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rs, 시선 끝의 연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국립 나비 정원에서 한 무슬림 여인을 만났다. 말레이 어로는 Taman Rama-rama(타만=정원, 라마 라마=나비) 불리는 이 사랑스러운 나비 정원에 입장 마감 직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를 떠나기 하루 전날, 어쩐지 나비들을 보고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급하게 결정하고 도착했던 터였다.
그녀는 나와 함께 마지막으로 입장했는데, 그녀의 남자 친구는 키가 꽤 크고 호감형의 무슬림 남자였다. 그들은 말레이반도에 있는 수도로 여행 온 보르네오섬에 사는 말레이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의 한 손에는 아담한 연보랏빛 꽃다발이 들려있었고, 샛노란 빛깔의 긴 무슬림식 원피스(바주꾸룽 Baju Kurung)와 새하얀 히잡(뚜동)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어서 인지 그녀의 또렷한 이목구비에 더욱 눈이 갔다.
우리는 나비 정원의 정원사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어젯밤 갓 태어난 아틀라스 Atlas 나방 한 쌍과 말레이시아의 국가 나비인 라바 브룩 Rajah Brooke을 만져볼 기회를 운 좋게 얻게 되었다. 아직 아기라서 인지 날개의 색이 성충보다 더 뚜렷했고 뱀 무늬를 닮은 위협적인 무늬가 아찔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갓 태어난 나방과 나비를 손에 번갈아 얹으며 함께 웃었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무슬림 복장을 한 여자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이 모두 억압받고 있으며 불행한 처지라고 함부로 판단했다. 그런데 내 앞에서 천진하게 웃는 그녀를 보면서 내가 그녀들 개개인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그저 머리로 습득한 사회문화적 지식으로 그들의 인생을 함부로 동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비를 온몸에 얹고 연인을 향해 수줍게 웃는 그녀가 불행한 사람이기는커녕 행복감에 젖은 한 마리 나비처럼 보였다.
타만 라마 라마, 타만 라마 라마, 타만 라마 라마, 입가에 맴도는 나비 정원이라는 의미의 말레이어를 주문처럼 되뇌이면 눈을 감아도 보일듯한 그녀의 미소에 깃든 사뿐한 평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