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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민 Nov 21. 2024

산후 살아남기

산후우울증이 미치는 영향

 무엇이든 예방이 우선이다.  첫째를 낳고 지독한 산후우울증에서 벗어나기까지 발버둥의 시간이었다. 그때 숨통을 틔이게 한 것중에 하나가 브런치에 글쓰기였다. 정말 살려고 글을 썻다. 나의 감정과 정서, 기분을 글로써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것 같았다.


우선 나는 나약한 종류의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장녀로 살았고 바닥에서 부터 시작한 요가강사로 원장이 되기까지 마음의 힘 또한 누구에게도 지지않는다 생각했다. 42살에 두살과 백일되는 아기를 키우고 있는 지금에야 체력이랄것도 없지만 30대 중반까지는 그또래 남자들하고 견주어봐도 업무량과 속도 추진력은 밀릴것이 없었다. 정말 대차게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하나 낳았을뿐인데 내 몸과 마음의 힘은 온데간데 사라져버렸다. 이.럴.수.가 있는가? 스스로에게도 당황스러운 시간들이었다.


 더군다가 미혼시절 난 아이를 키우는 것 쯤으로 핑계대지 말라며 오만방자했던 인간이었다. 그런 내가 단지 아이를 하나 낳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년도 안돼 우울증 지수가 고위험군으로 나와 상담치료를 권유받게 되었다.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를 앞두고 갑작스런 양수파열로 인한 출산이었다. 가구는 물론이고 기저귀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친정에서 몸을 풀며 짐을 싸야하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었다. 아이가 45일때 이사를 하고 그 후 아이가 백일 되는 동안 매일 집정리를 했지만 몸도 마음도 집도 엉망이 되어갔고 몸조리를 해야할 시간에 집정리를 하다보니 체력은 소진되었고 바닥난 체력앞에 정신력으로 극복한다는 건 자기착취라는 것을 그때야 알게되었다.


당연히 매일이 부부싸움이었고 새벽녘 쌍욕을 하며 울부짓는 나를 보는 내심정은 참담했다. 몇달전까지만 해도 여유가 넘치고 삶을 숙고할 줄 안다고 생각했던 요가수련 십여년차의 요기니였으니까. 싸우느라 상황분간이 안되기 시작할즈음 이미 몸은 망가져있었고 정신은 피폐해져 있었다. 눈물과 화가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신랑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었기에 장단점이 명확했고 지시어가 바르게 전달되지 않으면 오류가 싸움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나는 말이 어눌했다. 당시 부부싸움을 하며 “나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닌데 왜이렇게 말이 안나오고 못하는지 모르겠어.”라고 했던게 기억난다. 정말 억울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이것이 내가 경험한 산후우울증이었다. 꽤나 심각했고 죽고싶다 보가는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 고통이 끝나겠지 하면서.


 이래서 안된다고 거의 반 제정신 아닌 상태에서 화초를 사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몇주씩 친정에 가서 아이는 엄마에게 맡기고 잠만 잤다. 몇번을 그렇게 했다. 나를 깨우다 된통 당한 신랑은 가급적 요즘은 나를 재운다. 그렇게 나는 잠이 소중한 사람이란걸 알았다. 푹 자고 나자 기운이 돌기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친정에 다녀온 후에는 집에 불필요한 짐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미니멀라이프에 관한 책과 영상을 보며 끝없이 버렸다. 첫째때의 패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미니멀을 통해 내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려했다. 물건을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세이브해야 아이 둘을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였다. 이때가 둘째를 가졌을 때였다. 나에겐 공포였다. 산후우울증이란.


그래서 이젠 아이가 둘이다 보니 또다시 산후우울증에 잠식된다면 모두가 위험하다고 생각되었고 내가 가장 활기찬 시절의 습관들을 떠올려 건강한 텐션을

만들어놓으려 했다.


•얇지만 손에 감기는 다이어를 촘촘하게 쓰기

•비타민c

•꽃과 식물들 키우기

•미니멀라이프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잠!


첫째때 집을 치우느라 망가진 시간들을 복원하기 위해 아기에게 필요한 준비물은 아기가 태어나기 3개월 전에 미리 준비해두었다. 첫째 아이도 어린이집에 적응시켰고 신랑에게도 출산 후 50일이 되기전 내가 많이 우울해 보이면 꼭 잊지말고 꽃을 사달라고 얘기해두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그와의 부부싸움은 혈전같았지만 이럴때 입출력이 정확해서 장점이 된다는 걸 알았다.


둘째를 낳고 나는 조용히 혼자만의 4박5일을 보냈다. 신랑도 오지마라했다. 내겐 당분간 마지막 홀로있음의 시간이기에 너무나 소중했다. 그리고 산후관리사님은 요청한데로 조용하고 세심한 분이 와주셨고 오시면 나는 잠만 잤다. 실컷 자고 나서야 두세시쯤 일어나 첫끼를 먹었고 행복했다. 둘째가 태어나자 마자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감기를 달고와 모두가 감기사태를 겪었지만 내겐 잠을 일순위인걸 아는 신랑 덕분에 무사히 지나갔다.


그리고 둘째가 순하다는 게 가장 컸다. 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통잠시전에 일어나면 웃.었.다.

첫째땐 청소기도 못돌렸고 드라이도 못했다. 쇠젓가락 하나 떨어뜨리는 소리에도 깨서 울었고 그냥 잠드는 법이 없었다. 항상 아기띠로 한시간 이상을 둥가둥가해야 겨우잤다. 혼유를 했는데 젖병도 30분 이상 물고 있어 쉴틈이 없었다. 하아... 그랬다.


덕분에 첫째때의 먹구름은 날라가고 둘을 키워 몸은24시간 풀가동이지만 마음엔 한줄기 바람이 지나갈 숨구멍이 살아있다고 느껴진다. 문득 뉴스를 보며 산후우울증이 미치는 극단적 사건들이 남일이 아님을 돌이켜본다. 모든 엄마와 아빠들은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차원을 통과하고 있고 아이가 자궁에서 빠져나오듯 우리 또한 자식에서 부모로 재탄생되고 있음이다. 이 과정은 눈물없이 볼수 없다는 걸 체험중이다. 우리의 부모님이 그랬듯 말이다.


슴슴하게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해서 신랑과 아이들이 잠들 막간의 시간, 한큐에 글을 남겨본다.


모두 평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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