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도 사람도 글도 명백해야 합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08
1.
나는 학원에서 초, 중, 고를 대상으로 수업을 합니다. 수준별-성향별 그룹으로 진행하다 보니,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섞이고,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한 반인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구성된 학생들은 호칭도 위로는 야, 누구야, 가 아니라 형, 누나, 언니, 오빠 혹은 선배입니다.
나와 만나면 보통 3년 이상은 함께 수업합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사춘기 청소년기를 보내는 사이 애정과 애증을 넘나들며 가족이상 끈끈한 정을 이어갑니다. (물론 확실히 제 생각입니다.)
반 배정할 때, 학습 수준 차가 심하지 않다면 학생의 성향과 그룹 간 조화를 중요시합니다. 서로 한 반으로 묶었을 때 혼자보다는 함께 잘할 수 있는 조합을 선호합니다. 경쟁과 단합으로 효과를 얻습니다. 비교 시기 질투 아닌 나 너 우리라는 울타리 속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수업을 원하기 때문이죠.
2.
지난주를 기점으로 전국 중, 고등학교 기말고사와 고등학교 모의고사가 끝나고 방학 전야제를 치르듯 학교는 공부 말고 노는데 열과 성을 다합니다. 중, 고등학생은 시험날을 기준으로 한 달 내내 바쁘고 예민한 시간을 보냅니다. 반면, 학원 강사는 자료준비만 잘 되어있다면 문제를 푸는 것은 아이들 몫이니 오히려 편할 때가 있습니다. 시험 주간 직전보강 일주일 정신없이 바쁜 것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보통 정규수업은 수준에 따라 나누지만, 시험 보기 바로 전날은 학교와 학년 시험 범위에 따라 나눕니다. 경우에는 한 팀에 한 명일 수도 있고, 어느 팀은 책상이 모자랄 정도로 몰리기도 합니다.
직전 보강은 가장 기본적인 교과서와 학습지를 점검하고 마지막 기출문제를 풀고 질문을 받습니다. 오답풀이를 하고 질문을 들어보면 학생들의 시험 결과가 대충 보입니다. 학교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과 예외성 있는 부분을 강조하기 때문에 질문의 수준이 점수로 나타납니다.
3.
시험 출제는 딱 두 가지. 기본에 충실했는가? 꼼꼼하게 준비했는가? 그리고 마지막 킬러 문제는 넘사벽이 아닌 바에야 운에 맡깁니다. 책임 없는 말이 아니라 솔직하게 말해서 현실이 그렇습니다. 그 킬러 문제는 사실 강사인 나도 어리둥절할 때가 있습니다. 틀리라고 내는 문제를 비껴갈 학생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죠.
나에게 학생이 질문하는 정도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렇게 강조하고 강조한 것을 이제야 묻는 아이, 그리고 나올 만한 문제의 이중 정답을 묻는 아이. 먼저 아이는 행운을 빌어주고, 나중 아이는 실수만 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4.
개념을 정리하고 공식을 다루듯 외울 것은 외워야 하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고 기본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본을 소홀히 하는 친구들이 종종 보입니다. 다 알아요! 하면서 무조건 문제 풀이만 합니다. 자신의 실력과 상관없이 최고 수준의 심화 문제만 풀기도 합니다. 결국 한 문제를 아깝게 틀렸다고 하소연합니다. 틀린 문제는 다름 아닌 맞추라고 낸 가장 쉬운 기본문제 유형입니다. 말 그대로 사상누각입니다. 기초를 탄탄히 하라, 기본만 알아도 중간은 한다,는 말을 농담처럼 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입니다.
5.
뉴스에서 정치 문제 하나를 이슈화시켰습니다. 이야기 전말은 상대 주장에서 주어가 빠졌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 목소리로 시끄럽습니다. 너와 내가 누구나 알 수 있는 뻔한 주어가 아니라면, 주어와 동사는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산문에서, 특히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공식적인 글에서는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6.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은 나의 생각과 느낌과 지어짐을 나의 언어로 나의 온도에 빚대어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나를 상대에게 읽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지만 상대는 무한합니다. 그런데 그 무한한 수를 가장 정확히 관통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해야 합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쉽고 간결하고 명확해야 합니다.
문장에 필요한 요소를 모르고는 멋진 문장도 느낌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단어 하나하나가 문장 한 줄이 되고 문장 한 줄이 문단을 이루고 다시 문단이 글이 됩니다.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데 신중을 기하고 문맥에 맞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의 글에는, 그것이 공적인 글일수록,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지 직, 간접적으로 육하원칙에 어긋나거나 빠져서는 안 됩니다.
7.
질문에 답이 있고, 답은 명백해야 합니다. 의심받거나 오해할 수 있는 답은 피해야 합니다. 글에는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가 있고, 그 문장 성분은 장르와 시대를 불문하고 제대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분명히 맞게 이해합니다.
모든 곳에는 오해가 없어야 평화롭습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니 책 속에서라도 오해 없기를 소원하며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