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정도는 부모님이 전적으로 키워주셨고 20년은 내가 나를 키우려했다. 그 시간들의 합이 내 나이였다. 자유를 가지고 있을 때는 당연한 줄 안다. 전국을 돌아다녔고 원 없이 요가를 했고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해외에 나가기도 했다.
30살에 시작한 요가원에서 나는 날아다녔다. 100평이 훌쩍 넘는 공간에서 상담을 하고 집기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수련을 리드하고 회원들과 얘기를
나눴다. 같은 시기 사업이나 장사를 하던 또래들에 비해서도 독보적이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나 돌보아야 할 아이가 없으니 나 하나 잘 챙기면 그뿐이니 일의 속도감과 추진력은 번개였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새로움을 흡수해서 더 커지고 더 세지는 나의 작용에 취해 남다른 무언가가 된듯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니 여전히 솔로인 나는 정점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주위의 내 또래 들은 일상에 찌들어 있거나 아이들을 보느라 혈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몰골들이 되어갔다. 그런데 30대 중 후반이 되자 에너지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큰 규모의 요가원을 혼자 운영하다 보니 상의할 사람도 없었고 성장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개인의 성장이라는 동기부여는 생각보다 빨리 한계에 달했다. 그리고 설비나 강사문제가 생기면 내가 다 처리하다 보니 어느샌가 지치다 못해 스스로를 갈아먹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할 수 없겠는데...
첫 요가원을 시작하고 7년 정도가 지나자 몸과 마음은 시들어버렸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1년 후 코로나가 터지며 본의 아니게 요가원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공간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다시 요가를 하고 사람들이 모이고 다정한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다. 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저녁노을은 아주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었는데 여긴 노을 맛집이라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바람을 쐬고 마음이 편하다는 게 이런 삶이구나... 하는 일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2년쯤 흘러 지금의 신랑을 만나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며 그곳도 좋은 선생님께 인계를 하고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혼자였을 때 나는 빠르고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었고 걸림이라고는 내 안의 문제들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났다. 말해 뭐 하랴. 화장실도 못 간다. 밥? 아이가 먹다 남긴 밥들을 대충 비벼 그것도 설거지통 옆에서 서서 먹는다. 그러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자 그제야 한숨을 돌릴 여력이 생길락 말락 하기 시작했고 몸도 마음도 급한 나는 여기저기 이력서부터 들이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연락이 온 백화점 문화센터, 돈은 안되지만 다시 요가를 할 수 있고 재기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설레기 시작했다. 그런데 몸이 무거워졌다. 응??
둘째였다. 다시 처음으로,
첫째 때는 유모차든 아기띠든 하고 나가면 되었는데.. 24개월 차 둘째가 생기자.
아.무.것.도.할.수.없.다
정말 생존에 필요한 것만 해서 하루를 쳐내는데도 힘이 부친다. 하루에 밥을 이유식, 유아식, 어른밥 6끼를 신랑과 함께 준비한다. 신랑과 싸울 힘도 없어서 대충 이해로 둘러대는 타협을 한다. 둘을 달고 친정에 오니 친정엄마가 일주일 만에 감기몸살을 하신다. 길어지면 눈물이 날지도 모르니 이 정도만 적으련다.
산후우울증은 예전에도 있었겠지만 최근 더욱 대두되는 이유는 나와 비슷한 이들이 함께 사는 시대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많은 지원을 받아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스스로를 키우는 맛에 살다가 이건 당장에 티도 안 나고 내 이름으로 커가던 승진이나 업적도 아니고 무엇보다 24시간 끝없이 풀가동되어야 하는 전인적 과제 같다.
전에는 계단이건 사다리건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식당이나 가게는 입구부터 살피게 되고 어디를 가도 서너 배로 신경을 쓰지 않고서는 이동이 어렵다.
혼자일 때는 100
결혼을 하면 70
아이가 생기면 30으로 활동범위가 줄어든다는 친구의 말에 호기롭게 나의 역마살은 꽤나 강하다며 외쳤던 나는 집 앞 200미터도 안 되는 편의점에서 커피 한잔을 사 마시는 일에도 서너 번의 기회를 노려야 했고 그것마저도 신랑의 어디 갔냐는 전화에 급히 첫 애를 안고 돌아오다 며칠간 파스신세를 져야 했다.
그럼에도 살아야 하기에
•마음을 비우고
•도움을 구하고
•안되면 안 되는 데로
•되면 주렁주렁 아이들을 달고 조심히 한 발씩 나아가야 한다.
불혹이 내겐 준 선물일까.
이들 덕분에 나는 귀한 것들을 삶에 들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함께의 힘이 나와 우리를 더 잘살고 싶게 한다는 것도.
새벽, 체력과 정신력이 소진된 시간에 아기들이 깨면 좀비의 성질을 잠재우기 위해 신랑이 출동한다. 저녁 내내 자전거를 타느라 본인도 지쳤을 텐데 그의 책임감은 모두가 바닥일 때 드러나기 시작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우리로 다져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하하하하)
나를 채우는 차크라호흡명상
차크라는 요가에서 에너지센터의 개념입니다. 크게 우리 몸에는 7개의 에너지 센터가 있는데 각각의 에너지 센터들이 원활히 작동할 때 그 능력을 제대로 쓸 수 있다고 봅니다. 에너지 센터를 활성화시키는
호흡명상을 소개합니다.
가장 하단의 빨간 보석이나 점을 심상화합니다. 그리고 그 지점으로 들숨을 보냅니다. 마치 풍선에 공기를 불어넣듯 물라다라 차크라로 호흡을 보내어 빨간빛이 점점 더 영롱하고 반짝임으로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그 위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과 보라 또는 흰색의 에너지 센터를 활성화시킵니다. 내 몸 안의 무지개 빛 보석들이 반짝입니다.
누워서 서서 앉아서 언제든 할 수 있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차크라명상을 저는 내 안의 보석들을 빛나게 닦아주는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나만 아는 반짝반짝 아름다운 빛의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