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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퀸스드림 Dec 24. 2021

돈 앞에서 비굴해질 때 읽어보렴.

너의 서러운 상황들이 너를 일으킬 거야.


딸 엄마야.


어제는 우리 둘 다 속상한 일이 있었던 하루였구나.


우리는 저녁에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누잖아. 그때 우리 딸이 “오늘은 럭키하지 않았어!” 하면서 꺼낸 말에 엄마도 많이 공감했단다.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상을 주는데 우리 딸하고 어떤 아이하고 둘만 안 받았다고 했잖아. 얼마나 속상했을까? 근데 엄마가 보기에 선생님이 왜 매번 2명씩 빼고 주시는지 모르겠다. 지난번 문제 풀 때도 2명 빼고 다 줬다면서…… 선생님만의 교육방침이긴 하겠지만…. 너무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넌 이미 엄마에게 최우수상이거든. 알지? ^^






엄마도 오늘 회사에서 정말 속상한 일이 있었어. 퇴근하면서 찔끔 눈물을 흘릴 정도로 속상했단다. 생각해 보면 별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엄마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람한테는 화가 나더라고. “더럽고 치사해서 그만둔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하지 못했어. 그래서 더 속상했단다. 속상하니까 퇴근길이 서러운 거야.



속상한 마음에 바로 집에 갈 수가 없었어. 이 기분이 너에게 그대로 전해질 것 같았거든. 그래서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 들어 간 거야. 친구에게 내용을 말했더니 그 친구는 현실적인 답을 해 주더라. “그냥 참고 다녀. 어디 가서 그 월급 못 받아. 아줌마가 이직이 쉬운 줄 아니? 너 딸 키워야잖아? 엄마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해!” 그 현실적인 답이 엄마를 더욱 속상하게 하더라.




집에 오면서 생각해 봤어. 내가 진짜 억울하고 속상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만약 열받는다고 이 일을 그만둔다면 생계를 이어나갈 수가 없어. 딸아이를 양육할 수도 없고, 지금까지 생활을 이어나갈 수가 없는 것이지.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이직은 할 수 있을까? 30대 때만 해도 세상 무서운 줄도 몰랐고, 노력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40대가 되니까 겁이 많아지더라. 



아무리 내가 노력하면서 살아도 되지 않는 것이 있더라고. 재취업도 어렵고, 40대 중반 아줌마를 다른 회사에서 지금 받는 월급으로 고용해 주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하자니, 코로나라는 상황 때문에 현재 하고 있는 소상공인들도 문을 닫는 형편인데 내가 지금 시작할 수 있을까? 부정하고 싶었던 친구의 현실적인 대답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더 목을 메이게 하더라.



아.. 진짜!! 40대 가장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얼마나 목이 메고 열불이 날까? 특히나 시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당했다면 더 그럴 거야.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분에게 혼이 났다면 열 번이라도 그럴 수 있는데, 이건 살살 눈치만 보고, 윗사람한테 아부나 하는 그런 형편없는 사람한테 당했다고 하니까 더 화가 나는 거야. 나 또한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다는 사실이 더 속상하더라.







너 잠든 거 확인하고 혼자 있다가 꺼이꺼이 울었다. 돈 앞에서는 사람이 비굴해질 수밖에 없구나. 

속상해도…… 내 더러운 성질 다 보이고 싶어도 현실 앞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도 속상하더라. 인정하고, 사회생활은 원래 이래! 이러면서 쿨하게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어제는 그게 어렵더라고. 날 잡아서 실컷 울어봤다.



어제 울고 있는데, 한 여인이 생각나더라. 오스카상을 받은 윤여정이라는 여배우 말이야. 수상 소감이 얼마나 화제가 되었는지, 그 이후로 그분의 어록들이 정말 많이 화재가 되었지.



그분은 지금 70세 정도 되신 분이시거든. 20대 때 화려하게 데뷔하셔서 주인공으로서 멋지게 연기 활동을 하신 분이셨어. 그리고 그때 최고의 인기를 받은 남자 가수와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가셨어. 그 후 이혼을 하셨고, 그분이 아들 둘을 책임졌기 때문에 다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야.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와서 단역부터 시작한 거지.



