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려고 씁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00

by 김선하

1.

나는 내 글의 애독자입니다


내 책의 최애 독자는 분명 나입니다. 가끔 나로부터 시작된 글이 내 오감을 깨우고 감각을 바닥까지 끌어내립니다. 곧 곪은 부위를 터뜨리며 비명을 지르는가 싶더니 이내 상처 난 곳에 연고를 덧바르고 아물기를 기다립니다. 울음과 웃음 사이를 몇 번 헤매다 결국에는 웃고 맙니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이 내 자가 치유가 되고 면역력이 생깁니다. 때로는 써놓은 글로 돈을 벌기도 하고 인맥을 유지해주기도 합니다. 어느덧 쓰기는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습관과 의무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글쓰기는 일과 취미를 넘나들다가 좋아서 하는 취미가 일이 되었습니다. 결국 나는 이제 덕업일치 길에 들어섰습니다.


2.

책 보다 재미있는 게 있으면 그걸 합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치고 많은 글과 책을 읽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것이 싫어서도 아니고, 게을러서도 아닙니다. 남의 글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자만해서는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은 나에게 읽는 것보다 재미있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만나고, 맛집도 가고, 배움터에 가서 취미생활도 합니다. 여럿이 즐기는 운동, 여행, 전시 관람도 빠질 수 없습니다. 혼자서 음악을 듣고, 나를 위한 나만의 요리는 비밀스러운 취미이고 힐링입니다. 집안일도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도 써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중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분명 나는 이 모든 것을 다 하고 싶고, 해내야 하기 때문에 책만 읽기에 하루 주어진 시간을 탓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과 공간의 방해 없이 틈틈이 읽는 글은 나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것입니다. 바로 나의 공기로 채운 나의 언어를 나열한 글입니다. 나는 그렇게 글을 쓰고 내가 쓴 글을 읽습니다.


3.

혼독함공러의 프로젝트, 혼자 글을 씁니다


소속되지 않고 글을 쓰다 보니 마감일도 주제도 강압하는 이도 없습니다. 내가 쓰고 싶으면 쓰고, 쓰기 싫으면 안 쓰면 됩니다. 필 받으면 한 곳에 틀어박혀 단편집 한 권 분량을 씁니다. 그러다가 기분이 내키지 않을 때는 한 달 동안 절필을 선언하듯 작정하고 쓰지 않습니다.


보통은 하루 한 번 어떤 식으로든 어떤 장르든 글을 씁니다. 순간의 느낌을 적은 짧은 글, 감사 인사를 적은 엽서, 사무실 공지사항과 홍보 문구, 핸드폰에 녹음해 둔 음성 메모 등.


일을 위한 글을 쓸 때도 있고, 소소한 취미 행위일 수도 있고, 나의 감정 배출을 위한 치유로서 글을 쓸 때도 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나의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한결 정리되고 단단해집니다. 첫 단어를 무엇으로 시작할까 하던 고민이 마무리되어 갈 즈음 내 영혼은 한결 자유로워짐을 느낍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글을 쓰는 것은, 기꺼이 내가 선택해서 하는 나의 즐거움입니다. 그러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 그렇게 써 가는 것이지요.


결심, 다짐, 목표. 뭐 그런 것일 테지만, 나는 그런 모든 것을 프로젝트라고 칭합니다. 누구도 나의 글이 궁금하지 않으니 혼자라도 좀 있어 보이라고, 전문가스럽게 여기라고, 또 꼭 해내야 하는 중요한 일임을 인식하라고, 그래서 그렇게 부릅니다. 화요일에 만나는 인생 스폿, 한 달을 살아보니, 한 달만 프로젝트, 백일의 약속, 가장 최근 웰빙 웨다잉 나이스 나인. 뭐 이런 이름을 가져와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4.

백일의 약속 - 혼자 프로젝트를 합니다


몇 해전 혼자 프로젝트 "백일의 약속"은 하루에 한 번 엄마를 그리워하며 셀프 치유를 위한 글쓰기 프로젝트였습니다.

