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가까이한다면 당신은 여유 있는 사람입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07
1.
“ 어제 서점에서 책은 사 왔어. 아직 읽지는 못했고. 올해는 읽기 힘들 것 같아. 아직은 여유가 없어.”
나는 한 달에 한번 그녀와 한 끼 식사를 합니다. 평소 먹고 싶다는 음식점에 가거나 내가 먹어보고 맛있는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사다 주기도 합니다. 이번 달에도 책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그녀에게 서운함을 숨긴 채 함께 밥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내 책이 서점에 나오고 한 달이 지나서야 책을 샀다는 그녀. 하지만 현재는 읽지 않을 테니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 합니다. 처음에는 책을 읽기 싫어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선물은 그야말로 학습지이고 시험서적이라 생각합니다. 선물이라고 내 책 주는 것도 부담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유 있을 때 읽어보라 하고 잊고 있었습니다.
2.
그럴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을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낼 여유가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녀가 무심히 던진 말에 가슴이 메었습니다. "아직 여유가 없어서" 한마디가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니 결국, 자동차 미러에 비친 나를 보며 내가 물었습니다. "너는 어떠니? 이젠 여유 좀 생겼니?" 다행히 나는 여유가 좀 생겼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알아차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쉬어갈 준비가 되어있으면 이것이 여유입니다.
그녀는 오래전 아픈 가정사를 겪었고, 최근 먹고살기 위해 집을 대출받아 가게를 열었습니다. 온종일 가게를 지키고 아이를 돌보는 그녀는 단 한 시도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습니다. 남들 쉬는 주말도 한 푼 더 벌 심산으로 어린 자식을 집에 혼자 두고 일하러 나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잠깐 쉴 시간에는 아이와 실랑이하느라 정작 본인이 아픈지 힘든지 불편한지 알아차리지도 못합니다. "일 할만해?" 물으면 "괜찮아! 아직은 버틸 만 해"라는 답만 돌아옵니다.
그런 그녀에게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바쁠수록 책을 읽으며 자신을 점검하라고, 그렇게 책 한 권을 내미는 것은 나의 이기심이고 알력입니다.
3.
책을 읽는 것은 마음과 시간을 둘 다 내야 하는 겁니다. 바쁘다, 할 일이 많다,는 소리는 핑계로 들립니다. 그런데 아직 여유가 없어서,라는 것은 핑계가 아니고 속 타는 소리입니다. 눈뜨면 오늘 하루 먹고사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고, 하루하루 버티는 게 버거운 사람에게 시간을 쪼개서라도,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으라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밥 한 끼 사주고 내가 도울 테니 한숨 자라, 고 말하는 게 맞습니다.
아프리카 난민이나 지금 당장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은 눈앞에 밥 국밥 한 그릇, 만 원 한 장이 시급합니다. 이게 해결되어야 마음도 의지도 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시간보다 물고기 한 마리 던저주는 타이밍이 필요합니다. 물리적인 신체적인 해결이 되지 않았는데 정신을 차리라는 것은 실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허울 좋은 말일뿐입니다.
4.
손수 책 한 권을 사서 읽을 수 있다면 먹고살 만한 사람입니다. 책 속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일 퍼센트라도 여유가 있는 행운아입니다. 책이 아무리 정신적인 싸움의 문제라 하더라도 그 정신적인 싸움을 꿈도 못 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읽고 독서 모임에 가거나 북 토크에 참여한다면, 더군다나 그 공간이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을 허락받았다면, 당신은 지금 호사를 누리는 겁니다. 분명 당신은 여유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을 내는 것은 꼭 잘 살고 삶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먹고사는 생명유지를 위한 일차적인 문제에 당면한 사람에게 물리적인 해결 없이 마음을 내라는 것은 고통이고 고문일 수 있습니다.
5.
"당신은 지금 어떤가요? 이제는 살 만한가요? 이제 여유가 있나요?"
당신이 책 한 권 살 돈, 책 읽을 시간, 함께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이 있다면, 당신은 정말 부자이고 행운아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기꺼이 손에 책을 들고 즐거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한 장도 읽을 수 없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당신이 대신 읽어주기 바랍니다. 나는 그럴 당신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위로와 힘이 되는 책을 쓰겠습니다.
그녀가 지금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팍팍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내 책 한 권 읽을 여유를 갖기를 바랍니다. 그런 날을 위해, 그녀를 위해,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