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일도 집안 내력인가 봅니다

쓰는 자의 일상 철학 006

by 김선하

1.

이모부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며칠 전 막내 삼촌과 전화하다가 '대전 갈 일이 생기겠다' 하시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오늘도 장례식장은 외가 식구들로 북적였습니다. 90인 이모부의 부고는 슬펐지만 덕분에 얼굴 보는 위안도 있었습니다. 못된 말로 '누구 하나 죽어야 친척 얼굴 본다' 하더니 오늘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2.

내 기억에 엄마와 이모는 생전에 친한 자매는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언니뻘인 이모를 언니라 부르지 않고 자야~라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모는 윗사람 대접을 못 받은 것을 서운해했습니다. 엄마는 이모가 혼자 사는 동생보다 남동생만 살뜰히 챙긴다고 언니 대접을 소홀히 했습니다. 두 자매 사이가 그렇다 보니 엄마가 돌아가시고는 나는 이모께 드물게 안부 전화하고 집안 행사 때나 얼굴 보는 사이였습니다.


3.

엄마와 외할머니는 애증의 모녀 관계였습니다. 엄마는 혼자 살면서 독립적인 성격이 억척스러운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면서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에겐 자신의 나약함을 들키지 않으려 애쓴 것이 결국엔 차갑게 모진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외가가 우리 집과 가까이에 살았으니 오가며 들러서 얼굴 보고, 먹을 것을 챙기고, 돌봐주기도 했습니다. 중,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은 외가와 합쳐서 함께 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외가와는 집안 행사에 만나는 게 고작이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편합니다. 옛날이야기 꺼내서 마치 어제 만났다가 오늘 다시 만난 사람처럼 지냅니다. 외가와 생활 방식과 생각도 제법 맞으니 외사촌과는 간간이 연락하고 드물게나마 아이들과 여행도 갑니다.


4.

오늘 장례식에서 만난 가장 큰 어른은 서울 외삼촌 댁 외할아버지입니다. 엄마가 살았을 때, 서울 왕외삼촌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습니다. 엄마는 공부도 잘하고 성공한 대수삼촌(족보로 따지면 나에게는 외할아버지 뭐 그렇게 되는데 나는 어릴 적 엄마 표현대로 그냥 이렇게 부릅니다)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나는 외사촌이 많은데 대수 삼촌이 우리 중에 가장 잘났지. 어릴 때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고 또 숙모가 나를 제일 예뻐했어".

또 엄마가 서울 다녀온 날에는 삼촌말을 빌려 우리 자매에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자식 공부는 꼭 시켜라. 사람은 배워야 한다"


내가 책을 냈으니 친척에게 줄 책을 몇 권 준비해 갔습니다. 물론 책값은 막내 외삼촌이 모두 내 통장으로 입금해 주었습니다. 이 시간을 빌어 표현하지 못한 감사를 전합니다.


대수삼촌은 책표지를 앞뒤로 두어 번 번갈아 보시고, 책 속에 그림도 죽 훑으셨습니다. 팔십 노인의 투박한 떨린 손으로 책을 보물 다루듯 아주 조심스레 정성껏 쓰다듬었습니다. 그 힘든 일을 조카딸이 해냈다면 자랑스러워하며, 마치 수고했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듯 말입니다.


5.

대수삼촌은 1990년대 즈음부터 수십 년 동안 <게시판>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하셨습니다. 직물회사를 운영하면서 문학과 문예에 뜻이 있어 출판사를 차렸는데 지금으로 치면 독립출판 규모 정도로 이후에는 족보 발행 위주로 운영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출판업은 경기 불황이라며 글 쓰는 사람도 멋지고 대단하지만, 책 만드는 사람도 고된 일을 하니 훌륭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글을 쓰고 책을 낸다는 것은 용기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책 하나를 완성했으니 앞으로 더 큰일을 해낼 거다" 찬사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책을 만드는 일이 돈을 버는 데 성공하기는 어렵겠지만, 위대한 일이고,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하셨습니다.


6.

내가 오래전 방송작가 일을 시작할 때 외사촌은 기자였고 대수삼촌 딸도 방송작가였습니다. 나보다는 이름 있는. 그때 엄마가 "글로 먹고사는 건 집안 내력인가 보네! 엄마도 대만에서 약초 들여오면서 직접 책 만들어서 홍보했잖아. 우리 집안에는 글 쓰는 사람도 많았고 출판사 하는 사람도 있도. 글 쓰는 사람은 대단한 거야" 하며 상당히 흐뭇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옆에 있던 외삼촌이 마디마디 굽은 손가락을 어렵사리 펴서는 다소 떨리는 손으로 표지를 매만지며 고맙다고 하십니다. 괜스레 코끝이 찡해집니다.

“선하가 옛날에는 작가였지. 왜 글 안 쓰나 했는데 지금 또 작가네. 나는 선하가 작가인 게 좋다.”


옆에 있던 이모가 쐐기를 박으십니다.

" 내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요즘 눈이 아파서 못 읽지만, 그래도 우리 조카가 낸 책인데 내가 읽어줘야지."


평소에는 조카 자랑을 아끼는 큰외삼촌이 연신 웃으며 주변 장례식에 온 손님들께 내 자랑을 하십니다.

“얘가 내 조카인데 작가네. 내 엄마랑 지 엄마 나오는 글을 썼어.”


이제 70, 80이 된 노친네들이 외종질이 책을 냈다고 이렇게 자랑스럽게 떠들러 대는 것을 보니 진작에 낼 것을 그랬구나 싶습니다. 책 잘 냈다 생각합니다. 여러 모도 또 고마운지라 나는 눈물 대신 웃으며 열심히 살겠다 다짐합니다.


추신,

오래전 문수행이라는 법명을 받을 때, 글 써서 법보시하라고 이런 이름을 주셨나 웃음며 넘겼습니다. 하늘도 나에게 글로써 살라하고, 쓰는 일이 집안 내력이라면, 나는 계속 글을 쓰겠습니다. 글 책 출판이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춘 집안이니 그럴싸한 명분이라면 명분이 되겠습니다. 나는 글 써야 하는 사람임을 알고, 글 쓰는 사람으로서 바르게 성실하게 쓰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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