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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May 10. 2021

제 차는 방탄차입니다.

1기 주재원이 되었다.


2014년 멕시코 1기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다. 법인을 설립하고 공장을 건설하는 것이 1기 주재원의 역할이었다. 우리는 낯선 환경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을 가지고 멕시코 현지에 도착했다.


무엇보다도 열악한 치안 환경에 대해 한국에 있는 동료들이 걱정했다. 영화 시카리오(Sicario)와 미국드라마 나르코스(Narcos)를 통해서 멕시코는 치안이 위험한 국가라는 인식이 있었다. 실제로도 멕시코 진출 초기 주재원들이 많은 사건사고에 노출되었다. 현지 문화에 익숙하지 못했고, 언어도 서투르다 보니 사고가 생기면 후유증도 컸다. 원만한 해결도 쉽지 않았다. 초기에 주재원들을 긴장하게 만둘었던 몇 가지 사건 사고를 회상해보고자 한다. 

 

 

I 맨 몸뚱이 하나로 주재원 5년을 시작하게 된 이 부장

 

20년 차 직장인 이 부장은 멕시코 주재원으로 발령난 후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멕시코에 신공장이 건설되면서 시설 전문가인 이 부장에게도 주재원 파견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공장 시설담당인 자신이 해외 주재원을 경험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었다. 

 

이 부장은 아이들 학교 문제로 인해 가족보다 먼저 멕시코 현지로 향했다. 당분간 홀로 살아야 했다. 계절별 옷가지와 생필품을 넉넉하게 챙겼다. 당분간 멕시코 현지에서는 금융거래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러도 넉넉하게 챙겼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20년 건설 업무 노하우가 담긴 각종 자료들을 노트북과 외장하드에 넣어서 챙겨두었다. 멕시코에서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리라 다짐하면서 멕시코 현지를 향해 출발했다.

 

들뜬 마음으로 멕시코 공항에 도착했다. 멕시코의 건조한 바람이 코끝을 스쳐가니 현지에 도착했다는 것이 실감났다. 한 달 먼저 도착한 주재원 동료가 공항으로 픽업을 나와 있었다. 16시간 비행 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했을 이 부장을 위해 동료 주재원은 공항 근처 한식당으로 향했다. 느끼한 기내식에 속이 더부룩했던 이 부장은 김치찌개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그제야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호텔로 이동하기 위하여 식당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 부장은 주차된 차를 보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유리창이 깨지고 차량 안에 있던 모든 짐들이 사라진 것이었다. 

 

의류, 생필품, 현금, 노트북, 업무자료가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현지인 이야기에 의하면 공항 보안요원과 강도들이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검색을 통해 현금과 노트북이 있음을 확인하고 외부에 있는 연락책에게 정보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항에서부터 따라붙었고, 식사를 위해 주차를 하자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이 부장은 하얗게 질렸다. 이역만리 이국 땅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했다. 일단 경찰에 절도 사건을 신고하고 동료의 도움을 받아 긴급하게 필요한 생필품 몇 가지를 구입했다. 옷이야 사면 되고 현금이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업무 자료들이 문제였다. 이 부장의 노하우가 담긴 소중한 노트북이었다.

 

법인에서는 주 경찰 고위층에 부탁을 했다. 물건과 돈은 안 찾아도 좋으니 노트북만이라도 찾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멕시코 경찰은 마피아와 서로 연결이 되는 경우가 많아 가능한 부탁이었다. 경찰은 최선을 다해보겠노라고 답변을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답변이 왔다. 노트북을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경찰도 여러 루트를 위해 접촉을 해보았으나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는 것이었다. 

  

이 부장은 그렇게 아무런 짐도 없이 험난한 주재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 부장이 식사를 했던 현지 한식당>


 

택시강도로 목숨을 잃을 뻔한 고 차장

 

고 차장은 동료 주재원들과 현지 한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와 반주 한 잔을 했다. 고 차장이 식사를 한 장소는 서울로 따지면 강남 한복판에 해당하는 번화한 거리였다. 워낙 사람들 왕래가 많은 지역이라서 안심하고 저녁 9시경 택시에 올라탔다. 

