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이 되고 싶어요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09
1.
마담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주택가 변두리 막힌 골목 앞을 지납니다. 유행 지난 재즈풍의 선율이 흐르고, 전선을 길게 늘여 흔들리는 퇘색된 조명 아래, 벽에는 낡은 포스터가 불규칙적으로 붙어있고, 겹겹이 쌓아 올려진 낡은 잡지 사이로, 창밖으로 새어든 빛을 잃은 가로등에 비추어진 먼지와 담배연기가 춤추는 선술집.
오다가다 들른 동네 사람, 불륜인지 연인인지 모를 아베크족, 밤새워 술을 마시고 해장하러 들른 동네 백수 청년, 그리고 예술가도 아닌 것이 예술한다고 밤낮을 바꾸어 사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노 씨.
나는 메뉴도 묻지 않고 테이블에 맥주와 땅콩 주전부리를 내놓고,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는 카운터에 앉아,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며, 그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있습니다.
소설과 영화를 너무 본 것일까요? 지금이라면 굳이 그런 꿈을 꿀 일이 아닌데,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꿈이었을, 그꿈을 꾸었습니다. 마담이란 호칭이 참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프랑스도 가보지 않은, 프랑스 말이라고는 "봉쥬르, 마담" 나는 그 마담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마담이 되지 못하고 몇 십 년이 지났습니다.
2.
마담놀이를 합니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 비밀의 정원' 에 등장하는 마담, 그리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담. 다시 한번 나를 마담의 동경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프루스트의 책을 읽어봤다면 알 겁니다. 결코 쉽지 않은 분량과 내용. 등장인물은 가족도를 그리듯 매번 읽을 때마다 체크해 두어야 합니다. 이야기가 있는 듯 없는 듯, 기승전결이 보이지 않는 구성, 이도저도 아닌 짜증을 유발했던 주인공. 왜 내가 이 지리한 싸움에 말려든 걸까 싶도록 책은 지루합니다.
성취감에 목적을 두고 일단 읽기로 했습니다. 완주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책을 읽기 위한 재미를 찾아야 합니다. 독서하는 행위일 뿐 책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 작정하고 즐기기로 합니다.
한 권의 책 속에 등장하는 문장을 베껴 쓰고 감정선을 끌어냅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음식과 음악과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을 체험합니다. 뭐 이런 식이었죠.
1권에서는 단연코 마들렌과 홍차 카페 투어를 하면 모두에게 홍차를 권합니다.
2권에서는 집 한구석에 미니정원을 꾸미고 푸밀라 홈 가드너가 됩니다.
3-4권에서는 작가 흉내 내려고 미용실에 가서 펌을 하고 안경 하나를 구입합니다. 그리고는 TV예능 프로그램과 군 이야기에 영감 받아 군복 느낌이 나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외출합니다.
9-10권에서는 너무 지겨운 주인공을 욕하며 내가 직접 격정멜로드라마를 씁니다.
전권 12권 중 5,6권을 읽던, 독서 모임이 있던 여름날, 나는 내 꿈을 발표했습니다.
"
나 마담이 되고 싶어요.
마담? 옛날 다방 내지 같은 거? 아니면 술집을 하겠다고?
아니 잃어버린 시간에 나오는 살롱 마담. 백작 부인이 하는.
아. 문화살롱 그러니까 홈파티 호스트, 안방마님이 되겠다고?
네.
좋은데? 어울려!
"
의외로 모두 찬성입니다. 잘 어울린다는 겁니다.
집 안 거실이라는 공간에 사람들이 방문합니다. 음악가는 음악가대로, 미술가는 미술가대로, 문학가는 문학가대로 각자 자시의 취향껏 문화 예술을 즐기는 겁니다. 그러다가 서로 다른 장르가 섞이다가 나누어지다가 알아서 콜라보를 만듭니다. 무대와 관객석의 선이 사라집니다. 발표나 강연을 하고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 자기만의 문화를 가지고 와서 각자 그리고 함께 즐깁니다.
마담은 그 안에서 간단한 다과와 나만의 요리를 준비하고 그들을 대접합니다. 이달의 문화를 안내하고 예술가와 작가들은 서로 소개합니다. 마담은 그대로 나입니다. 공간은 술집에서 집으로 옮겨졌고, 마담의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3.
북브런치, 홈살롱 마담이 되었습니다.
책이 나오고 책을 홍보할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아침 운동팀에서 내 책을 한 권씩 구매해 주었습니다. 책을 즐겨 읽지 않는 분들입니다. 내가 책을 낸 것을 축하하고 기운 내라고 부러 한 권씩 사준 것이지요. 나는 그것을 알고 감사함을 전하고자 점심을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밥만 먹고 수다 떠는 것 말고, 좀 영양가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살롱 놀이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아침 운동팀은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로 활동하는 화가, 차 소믈리에, 음악 조예가 깊거나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 시니어 모델도 있습니다. 각기 다른 장르의 문화 예술 취향이 혼재하니 진짜 웃기게 진지합니다. 나는 신나게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초대장을 보냅니다..
<푸밀라 북살롱>에 초대합니다.
일시 : 2023. 4. 26. 수요일
시간 : 운동 끝나고 샤워 후 11시 30분
장소 : 선하네 푸밀라 홈 가든
점심 : 선하표 핑거푸드
준비물 : 즐길 마음만 가지고 오세요
진행 1 : ‘눈물나는 날에는, 엄마’ 낭독. 엄마책 속엣말.
진행 2 : 내가 즐기는 문화적 취향은 무엇인가요?
* 드레스 코드 : 살롱에 어울리는 화려한 드레스
나는 그렇게 마담이 되었습니다. 문화살롱은 좀 더 지나 봐야겠습니다. 오늘은 푸밀라 홈살롱 김마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내책으로 북브런치를 열며 마담놀이를 진행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