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는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결혼에 대한 고민을 하며, 더듬더듬 어릴 적 일일드라마 보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공중파 3사의 일일드라마 단골 줄거리는 남녀 주인공이 여러 난관을 거치며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였습니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멋진 주인공이 상대방에 반지를 내밀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먼저 주인공 커플은 양가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섭섭지 않게 넣었네' 돈봉투가 오가고 '김치 싸대기'도 있습니다. 어렵게 양가 허락을 받고 나면 상견례가 남아있습니다. 상견례도 우당탕탕. 갈등과 반대, 용서와 합의를 거쳐 부모님이 길일吉日을 받아오면 곧바로 결혼식 장면으로 전환됩니다. 드라마는 보통 이쯤에서 끝이 나던가요.
저도 결혼은 처음이라 결혼 준비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합니다. 주변을 보면 요새 부부들은 결혼식장을 예약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드라마처럼 결혼 허락을 받고 이것저것 준비한 뒤 결혼식장을 예약하려면 그때부터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우선, 결혼식장을 보러 가기 위한 예약, 이른바 '홀투어' 일정을 잡아야 합니다. 결혼식장에 무턱대고 찾아가 예약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직장에서 짬을 내 예약 전화를 하는데도 수십 통째 통화 중. 겨우 연결되자 이번 달에는 셋째 주 일요일 오후 4시, 딱 한 타임 투어가 가능하다고 하네요. 막상 방문한 예식장에서 예약 가능한 날짜를 보는데, 맙소사 인기 시간대는 이미 1년 치 예약이 차 있습니다. 원하는 날 결혼은커녕 오늘 예약해도 1년 뒤 결혼식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통상 결혼식장을 먼저 예약하고 남은 기간 동안 스드메*로 대표되는 나머지 준비를 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물론 다른 과정도 순탄치는 않습니다. 원하는 곳을 예약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전쟁을 치릅니다. 국내 경기가 안 좋다더니 맛집은 줄을 늘어서고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한 달 전 예약도 오픈런 티켓팅을 해야 합니다. 결혼을 안 해서 문제라더니 결혼식장은 가는 곳마다 1년 치 예약이 꽉 차있고 예쁜 드레스는 왜 이렇게 비싸고 한번 입어보기도 힘든지요.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이 현실이고 결혼을 하려고 마음먹어도 실제로 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답답함에 별 뜻 없이 웨딩박람회를 검색하여 방문했습니다. 예비신부와 저는 아직 우리가 아는 게 없으니 가서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구경해 보자는 목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박람회라 함은 특정 분야의 신기술, 신제품을 비롯하여 다양한 품목을 한 공간에서 동시에 전시하는 곳입니다. 이전에도 업무차, 또는 그냥 지나가다 다수 박람회에 방문해 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웨딩박람회는 그 성격이 여타 박람회와는 달랐습니다. 저희는 덜컥 웨딩플래너가 있는 테이블에 앉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말솜씨의 그녀는 결혼식을 하기까지의 타임라인을 청산유수로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웨딩플래너를 만나러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플래너를 만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알파이자 오메가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플래너는 시간을 할애하여 요새 부부들이 어떻게 결혼을 준비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여러 스튜디오의 컨셉 사진과 드레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견물생심이라더니 이것저것 보면 볼수록 더 좋은 게 보이고, 취향이 생깁니다. 계획에는 없었습니다만, 그날 처음 만난 그분과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예비부부에게는 미션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결혼식장부터 빨리 정해야 하고 이어서 스튜디오 촬영은 언제 할지, 거기에 맞추어 드레스 대여는 어디서 하고 싶은지 물어옵니다.