 

하루 종일 먼지 펄펄 날리는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반주를 걸친 고 차장의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살포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이상한 느낌에 눈을 번뜩 떴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이상했다. 평소에 다니던 동선이 아니었다. 고 차장은 서투른 스페인어로 “무슨 일이냐?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택시는 곧장 근처 주차장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거기에는 또 한 명의 멕시코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차 문이 벌컥 열리고 고 차장을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했다. 고 차장은 격렬하게 저항을 했다. '느낌상 끌려가면 큰일이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납치범 둘이 질질 끌고 가면서 고 차장의 얼굴이 거친 시멘트 바닥에 긁혔다. 옷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고 차장은 주차장 기둥을 붙잡고 버텼다. 발길질과 주먹이 날아들었다. 살겠다는 생각에 납치범들의 폭행을 버텼다. 주변이 지나치게 소란스러워지자 납치범들은 피투성이가 된 고 차장의 가방과 지갑만 들고 도망을 갔다.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고 차장의 얼굴은 피범벅이었고 옷은 다 뜯겨 엉망이었다. 간단히 경찰의 질문에 대답한 후 고 차장을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특히 얼굴의 상처가 심했다. 저항하는 과정에서 얼굴이 시멘트 바닥에 갈린 것이었다. 속살이 드러날 지경이었다.  

 

 

차량을 털렸다. 

 

필자의 이야기다. 멕시코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미국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 전날 여권을 챙기고, 달러를 두둑하게 환전해두었다.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가방에 넣어두었다. 퇴근 길에 잠시 떡집에 잠깐 들렀다. 곧장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와서 떡 박스를 꺼내고 가방을 찾기 시작했다. 트렁크에 보이지 않았다. 뒷 좌석에도 보이지 않았다. 차 안을 쥐 잡듯이 뒤젔지만 나오지 않았다. 놀라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떡집으로 다시 가보았다. 가방은 없었다. 필자가 들린 곳은 떡집 외에는 없었다. 천천히 생각을 해보았다. 떡집이 위치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떡집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차가 털린 것이다. 여권, 현금, 카드, 멕시코 신분증, 멕시코 운전면허증...모든 것이 사라졌다.


다음 날 계획되어 있었던 여행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에 가서 도난 신고를 했다. 경찰에 CCTV로 조사해달라고 했지만 워낙 도난 사고가 많아서인지 신경을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한 채 절도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지금도 도둑이 잠긴 차를 어떻게 열었는지 모르겠다.  

 


권총의 서늘함이 머리에...


주재원 부인인 A 씨는 평소처럼 장을 보기 위해 대형 마트로 향했다. 마트 위치가 시내 중심지라서 비교적 안심하고 방문하는 곳이었다. 장을 보고 트렁크에 짐을 넣은 후에 운전석으로 올라탔다. 동시에 조수석 문이 벌컥 열리더니 A 씨의 머리에 서늘한 무엇인가가 겨누어졌다. 권총이었다. 


A 씨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한다.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벌벌 떨면서 손을 들었다. 강도는 알아서 지갑과 차키 뭉치를 챙겨서 유유히 사라졌다. 불과 20~30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A 씨는 한동안 차 안에서 벌벌 떨면서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남편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알렸다. 경찰이 출동하고, 마트 보안 요원이 출동했다. 간단 조사를 마치고 남편과 집으로 향했다. A 씨는 집안에서도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지갑 안 신분증에 집주소가 있었고, 강도는 차키와 집 키를 가지고 도망을 간 상황이었다. 아파트 보안실에 강도 사실을 신고하고 집 키를 바로 교체했다. 그래도 안정이 안되어서 회사는 긴급 이사를 지원해주었다. 그래도 A 씨는 안정이 되지 않아 임시 귀국을 결정했다. 한국에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권총강도가 일어난 현지 쇼핑몰 주차장>


방탄차를 운전했다.


여러 차례 치안 관련 사고가 생기면서 주재원 차량을 방탄차로 교체하였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VIP만 이용할 수 있는 방탄차를 주재원들이 출퇴근 용으로 몰고 다녔다. 주재원 차량에 GPS를 설치하고 비상호출기를 설치하였다. 납치 위험이 높은 법인장 차량에는 출퇴근 시 무장 경호원이 따라붙었다. 

 

 

주재원 안전 10 계명 


현지 경찰을 초대하여 주재원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했다. 치안 관련하여 위험한 상황에서 주재원에게 당부했던 10가지 안전 수칙을 재구성해보았다. 

 

첫번째, 시내 보행 이동 시 간소한 복장 착용할 것

지나치게 화려한 복장, 노출이 심한 옷, 고가의 정장 착용은 범죄 표적이 되기 쉽다고 한다. 외국 관광객으로 인식하는 경우 강도/절도의 표적이 되니 가급적이면 현지 거주자처럼 편안한 복장을 착용할 것을 권유했다.

 

두번째, 일몰 후 또는 야간에 시내 중심가나 한적한 곳에 혼자 다니는 것은 삼갈 것

대한민국과 달리 멕시코 도시들은 시내 중심가라고 하더라도 야간에는 위험하다. 치안이 확인되지 않는 장소를 현지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주재원들이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세번째, 대중교통은 안전이 확인된 수단을 이용할 것.

