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가 아까워 주워 담기 시작했다

경력전환 그녀의 슬기로운 사회생활

by 퀸스드림

나는 김비서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예쁘고 어린 비서도 아니고, 젊은 사장님을 모시며 로맨틱을 꿈꾸는 그런 나이도 아닌 그냥 40대 중반의 아줌마 비서이다. 사장님은 60대 후반의 사장님이시고, 어떻게 보면 딱히 비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본인의 일을 스스로 다 알아서 잘 하시는 분이시다. 단지 다리가 불편하시다는 것 외에는 일반인들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이시고, 더 많은 것을 하시는 분이시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 회사에 들어와서 해외무역업무와 비서로 8년을 일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다. 그 이후로 5년. 나는 말로만 듣던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서 육아에 전념했다. 처음에는 나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선물 받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선물이 선물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일을 하고 싶었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그때 사장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다. 그런데 아이가 어리다 보니 그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일하고 싶었지만 막상 9 to 6의 일을 하려고 하니까 아이가 걸렸다. 너무 어린아이라서 그 아이를 두고 나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거절했는데, ‘다시 갈 것을 그랬나?’ 하는 나의 양가감정을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육아를 하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일본어 과외도 해보고, 인터넷 쇼핑몰도 해 보고, 책도 쓰고 강의도 해봤다. 지금 생각해 보니 딱히 망한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성공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아마 이 정도면 경력단절 여성들이 도전해 봤을 만한 일들을 한 번씩 건드려 봤다. 핑계이기도 하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고 나는 앞으로 계속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나와 비슷한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커리어 코칭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여성벤처에 도전해서 사업 자금도 받았고, 오랫동안 공부해서 자격을 갖췄고 새해에는 작게라도 나의 사업을 시작하리라 굳은 다짐을 했는데, 신은 나와의 반대 계획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나에게 개인적인 사정도 생겼고, 또 그 시기에 어쩜 운명의 장난처럼 사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나의 꿈을 이룰 것이냐’ ‘다시 회사로 갈 것이냐’라는 남들이 보면 배부른 고민에 빠진 나였지만, 돈 때문에 회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다. 한번 그만뒀던 회사에 다시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5년간의 공백 기간이 나를 움츠리게 했다. 나와 이름을 부르며 친하게 지냈던 남자 동료들은 이미 자기의 자리에서 최고 관리직이 되었고, 나만 5년 전의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갔다.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혼자 보면서 나의 재취업기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건 인생도 그렇지만 모든 것에 반전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회사 생활도 그랬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눈물을 머금고 시작해야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힘들어진 요즘 자영업 대신 재취업을 선택한 나의 선택이 신의 한 수 였다. 그리고 직장 생활은 쉬워졌다. 업무가 쉽다는 말은 아니다. 말 그대로 사회생활이 달라졌다. 요즘 자주 등장하는 슬기로운 사회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이렇게 된 이유를 생각해 봤다. 그동안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애 키우고 살림했던 모든 경험들이 나의 회사 생활을 슬기롭게 만들었으며 아줌마 근성이 지금의 이 글을 쓰게 만든 계기가 된 것 같다. 예전에도 분명 사장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말씀을 해 주셨다. 그때 와닿지 않았던 말들이 5년간의 공백 기간을 두고 다시 들으니 버리기 아까운 말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이야기들과 겹쳐지는 부분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을 경험으로 터득하신 노하우에서 나온 이야기는 책으로 읽는 것과는 다른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주워 담기 시작했고 나의 생각을 담아 글로 써보기로 했다. 아줌마 근성으로 다시 시작한 재취업기와 주워담은 사장님의 어록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특히 지금 아이를 업고 있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늘어난 티셔츠. 아이가 토한 자국의 옷을 입고 있으며 지금 이게 무언가... 내 삶은 다시 애 낳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내가 할 말이 많이 있을 것 같다. 당신이 업고 있는 아이가 당신을 일터로 내 보낼 것이며 (나처럼) , 아이를 힘들게 양육하고 아이와 울었던 시간들, 아이 덕분에 늘어나게 된 인내심 덕분에 분명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몸매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보장할 수 없지만, 다시 화장을 하고, 예쁜 옷으로 커버할 능력을 갖추게 될 터이니 지금 그 아이와 충분히 씨름하길 바란다. 그 씨름이 당신을 선수로 만들어 줄 것이다. (나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