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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Apr 04. 2022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빈 일기》

목소리를 갖기 위해 글을 쓸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모두 비밀이 있다. 나에게는 나의 비밀이. 말을 억누르는 것은 권력이다. 하지만 허심탄회하고 정직하게 다른 사람들과 말을 나누는 것 역시 권력이다.”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는 침묵만이 가득한 어머니의 빈 일기장을 자신이 나고 자란 공동체인 모르몬 문화 속 여성들의 유대 관계 안에서 느끼고 몸에 새기고 성장하며 그 자신이 된 시간들과, 그를 가득 채우고 있는 새의 이야기와, 자연을 사랑하는 자신의 언어로 채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 아름다운 책이 내게 오게 되었다.



내용을 모르고 보았을 때부터 표지의 그림이 새의 깃털을 연상시킨다고 느꼈다. 새는 윌리엄스의 할머니와 그를 이어주던 매개이자, 그의 글 처음부터 끝까지에 내려앉은 아주 중요한 존재이다. 그의 글은 우리가 에세이라 읽어 온 책들과 다르다고 느낀다. 이런 책을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넣을 수 있을까? 어머니의 빈 일기를 종교와 공동체, 환경과 생태, 그리고 모든 것이 얽혀있는 여성의 삶과 연결시켰다. 머무르기를 거부하면서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그의 글들은 절대 어떤 장르라고 잘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읽으며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나 풍부할 수 있음에 놀란다. 그 모든 경험을 세세한 설명 없이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며 밑줄을 긋고, 또 긋는다. 문장에서 뿜어나오는 사랑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낀다. 선물하고,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한 권의 책과 남는다면 이런 글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쓰기를 중단했던 일기장을 찾아보았다. 빈 페이지로 가득했다. 무언가를 적고 싶어졌다. ‘몸짓’ 이자 ‘맹세’가 되는 무언가를.

하지만 윌리엄스의 말처럼, 목소리를 갖기 위해 글을 쓸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지 않아도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모두 말하고 있으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아름다움과 고통을 모두 느끼고 싶다. 무감각해지지 않은 채 살아남고 싶다. 상처를 주는 단어들을 내뱉고 이해하면서도 그것들이 내가 거주하는 풍경이 되지 않게 하고 싶다. 어둠을 별의 영역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가벼운 손길을 가지고 싶다.
(중략)
옛날 옛적, 여자들이 새였을 때, 새벽에 노래하는 것과 저물녘에 노래하는 것은 세상을 기쁨으로 치유하는 일이라는 단순한 이해가 있었다. 새들은 우리가 잊어버린 것, 이 세상이 축복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아직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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