- 택시 강도가 운전사로 위장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일반 택시보다는 콜택시와 호텔 택시 등 안전이 확인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 기차와 같은 대중교통의 경우 치안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네번째, 가급적이면 여러 대 차량이 함께 이동할 것

멕시코시티에서는 신호 정차 시 무장 강도당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창문을 열고 정차해 있는 경우도 범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으로 이동하는 경우 마약 마피아의 근거리를 통과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단독 이동보다는 여러 대가 함께 갈 것을 권유했다. 

 

다섯번째, 차 안에 가방, 노트북, 핸드폰, 귀중품 방치 금지(쇼핑몰, 편의점, 식당, 은행 등)

차에 귀중품을 절대 넣어두어서는 안 된다. 절도범들이 전자제품 탐지기를 들고 다니면서 차를 턴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차량에 작은 물건만 있어도 차량 문을 깨고 물건을 훔쳐간다. 잠시 이동을 하더라도 차 안에 물건을 방치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여섯째, 권총이나 칼 등 흉기를 소지한 강도에 대하여는 절대 반항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할 것 

- 2015년 5월 1일 여성 의류사업가 이 모씨(52세)는 가게 일을 마친 뒤 승용차로 귀가하려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중 금품을 노린 3인조 강도단의 공격을 받았다. 이 씨는 돈이 든 가방을 뺏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던 중 일당이 쏜 총에 등을 맞고 즉사했다. 현지 강도와 대치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다. 경찰이 신신당부를 한 사항이다. 금품을 노린 강도의 경우에 금품만 가져가면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었다. 

 

일곱째, 어떠한 경우에도 현지인과의 시비는 피할 것

언어적 장벽이 있는 상황에서 현지인과의 시비는 사소한 오해도 크게 번질 수 있다. 현지인들과의 갈등 상황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고 있다.

 

여덟째, 현금 소지 주의

- 2015년 4월 L기업 협력사 주재원이 시내 현금인출기에서 거액의 현금을 인출하고 밖으로 나오던  중에 납치를 당했다. 협력사 주재원은 4일간 강제로 끌려다니면서 1일 인출 한도금액을 4일간 갈취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발가벗겨져서 으슥한 골목길에 버려졌다. 현금이 필요한 경우에는 안전이 확보된 ATM기를 이용하도록 권했다.

 

아홉째, 출퇴근 경로, 외곽지역 주유소 정기 방문 금지 등 

출퇴근 시 조금 빠르다고 해서 이면도로를 이용하는 것을 피하라고 한다. 가급적이면 치안이 확보된 큰 도로를 이용할 것을 권했다. 치안이 의심스러운 지역은 방문하지 않은 것이 최우선이다. 기름값이 조금 싸다고 외곽의 으슥한 주유소를 찾아가는 것도 위험하다. 강도에 노출될 수 있다. 실제로 파워텍 주재원 한 명은 주유소에서 지갑을 강도당하기도 했다. 강도를 당하는 동안 주유소 직원들을 쳐다보기만 했다고 한다.

 

째, 검거율이 낮다. 예방이 최우선이다.

멕시코에 5년간 있으면서 절도 및 강도 사건이 해결되었으니 분실물을 찾아가라는 연락을 한 건도 본일이 없다. 예방만이 살 길이다. 스스로 치안 수칙을 준수하고 주의하면 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다. 

 

 

멕시칸은 한국이 더 무섭다.

 

너무 사고사례 이야기만 해서 멕시코 치안의 문제점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멕시코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필자의 앞집에 살던 멕시코 코카콜라 임원 까를로스 씨가 필리핀 주재원으로 발령났다. 까를로스 부인은  울며 불며 남편에게 필리핀을 안 가겠다고 난리를 쳤다고 들었다. 우리가 보기에 멕시코가 더 위험한 것 같은데 그들에게는 안전한 나라가 멕시코인 것이다.

 

필자가 멕시코 치안과 마약 마피아에 대한 걱정을 멕시코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멕시칸들은 '대한민국은 휴전 중인 국가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들에게는 멕시코보다도 대한민국이 더 무시무시한 위험 속에 있는 나라인 것이었다.

 


그래도 가슴 따뜻한 멕시칸들이 있었다.


여러 치안 사고가 있었지만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따뜻한 멕시칸들을 많이 만났다. 멕시코의 낯선 거리에서 타이어 펑크로 당황하고 있을 때 자신의 차를 잠시 세우고 함께 타이어를 갈아주었던 멕시칸도 있었고, 마트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으면 달려와서 도와주겠노라고 해주는 멕시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멕시코를 생각하면 따뜻하고 그립다. 불안했던 치안을 넘어서는 멕시코 사람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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