첫 준비 작업은 지난 노트와 다이어리, 비공개 블로그에 저장해 두었던 글과 사진을 한 파일에 모으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그것들을 하나하나에 제목 설명 느낌을 입힙니다. 세 번째 작업부터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 #글쓰기챌린지 #도전책쓰기 #프로젝트 키워드를 검색하여 한 카페에 가입하고 도전 마지막날까지 하루 한글을 올립니다. 카페 선정 기준은 따로 없습니다. 혼자서는 끝가지 갈 수 없으니 함께 가려는 의도뿐입니다. 네 번째, 다섯 번째까지 카페나 블로그에서 글쓰기 도전장을 옮겨 다니며 글을 수정합니다. 퇴고의 삼원칙 - 가감 삭제 구성이 이제부터 행해집니다. 그러면서 얼추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완성합니다.


최종 원고의 마감일이나 책 수준의 기준은 없습니다. 이제 그만하자, 싶으면 그게 최종원고이고 마감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교열 교정을 끝내면 판형과 배열을 맞추고 표지를 만들어 동네 대학가 인쇄소 골목으로 갑니다. 인쇄소 사장님이 표지로 쓸 두꺼운 색지를 추천해주고 나면 2권 제본을 신청합니다. 저자는 당연 나이고, 출판사는 ‘서점에 없는 책’입니다. 출판시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국제표준도서번호가 없는, 그런 나만의 책. 혼자만 아는 책을 만들고 독자는 가족과 나입니다. 가끔 아주 드물게 "혼독함공" 뜻에 따라 친구와도 공유합니다.

5.

내 인생 실천 언어라면 ‘혼독함공’입니다.


혼! 자

독! 하게 하고

함! 께

공! 유 하는


그러다가 진짜 책을 내보면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더는 혼자 끄적거리는 글쓰기 도전장을 기웃거릴 수만은 없습니다. 글쓰기 코칭을 받아 제대로 된 책을 내기로 합니다. 작년 딱 이맘때였습니다. 글쓰기 카페 글쓰기 챌린지가 끝날 무렵 내 책은 여섯 번째 수정이 끝나는 7월을 보내고 8월 여름, 나는 글쓰기 코칭을 받고 두세 번 더 원고 수정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글쓰기 코칭의 출판 기획 제안서로 투고했습니다.


6.

눈물나는 날에는 엄마, 나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2023년 4월 27일, 봄날, 그 광활하고 드넓은 세계, 서점에서 내 책을 만났습니다. 나와 당신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 눈물 한 방울로 눈부신 날을 맞이했습니다. 누구는 대단하다 칭찬해 주었고, 누구는 축하한다 환호해 주었고, 누구는 수고했다 격려해 주었습니다.


7.

다시 강을 건너 또 다른 우주를 만나겠습니다


그 기적의 강을 무사히 건넌 나는 기쁨과 감격의 한날을 보냈습니다. 저 너머 내가 건넜던 강줄기를 바라보고, 내가 시작한 저 너머의 강기슭을 응시했습니다.


다시 여름과 마주합니다. 다시 한번 그 강을 건너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이었고, 멋모르고 행한 용기였습니다. 그래서 달릴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그 쓰고 고된 여정을 기억하니 두려움이 앞섭니다.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나는 또 죽기 살기로 매달립니다.


글쓰기는, 쓰는 동안 나는 내 일부가 치유되었습니다. 남은 일부의 일부를 치유하러 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나를 읽고 알아차리기 위해 나는 나를 써내려 갑니다. 이제부터 또 한 번 완성이 아닌 완주를 꿈꾸며 나의 서사를 시작합니다. 글 쓰는 자가 매일 맞이하는 일상으로부터 감히 철학을 운운하겠습니다. 그 이야기 끝에서 결국 글쓰기는 태도입니다,라는 결론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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