그때 당시 한국에서는 이혼녀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단다. 그만큼 보수적인 사회였지. 아무도 그녀에게 일을 주지 않았고, TV에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면서 욕을 했던 시대였단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단지 이혼했다는 이유로 일도 못하고, 손가락을 당하며 욕을 먹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존심 상했을까? 그것도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까지 간 건데...... 주인공을 했던 사람이 단역을 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자신의 뒤에서 수군수군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진짜 사람 미치는 짓이었겠지.



그런데 그분이 이렇게 인터뷰를 하시더라.

“과거 이혼은 주홍글씨 같았고 이혼녀는 고집 센 여자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혼녀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결혼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어긴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TV에 나오거나 일자리를 얻을 기회도 없었다. 끔찍한 시간이었다. 두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떤 역할이라도 맡으려 노력했고 과거 한때 스타였을 때의 자존심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 오스카상을 타실 때도 그 영광을 아이들에게 돌리더라.


“그리고 나의 두 아들에게도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일을 하고 영화를 찍는 것은 모두 아이들의 잔소리 때문입니다. 두 아들이 항상 저에게 일하러 나가라고 하는데,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녀 또한 두 아들과 함께 살아야 했기 때문에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였어. 그게 단역이던 어떤 역이던 물불 가릴 틈이 없었던 거였지.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수모를 겪으셨을까? 얼마나 많이 자존심이 상했을까? 더럽고 치사해도 아이들 둘을 양육해야 한다는 그 책임감 때문에 그 모욕들을 다 견딜 수밖에 없었던 거잖아. 오늘 더더욱 그분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것 같더라.



잘 살고 있다가도 이렇게 한 번씩 나를 건드는 사람이 있으면 힘없이 무너지곤 해. 무너졌다가도 너를 보면서 또 일어나곤 하지. “내가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내가 더 똑똑했더라면 그런 사람한테 당하지 않았을 텐데……”라며 스스로를 탓하기도 한단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를 탓하다 보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되어 있더라. 그러니까 이런 거는 제발 안 했으면 좋겠다.



그분이 했던 말 중에서 계속 화자가 되는 말이 있단다.

“배우는 돈 필요할 때 연기를 제일 잘해. 19금 딱지가 붙은 영화에서 노출 수위가 높아 다른 여배우는 거절했는데 당시에 나는 돈이 필요했어. 나 역시 꺼려졌지만 돈이 너무 급해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어.”라고 솔직한 인터뷰를 한 것으로 유명했단다.



그래……엄마는 어젯밤에 그렇게 울고, 네 덕분에 아침 일어나서 다시 출근 준비를 하고 나왔단다. 회사까지 오는 길이 멀게 느껴졌지만, “난 지금 내 월급이 필요해”라는 이유로 내 책상 앞에 앉았고, 내 옆에 얼굴을 붉혔던 그 상사가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늘 하루를 보냈단다. 아직도 앙금은 가라앉지가 않았지. 마음속에는 이미 사표를 써서 깊숙이 넣어두었단다.






맞아…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이고, 인생은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다. 그런데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이야. 다행인지 불평불만만 하고 있을 여유도 없다는 것에 감사하다. 어제는 퇴사하고 싶어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서러움에 울었지만 오늘 출근해야 하는 엄마는 더 이상 서러움을 탓할 시간이 없다. 오늘을 열심히 살 수밖에 없다는 게 나쁘지 않아. 솔직히 감사해. 네 덕분에 틈틈이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앞으로의 일들도 생각하고 계획해야 하니까.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만의 방법으로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잖니. 이렇게 글을 쓰지 않으면 오늘을 잊어버릴 것 같아. 그래서 가장 생생할 때 그 마음 그대로 네게 남겨주고 싶다. 분명 너도 이럴 때가 있을 것이거든.



엄마는 네 덕에 다시 일어났어. 수상 소감은 아니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엄마에게 성공 이유를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하려고!! 하하하 글 쓰다 보니 이미 마음이 풀렸네.

고마워. 딸! 정말 네 덕분이야.



네 덕분에 정말로 잘 살고 있는

엄마가




PS. 인생 서럽다... 하지만 그 서러운 인생이 너를 다시 일으킬 것이다. 엄마는 믿어. 그리고 그 믿음이 나를 또 다른 곳으로 이끌 거야. 그럼, 그럼.... 우리 그 믿음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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