웨딩플래너는 일차적으로 스드메를 비롯한 전반적인 결혼 준비에 필요한 과정을 중개하고 컨설팅하는 일을 합니다. 이들은 대개 특정 업체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고 일하면서도 실제 수입의 대부분은 중개 수수료를 통해 얻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플래너는 고객의 지출이 많아질수록 더 큰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됩니다. 한편, 많은 부부들은 둘이서만 결혼 준비를 하는 것보다는 플래너와 동행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시간 절감이 되며 다양한 업체를 비교할 수 있고 오히려 비용도 할인을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여행 가이드와 함께 패키지여행을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결혼식 준비에 있어 과다 지출을 조장하는 웨딩업체에 대한 비난이 많습니다. 올 초에는 정부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공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업체가 주로 비판을 받는 점은 항목은 불투명한 가격 책정 정책과 과도한 추가금, 업체 간 담합 등입니다. 그리고 이 중심에 웨딩플래너가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음식 배달 어플'이 성행하면서 수수료 부담으로 인해 음식점이 가격을 인상하고, 소비자가 결국 그 인상분을 부담해야 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이전에 없던 중개업은 최종 소비자가를 상승시키기 마련입니다. 저도 이러한 세태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입장입니다. '평생에 한 번'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큽니다.
그럼에도 그 이면에 웨딩플래너의 또 다른 역할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플래너는 예비부부 사이에 발생 가능한 갈등 요소를 사전에 방지하는 기능을 합니다. 결혼 준비를 부부가 처음으로 진행하는 공식적인 팀플레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부딪힐 요소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준비는 하나의 긴 호흡을 가진 프로젝트로 연애보다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 사람 연애할 때는 몰랐는데, 일을 할 때는 이런 단점이 있구나. 일 하는 스타일부터 시작하여 각자 취향도 다를 것이고 양가 부모님에 이르기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태산이니, 갈등이 생길 수 있는 지점도 많습니다. 돈과 감정이 함께 얽혀있는 상황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더욱 어렵습니다.
특히 결혼 준비라는 것은 많은 영역에 있어서 여성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많은 것들을 신부가 결정해야 하며, 여성의 입장에서는 '남편은 아무것도 안 하고 도움이 안 된다'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남편의 입장에서는 자기주장을 온전히 펼치기도 어렵고 방관을 하기에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 됩니다. 여기서 '결혼은 나 혼자 하는거냐'고 하며 다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갈등 지점을 효과적으로 환기해 주는 것이 웨딩플래너라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둘이 있을 때보다 셋이 되면 갈등이 쉽게 타개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두 명의 의견이 대립할 때, 세 번째 사람이 한쪽 편을 들면 자연스럽게 무게추가 기울면서 상황이 중재됩니다. 한때 유행했던 경연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도 세 명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메리카 갓 탤런트'가 그렇고, 국내에서는 '슈퍼스타 K'가 있었습니다. 심사위원 둘의 의견이 갈릴 때, 세 번째 심사위원의 선택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곤 했죠. 웨딩플래너는 새내기 부부가 서로에 대해 맞춰가는 그 시점에서, 의도치 않게 세 번째 심사위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물론, 실제로 부부가 어려운 결정을 플래너에게 의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명의 보조 멤버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있습니다. 많은 조언을 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만으로 의논할 대상이 되고, 비교적 객관적인 제 3자 역할을 은연중에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멤버의 뛰어난 점은 완벽한 시점에 팀에서 '하차'해 준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비로소 세상에 하나가 되었음을 공표하고 세상에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 플래너는 역할을 다하고 새로운 고객을 찾아 떠납니다. 부부는 이제 플래너는 까맣게 잊고, 길고 긴 결혼생활의 현명한 시작을 다짐합니다. 플래너는 그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두 사람이 진정한 부부가 되는 과정에 조연 역할을 합니다.
웨딩플래너가 일반 대중 앞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2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순간 유행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을 변모해 가며 롱런하는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안에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일입니다.
*스드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통칭하여 이르는 말로, 본식과 웨딩촬영 과정에 필요한 중요 요소를 한 번에 일컫는 말.
© Quasar,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