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서 꼭 해야 하는 것
늘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와 계시는 사장님이다. 거의 30년을 한결같이 7시 반이면 출근하신다. 나도 사장님 시간에 맞춰서 출근하려고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도저히 그 시간에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나의 기상은 4~5시 사이. 눈 비비고 일어나서 아침 루틴을 돌고 6시 45분쯤 아이와 함께 출근한다. 눈도 못 뜨는 아이를 안고 업고 양 어깨에 아이 가방 내 가방 들고 어떤 날은 여분의 준비물 가방까지 어깨에 메고 나갈 때면 내게 부여된 인생의 짐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운전을 해서 친정집에 도착 후 아이를 맡기고 그때야 회사로 출근한다. 지하철에 타면서 스마트폰은 잠시 가방에 넣어둔다. 손에 들고 이따 보면 계속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요괴한 물건이기에 잽싸게 가방 안에 넣고 책을 펼쳐든다. 차를 놓고 뚜벅이를 자청하는 이유다. 지하철은 유일하게 내가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 및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의도까지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늘 지하철은 복잡하고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닐 때도 있다. 전에는 이런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는데, 5년간의 단절 기간을 겪어본 나는 이렇게 다닐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나갈 수 있다는 곳이 매일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내가 오버를 하는 수도 있겠지만, 단절 기간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일 것 같다. 특히 요즘과 같이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지금, 급여 나오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사소한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나의 감정과 태도도 바뀌었지만, 나의 패션 또한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나도 패션 피플로서 머리끝에서 발끝 + 가방까지 신경 쓰고 나갔는데, 5년을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나도 많이 바뀌었다.
우선, 신발은 편한 신발. 가방은 배낭으로 멋스러움보다는 편리성과 실용성을 따지게 되었다. 힐을 신고 20kg 다되는 아이를 아침에 케어해서 온다는 자체가 이미 피곤하다. 화려한 여의도 직장인들 사이에 주눅이 들기는커녕 이제는 그런 모습 자체가 내게 중요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선남선녀 사이에 내가 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렇게 떠밀려 사무실에 들어오면 항상 나보다 먼저 사장님이 와 계신다. 아침에 아무리 힘들었어도, 그 전날 아무리 우울한 일이 있어도 사장님 문 앞에서는 나 또한 표정 바꾸고 활짝 웃는 얼굴로 “오하요 고자이마스!!!” 하며 프로의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사장님의 첫 모습은 핸드폰 앱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내가 이 회사에 처음 들어온 14년 전에도 늘 이 모습이었다. 사장님은 나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나이 들어서 꼭 해야 하는 게 뭔지 아니? 바로 공부하는 거야.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란다. 공부하지 않으면 사람이 변하지 않아.
이미 다국적 회사를 30년 넘게 경영하신 사장님답게 영어 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시고, 간단한 회화까지 더하면 중국어, 스페인어 등 몇 개 국어를 하시는 사장님. 그의 비밀은 정말로 꾸준하게 공부하는 것이다. 그 전날 아무리 과음을 하셔도 아침 7시 반에 출근하셔서 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 모습에 나도 자극을 받아 공부한다. “70이 다 되시는 분도 저렇게 공부하는데 ... 나도 해야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래서 없는 시간을 쪼개서 책을 계속 보게 되는 것 같다. 책을 봐야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을 찾게 된다.
사장님은 친구분들을 보며, 이제 은퇴했다고 공부 안 하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친구들을 보면 변하지 않아 답답하고 제일 안타깝다고 말씀하셨다. 아직도 예전의 잘나가던 자신의 모습만을 되새김질하면서 “예전에 내가 어땠는데...”를 외쳐봤자 꼰대 소리만 듣고 지금의 자신의 모습에 초라한 모습만 인정하게 되는 꼴이다. 그래서 나이 들면 꼭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한다.
나이 들었기 때문에 더 공부해야 한다는 말도 참 멋있는 것 같다. 공부는 젊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한다는 말.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한 삶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실제로 나도 대학원 졸업하고 더 재미있게 공부하는 것 같다. 시험에 나오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해서 하기 때문에 공부가 힘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재미있게 느껴진다. 이제는 학위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나를 위한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 그래서 진짜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멋지게 나이 드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내가 유독 이런 모습과 말을 많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에게도 세뇌가 되어 딸에게 독서를 독촉하거나, 공부하라고 떠밀지는 않는다. 어차피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것이니까... 지금부터 해서 질려 하는 것보다, 나중에 하더라도 진짜 좋아하는 공부를 찾아서 평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