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잇는 요가를 하며 통증은 기능의 문제가 깊어진 것뿐 아니라 내 삶에서 어떠한 패턴의 문제가 임계점을 넘은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버섯목증후군의 경우(실제로 20대 때 내게 있었던), 경추의 과도한 앞 쏠림으로 근골격계의 부정렬에 따라 두통, 목 결림, 어깨 통증, 척추 통증을 유발되며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잘못된 자세에서 비롯되는데
나의 경우, 20대 과도한 경쟁 시스템의 일터가 주된 환경이었기에 의식은 항상 외부를 향해 있었고 그러한 습이 몸에서 계속 작용한 결과였다. 20대 중반 요가를 시작하고 만난 친절한 도반 덕에 목에 버섯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운동치료와 함께 나를 관찰하고 내부를 향하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러한 치료작업으로 인도했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요가수련의 특성이 몸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준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출산 전 대부분의 통증은 그러한 좋은 의사 선생님과 운동치료와 통증을 유발하는 사고의 인자를 알아차리고 개선하고 그것이 다시 바른 습관이 자리하는 시간의 과정을 통해 좋아졌다.
결혼과 출산 후 6개월 만에 터진 허리디스크는 달랐다. 비참했다. 16년 경력의 요가강사는 새벽녘 울면서 깨야만 했다. 지금껏 나는 무얼 한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 몸 하나 못 챙기면서 무슨 지도자냐 싶었다. 몸은 비상사태였다. 병원에 가자마자 흘러내리는 디스크를 보면서 수술에 동의해야만 했다. 노산에 이사, 계속된 정리와 청소, 그리고 허리를 다친 신랑을 배려한다고 아기를 거의 혼자 케어했다는 이유들이 얽히고설켜 나의 디스크가 터졌다고 위안했다. 그리고 6,7개월이 지났다. 디스크로 인한 통증은 사라졌다. 그런데 그간 디스크로 약해진 몸을 보호하느라 단축된 근육들에 2차 통증이 떠나가질 않았다. 몇 달이면 저절로 좋아질 것이란 바람과는 달리 끊질기게 묘한 불쾌감은 떠나질 않았다.
그간 무수한 부부싸움으로 우리 부부는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돕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루 두 끼를 차려내던 나는 한 끼는 외식 한 끼는 신랑이 차려준 밥으로 먹고 있었고 정리정돈은 신랑에게 전염된 듯 분배되어 크게 힘들지 않았다. 많은 짐들이 사라졌고 재분배되었는데 왜 일까 싶었다.
그러다 터진 디스크는 왼편이고 통증 부위는 왼쪽 엉덩이를 따라 허벅지로 이어졌고 왼쪽 어깨는 어느 날부터 올라가 있음을 한참 동안 거울로 들여다보며 알게 되었다. 요가는 기본적으로 몸의 균형에 중점을 두기에 곧 잘 알아차렸는데... 언제부터 무너진 것일까?
바로 수유기간 동안이었다. 젖이 왼쪽만 많이 나와 수유는 거의 왼쪽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세러피용으로 나온 볼을 가지고 왼쪽 젖가슴 뒤편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견갑대와 등, 목을 풀었다. 공을 대고 결절이 느껴지는 부분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숨을 깊이 쉬며 터져 나오는 하품을 배출시키며 잠자는 아기 곁에서 두세 시간 동안 구석구석 몸을 풀었다. 그리고 잤다.
희한하게 이삼일 동안 통증이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행한 소마틱스의 고관절을 풀어주는 몇 가지 자세들로 양쪽 고관절의 균형을 맞추고 짧아진 햄스트링과 몸의 뒤편을 따라 종아리, 발목까지 가볍게 풀어주고 있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10분 정도의 동작들을 하고 나자 일주일이 넘어가는 지금, 잔여 통증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아픈 건 처음이라 통증과 함께 산다는 무엇인지 그것이 삶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느끼며 몸을 더욱 세밀히 다루자고 매 순간 통증을 떠올리며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요가로 혹은 다른 무언가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때는 조금 더 다정히 겸허히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내 모성의 애씀이었는지, 역할변화에 적응을 못한 몸 때문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일수도 있겠다.
다만, 이 밤 아프지 않다.
아기는 대자로 뻗어 자고 신랑은 위닝을 하고 있는데 혼자 감동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