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an rama-rama, 기이한 것들의 정원>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쿠알라룸푸르 도심을 활보하다 보니 페낭이든, 랑카위든 말레이시아의 다른 관광도시를 가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10일간의 일정이 지나갔다. 나는 말레이시아를 너무 몰랐고, 표지판 하나부터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그들이 즐기는 밤과 낮의 문화, 거의 거리마다 있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았던 힌두교사원, 이슬람 사원, 중국식 사원들을 누비느라 바빴다.
사람들이 추천하는 한적한 휴양지도 좋지만, 서울처럼 도심 한가운데에서 느낄 수 있는 단단한 밀도의 지역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보는 것을 선호한다. 도시의 양면을 보여주는 악취 풍기는 거리라던지, 곳곳의 그래피티들, 부랑자들과 폐건물들이 이루는 장면 속에 '진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그에 대비되는 수도의 화려함은 나라의 문명과 사회 문화적 트로피들을 한꺼번에 전시해놓은 진열장같아서 새로운 나라에 대해 손쉽게 알 수 있는 치트키는 역시 수도 여행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쿠알라룸푸르 수도 중심부의 페르다나 식물원 근처에는 말레이시아의 국립 모스크인 마스지드 느가르 Masjid Negara부터 국립 박물관, 이슬람 예술 박물관, 쿠알라룸푸르 새 공원, 천문대까지 나라의 자랑거리들을 전시하는 공간들이 밀집해있다.
그 대단한 구경거리들 사이에서 여행의 마지막 날 나비 정원에 들렀던 것은 나비 정원을 지칭하는 말레이어 때문이었다. 표지판 중 말레이어로 정원, 공원은 타만 Taman, 나비는 라마라마 Rama-rama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 타만라마라마, 타만라마라마 하며 재밌는 외국어 발음을 입으로 되뇌었다. 사실 나비정원에 대해 큰 기대는 없었다. 어렸을 적 가본 시시했던 지역의 나비 축제를 더듬어보며, 나비를 보면 얼마나 많이 보고 가까이 볼 수 있겠어? 라는 비아냥거리는 짐작만 있었고, 미루고 미루다 정말 더 미루면 볼 수 없는 마지막 날, 입장 마감시간 턱걸이로 정원에 들어섰다.
그렇게 들어간 정원에는 나와 친구 이외에 다른 한 커플 밖에 없었다. 인기척 없는 공원에 들어서면서 열대 지방 녹음의 후끈한 열기를 느꼈다. 자동반사적으로 날아다니는 작은 생물체들의 기척을 눈으로 좇았다. 한 마리, 한 마리씩 천천히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의 행적을 쫓다 보니 자연히 무리 지어있는 군집들이 나타났다.
인간의 정원인 것을 잊지 않도록 곳곳에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다리들과 분숫물이 치솟고 있었다. 하늘에는 그물 천정이 간신히 야생과 문명을 구별하고 있으며, 나비들은 사람이 차려놓은 과일 밥상 위에 들러붙어 꿀과 당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핀터레스트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기이하고 아름다웠던 야생의 이미지가 눈앞에 실재했다.
운 좋게도 폐장 시간까지 남아있는 이 불친절한 손님에게 부화방으로 보이는 벽걸이용 유리 찬장에 갇혀있던 나비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전날 밤 갓 태어난 아틀라스 나방 한 쌍과, 검은 날개에 노란 얼룩이 있는 십여 마리의 나비들이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미 성충인 나비에게도 ’ 아기‘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이 갓 세상에 나온 아가 나비, 나방들에게 자신의 몇 십배 크기의 인간이 부담스러운 관심의 시선을 보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기이했을까. 자연에도 눈이 있다면 인간이라는 동물이 자신들을 기어코 정복하겠다는 어리석은 욕망을 뿜어내고 있는 모습이 기이하게 보일까?
아틀라스 나방의 날개에는 특유의 뱀 눈 모양 무늬가 돋보이는데, 곤충 치고는 거대한 크기의 날개에 검은 빛이 섞인 얼룩덜룩한 무늬가 기괴한 것이 특징이다. 자연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은 그 만큼의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만약 우리 눈에 기괴한 그 무늬가 그들의 생존 무기라면, 인간이 자연을 위협이라 느끼며 창조해 낸 많은 사물들도 그들에게 기괴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혼란스럽기만 한 모습이 자연을 닮아있을까 무심코 비교하게 된다. 감히 우리가 자연을 정복해 냈다고 과대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저 어리석기만 한 인간만의 논리 안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더 큰 자연의 섭리가 사우론의 눈처럼 가소로운 듯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격력이 사실은 최약체인 인간이 발악을 하며 문명과 기술력을 일구어냈지만, 그저 몇 번의 강력한 기후와 계절이 지나면 사라져 버릴 연약한 것들이니 말이다.
인간의 영악함과 간악함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제지할 수 있을만한 자연이 가진 힘을 숭배하고 싶다. 우리가 어떠한 악으로 무장해도 그저 위협적이기만 무늬이기를, 자연을 포함한 세상을 송두리째 파괴해 버릴 신의 힘을 쥔 괴물이 아니라 그래도 결국에는 자연을 닮은 조화로운 선택을 하여 모두가 함께 맞는 느슨한 종말이 오기를 바란다.
누군가 소셜 계정에 남긴 아름다움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객관적인 해석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말에,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각 주체가 가진 여러 주관적인 세계가 존재하느냐, 하나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세계 안에 우리가 개체로 존재하느냐에 대한 고민처럼 들린다고 답했다. 그리고 나라는 주체가 받아들이는 아름다움은 적어도 다음과 같다고 덧붙였다.
누군가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보이는 것이 단순하게 전부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저 '시각적인 아름다움' 안에 우리가 아직은 알 수 없는 차원의 정보들이 존재하여, 그래서 아직 설명되지 못하고 있는 그러나 우리의 동물적인 감각 능력과 직관으로 습득하는 추상적인 정보들이 존재한다는 거죠.
그렇기에 사람의 주의력 정도의 차이(스펙트럼)에 따라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정도가 다르며, 주의력이 훈련됨에 따라 더 많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는 우리의 존재나 인식에 무관하게 제자리에서 그저 여러 상호 보완 관계에 따라 존재하고 있을 뿐,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스스로의 몫, 그리고 먼저 발견한 자의 나눔에서 도움을 받을 뿐인 것 같아요.
주의력을 기르기 위해서 녹색의 자연을 더 자주 바라보고 음미하고 싶다. 인간보다 더욱 가만하거나 빠른 것. 더 연약하거나 거대한 것. 도시인이자 문명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책임과 소임을 다하되, 녹음 안에서의 방랑으로 자유와 해방을 얻기를 바란다.
우리가 나방들처럼 사뿐하지만 위협적인 무늬를 가진 아름다운 존재이기를, 자연 안에서 그 만큼의 역할을 하는 종種이기를 희망한다. 나비의 정원에서 갇힌 줄도 모르고 무리 지어 사는, 측은하지만 그 역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선택을 하는 존재. 세월에 낡아 찢긴 천정의 그물 너머, 세계 밖으로 홀연히 날아가더라도 내내 사뿐하기를!
타만라마라마, 타만라마라마 주문을 외워본다.
녹색 방랑, 이미지여행기 202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