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될 때
나는 늘 심각했다. 정확하게 딱딱 맞춰 들어가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그린 큰 그림을 벗어나면 견딜 수 없이 싫어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잘 살고 그게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나의 일이 그랬었다.
일본과의 연락을 주로 담당했던 나는 일본의 사고방식이 나와 맞았다. 뭐든지 원리원칙 주의였고, 철저하게 프로의식이 요구되는 것을 좋아했다. 해외 무역일이다보니 사고가 나지 않도록 몇 번의 점검과 확인사살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 제 시간에 물건이 제대로 도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어긋났다. 예를 들어 A항구로 보내야 할 것을 포워딩 업체랑 커뮤니케이션이 잘 못되어 B항구로 갈 경우, 다시 A로 옮겨야 하는 비용과 예약해 놨던 배 스케줄이 딜레이 되고, 그로 인한 고객 컴플레인 등등 차례차례 다가올 문젯거리들이 있기 때문에 실수를 하면 안 되었고 항상 긴장을 하며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작업을 했어야만 했다.
일을 오래 하다보면 능구렁이가 다 되어서 지금 방법이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하면 되는데 그런 융통성이 있었던 때는 아니었다. 워낙 많은 물건들이 한꺼번에 출고가 되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사고가 날 확률이 많아서 나는 늘 도끼눈을 뜨고 있었다. 협상이라는 이름하에 가격을 깎아달라는 협의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유리한 무언가를 해 달라고 해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상대의 잘못된 점 혹은 약점을 잡아서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누군가와 늘 싸워야 하는 일을 했던 것 같다. 아무도 나에게 쌈닭의 일을 시키지 않았는데, 나 스스로가 그렇게 된 것이다.
지금 보면 일 못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때는 진짜 몰랐다. 그냥 그렇게 일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고, 내 일에 프로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인상은 늘 차가웠고, 항상 사람들 사이에 벽을 놓지 않으면 안됐다. 자신이 실수하는 것을 가장 용납하지 못했으며 누군가가 실수를 하는 것도 너그러이 봐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사장님은 늘 말씀하셨다.
“인생 뭐 있냐? 재미있게 좀 살자!”
늘 나에게 웃으며 장난끼 가득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이 “너 일 좀 잘해!”라는 말로 들렸다. 아무리 장난끼 가득한 말투로 말을 해도 나 혼자 심각하게 들은 것이다. ‘도대체 사장님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지? 지금 웃음이 나올 때가 아닌데…’
아무리 사장님이라해도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사람들보다 몸도 불편하셔서 억울한 일도 많으실 텐데, 한 회사를 맡고 있고, 3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으니 나보다 심각한 일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늘 웃는 얼굴이었고, 나에게는 인생을 즐기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 주셨다.
5년을 경력단절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나는 사장님께 그 말을 또 들었다. 사장님의 사정도 비슷한 것 같다. 여전히 몸은 불편하시고, (목발에서 이제는 휠체어에 의존), 여전히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많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까지... IMF보다도 더 힘든 지금 이시기에 나에게 똑같은 말씀을 해 주셨다.
그런데 이제야 그 뜻을 알 것 같다. 일이란 건 온 몸에 힘을 줄수록 되지 않는다. 나 혼자 심각해서 딱딱한 얼굴로 돌아다녀봤자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상을 쓰고 다니면 관계도 어려워져서 되는 일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냥 지금 내 일이 힘들고, 내가 힘들다는 것을 누가 좀 알아 줬으면 줬겠고, 그래서 힘든 티를 팍팍 내면서도 내 일을 꾸준하게 하는 게 잘 하는 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람들 말로는 아이 낳고 착해졌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가 깨달아진 게 있다. 내가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아니 그런 일이 더 많다는 것을……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힘으로 풀려고 하면 절대 풀리지 않는다는 것과 오히려 부드럽게 다가갔을 때 의외로 쉽게 풀리는 수가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육아는 해외무역보다 더 어렵다. 우선 처음에는 언어교환이 안돼서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고 나도 경험이 없다보니 매번 실수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했다. 이제 서로의 언어를 인식하고 알아듣게 되더라도 그때부터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나 또한 아이의 말을 듣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정해진 스케줄이라는 것이 없고, 아이의 스케줄에 맞추다보니 계획할 수도 없고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정해진 틀에 계획된 시스템에 맞춰서 살았던 나에게는 멘붕의 시간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간들이 7년차가 되어보니 이제는 많이 내려놓게 된다.
처음부터 정해진 틀이라는 것은 없었고, 그때 그 상황에 가장 알맞은 선택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과, 그 누구라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실패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많은 욕심들을 내려놔야 그때부터 인생의 재미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경험한다는 것. 그것이 꼭 불안과 초초함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육아를 통해서 배웠다.
재미있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즐길 줄 아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즐길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극과 극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내공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육아를 5년 이상 해 본 사람이라면 나는 그 내공이 어느 정도 우리 몸 깊숙하게 박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육아 5년이면 결혼생활이 6~7년 정도 된 사람들인데, 그 시간들을 견뎌온 사람들은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서 내공이 생겼을 것이다. 시월드라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나를 다시 태어나고 싶게 만드는 남편과의 관계 (다시 태어난다면 안 만나고 싶은), 그리고 내 인생을 여러 가지 이유로 뒤흔들어 놓았던 육아를 하면서 울고 웃었던 그 시간들을 겪은 사람이라면 이젠 내공의 세계에서 하산해도 될 것 같다.
해병대를 제대하고 나면 사람들이 해병대도 다녀왔는데, 이쯤이야…… 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우도 많다. 육아를 한지 7년차가 되는 지금 어떤 일이 생겨도 이쯤이야... 하며 문제를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장님은 회사 경영한지 30년이 넘으셨고, 인생을 살아온 게 70년이 다 되가시니 웬만한 힘든 풍파는 다 견뎌오셨다. 그랬기 때문에 하실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온 몸에 힘주고 심각하게 일해 봤자 나만 손해다. 오히려 문제는 꼬이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나빠지고, 내 힘에 내가 지쳐서 쓰러질 지도 모른다. 요즘 신입 분들 일하는 거 보면 예전의 내 모습이 보인다.
나도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재미있게 살자! 인생 뭐 있니?
재미있게 일하고!!! 재미있게 즐기고!!! 재미있게 사는 게 남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