 그날 하늘에서 내리던 빗방울 같이 날 정도로 긴장을 많이 하기도 하고 바들바들 떨면서 운전을 했던 날이었습니다. 아마 옆자리에 누군가 있었다면 정말 배꼽을 잡고 웃었을 것 같아요.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긴장한 표정과 바들바들 떨면서 혼잣말로 스스로 다독이면서 운전을 했었으니 말이에요. 그분이 있던 곳은 제가 있던 곳과 두 시간 정도의 거리였지만 그날은 차가 막히지도 않았는데 세 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네요. 그런데도 제가 느끼기에는 그저 그분을 만날 생각에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금방 도착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곳, 굉장히 낯선 곳이기도 하고 내리는 비 덕분에 사방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날 제가 어떤 길로 갔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그날 밤늦은 시간 덕분에 짧은 시간 동안 그토록 고대하고 기다리던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날 밤을 떠올리면 괜히 제 마음이 다 떨려오네요. 혹시라도 망가진 저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지는 않을까, 보고 놀라서 도망가면 어떡하지, 만나기 직전까지도 그냥 어렵겠다 말하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지 정말 별의별 걱정을 했던 것 같아요. 그만큼 저에게는 소중했던 분이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조심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조수석 의자에 있던 먼지도 거슬려서 전부 닦아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차피 밤이고 비도 와서 잘 보이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렇게 쌀쌀했던 날씨와 비까지 내려 추운 밤은 오래된 차 안에서 저는 그분의 얼굴을 보며, 그분은 저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고 서로 조심스럽게 알아가며 점점 따뜻하게 무르익어갔습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대화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올 때는 짧았던 만남의 깊은 여운 속에서 헤엄을 치면서 왔던 것 같아요. 얼마나 깊던지 잠겨 죽어도 좋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 뒤로는 서로 시간을 맞춰가면서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어요. 그때를 하루에 비유를 해보면 정말 해가 쨍쨍하게 드는 정오 같은 느낌이었어요. 왜 그런 느낌 있잖아요. 만화 영화 같은 곳에서 태양빛은 따스하게 느껴지고 새들은 지저귀며 행복하듯이 날아다닐 것 같은 느낌말이에요. 그렇게 세상에 정말 둘 만 살아가는 것처럼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만났던 것 같아요. 한 편으로는 무섭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제 주변에 힘들어하는 가족들 옆에서 제가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괜찮은지 싶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정말 어렵게 찾아온 만큼 이런 저의 두려움 때문에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 미친 듯이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분 옆에서는 정말 단 하나의 걱정도 없이 진심으로 웃어 보일 수 있었어요. 생각보다 일상 속에서 진심으로 웃을 기회가 많지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세상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일상을 선물해 준 그분께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 이렇게 웃는 거였지’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때, 그 순간만큼은 그분도 저와 같았었다면 좋겠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순간들이 영원이 됐으면 좋았겠지만 저와 그분의 관계에서 해가 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왔어요. 그저 다 견뎌냈고 이겨냈다고 생각하며 살아갔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전에 글에서도 쓴 적이 있었지만 다 견뎌냈고 이겨냈다고 생각한 저의 오만함은 저 스스로 저 자신의 못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부분들을 애써 보이지 않게 덮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많은 수술자국, 흉터들이 남은 저의 다리처럼 제 마음에 있는 흉터들은 보이지 않았기에 생각도 못했죠. 그분과 연애를 하면서 가끔씩 제 마음속에 있는 흉터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저 허울 좋은 일을, 행동을 하면서 보지 않고 보이지 않게 덮으려고만 했던 것 같아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저는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으면서 저의 바뀌어버린 가치관, 연애관을 인정하지 않고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말 그대로 그저 순간의 행복, 감정의 충만함만을 원하고 좇고 그런 감정에 잠겨 바로잡을 수 있는 저의 시야 또한 흐려졌죠. 이런 부분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터지고, 생겨서 더 이상 그분과의 만남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스스로도 이런 부분들을 그분과의 연애를 통해 저 자신을 마주할 때 느낄 때가 있었고, 그분 또한 저에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럴 때에도 그저 허울 좋은 말들과 일들로 보이지 않게 덮으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니 그때 저를 진심으로 믿어주었던 그분에게는 진심으로 고마운 감정뿐이에요. 저는 그분에게 믿음을 바라면서 점점 믿음을 깨버렸고 정작 저의 옆에서 믿음을 주던 건 그분이라고 생각해요. 그저 내가 좋으니 당신도 좋을 거라, 내가 깊으니 당신도 깊어야 한다 생각하며 그분의 마음에 대한, 시간에 대한, 순간에 대한 존중 없이 무리하게 시간을 내면서 만나고, 마찬가지로 부담스럽게 여유를 쪼개가면서 선물을 준비하고, 사랑한다 말했던 모든 것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저 자신만을 위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하면 저를 만나는 동안 그분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망가졌을지, 외롭고 고독했을지 손이 떨릴 정도로 괴롭고 아프기만 합니다. 매 순간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던 저를 그 속에서 꺼내주었는데 저는 제 옆에 있겠다 말해주던 그분을, 저 스스로를 사랑이라는 이유로 다시 지옥으로 몰아세웠어요. 아마 소중한 것들을 잃어보고 그 뒤에 삶을 겪어봤기에 그 분과의 만남이 사라져 버린 지금과 같은 상황이 더욱더 무서웠던 것 같아요.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다시는 그때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거든요. 욕조 속을 어둠으로 가득 채워 그 안으로 들어가 있는 기분이라고 말하면 상상이 될까요. 어둠이 가득 채워진 어둠 속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면 어느새 어둠이 저의 온몸을 감싸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리고 저의 머릿속은 그저 절망과 무력함으로 가득 차는 기분이에요. 누구라도 이런 기분으로 스스로의 삶을 버리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솔직한 마음으로 아직은 많이 아프고 그리운 것 같아요. 그동안 쌓아왔다고 생각한 것들이 전부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이었고 저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뿐이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써왔던 글들이 너무 싫어져요. 사실 저도 지금 저에게 닥친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도 모르고 상처투성이에 제 옆에 있는 한 사람조차 존중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브런치 작가 소개란에 야심 차게 적은 글로 저를 이겨낸다고 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오로지 저만을 위한, 저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글을 쓸 생각입니다. 그저 허울 좋은 일들로 덮어놓고 마주하지 않았던 저의 마음속 흉터들을 마주해 보려고요. 솔직히 좀 무섭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계속해서 누군가를 상처 내고, 다시 스스로 지옥 같은 일상 속으로 들어갈 것을 알기에 더욱더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더 찾아보려고요. 지금은 그저 식단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정도로 단식을 하며 감량을 하고 있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운동이 있지 않을까요. 그분도 늘 제게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면 좋지 않겠냐고 말했던 순간들이 기억이 나네요.


항상 살아가면서 ‘만약에’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분과도 이 주제로 재밌게 대화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는데 만약 제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단 한번 생긴다면 늘 한 치의 고민도 하지 않고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다친 뒤인 그분과 함께 바닷가 옆에 주차된 차 짐칸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언젠가 다시 저의 두 다리 만으로 걸을 수 있게 된다면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서도, 제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 앞에서도 걷고 싶지만 언젠가는 꼭 그분 앞에서 저의 두 다리만으로 걷고 싶어요.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원래 저 혼자 걸어갔어야 하는 길을 걸어가 보려고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