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저찌 꾸역꾸역 해내자.
최근 심리학 교수님들이 추천하는 최고의 멘탈관리 멘트라는 영상을 보았다.
https://youtube.com/shorts/P09MU30YP48?si=mylMzC40ySQX0HCA
단어가 주는 어감을 생각하면 뭔가를 하기 싫어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면 아무리 싫어도 결국 어떻게든 해내는 강한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말이라는게 참 재밌다. 같은 말이어도 관점에 따라 이렇게나 달라지니 말이다.
어쩌면
제일 중요한 것은 얼마나 걸리든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끈기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부끄럽지만 치열한 취업 준비와 사회생활의 파고를 넘으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성실함'이라는 무기보다 타고난 '재능'의 광채를 선망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성실함이란 즉각적으로 가시화되는 강점도 아니거니와, 누군가 나를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인고의 시간을 견뎌주지 않는다면 그 진가를 검증받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당장 형형하게 빛나는 재능을 마주할 때면, 나의 지루한 반복은 한없이 초라해 보이곤 했다.
맞다, 당장 반짝 반짝 빛나는 재능이 나는 부럽더라.
이번달에만 10개가 넘는 곳에 서류를 넣었고 한 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불합격의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나의 알고리즘에 뜬 영상에 힘 입어 나는 다시 '어찌저찌' 신발 끈을 묶고, '꾸역꾸역' 나의 하루를 살아내봐야겠다.
재능이 단거리 선수의 폭발력이라면 성실함은 장거리 마라토너의 고독한 사투와 같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내가 믿는 것이 있다면 화려한 재능조차 결국 이 지독한 '꾸역꾸역'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면 완성에 이를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나에게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자각은 역설적으로 나를 성실함이라는 유일한 동아줄에 매달리게 한다.
비록 지금은 수면 아래에서 묵묵히 발버둥 치는 단계일지라도, 이 '어찌저찌' 이어가는 하루들이 복리로 쌓여 언젠가 나만의 고유한 궤적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
아직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나를 믿고 나아가는 이 무모한 성실함을 믿어보기로 했다.
오늘도 나는 어찌저찌 하루를 열고, 꾸역꾸역 내일을 준비한다. 그 끝에 마주할 나만의 빛을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