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tains, 솟아오르고, 쏟아지는>
아열대의 여행지에서 힘차게 쏟아내는 분수를 자주 마주쳤다. 분수의 존재적 필요성에 대해 의문이 일었다. 어쩌면 분수로 폭포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걸까, 고여있지만 죽어있지 않은 물웅덩이를 가지고 싶었던 걸까, ‘흐름’에 대한 욕망이 실현된 기이한 구조물이 아닐지 골똘히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 계속되는 중력의 작용으로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쳐지고 있지만(그래서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고 걸어 다니고), 홀로 우뚝 솟아오르고 있는 모습에서 결연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거꾸로 선 물줄기. 그리고 이내 힘차게 아래로 파편으로 쏟아지며 갈기갈기 찢어지는 물방울들. 그리고 다시 한 곳으로 상승 그리고 하강.
일상에서도 분수를 보면 기분이 어쩐지 상쾌해진다. 햇빛이 굴절돼 뜨거운 여름 분수대 곁에 아른거리는 무지개는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행복 중 하나일 것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분수대들은, 특히 그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듯 존재감을 위시하는 관광지 한복판의 분수들은 기괴하다. 사람들은 넋 놓고 그 쾌활한 물줄기들을 빙 둘러 바라본다.
젊음과 생명 그리고 사랑, 물처럼 샘솟는 듯한 것들의 상징이며, 물이 나지 않는 나라에서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동양에서는 은밀한 곳에 숨어있는 나른하게 흘러내리는 폭포를 사랑하지만, 서양에서는 이 과시적이고 인위적인, 끊임없이 지속되는 긴장과 힘이 필요한 조형물을 사랑한다.
인위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반감을 품는 세대가 아니다. 자연을 역행하고자,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힘은 도처에 자리 잡고 있고, 오히려 나는 초자연의 무한함과 광대함 앞에 우리 인간의 그 인위가 애처롭게 보일 때가 있다.
초자연의 장관이 우리를 압도하며 우리가 한 점으로 사라질 때, 자신의 존재가 흐릿해지며 받는 위로와 위안도 사랑하지만, 저 연약한 분수의 약둥이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흐르는 물을 상기시켜 주는 지표가 되는 것이 사랑스럽다.
결국은 인위보다는 '자연스럽다'는 표현에 도달한다. ‘인위적으로’ 자연스러움에 도달하려면 한낱 인간으로서는 온갖 애를 써야 한다. 자연스러운 스타일, 자연스러운 외모(모난 곳 없이 말끔한 외모), 자연스러운 태도. 그 아름다운 곳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는데!
갈기갈기 찢겨 흩어지는 분수 물방울처럼 자연 앞에서 우리는 그저 인위적이고 허황하며 우스꽝스럽다. 그것이 우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