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도롱
<3670>은 탈북 청년 ‘철준’의 한국 사회 적응기다. 한국 게이 커뮤니티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탈북자이자 성소수자,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한 철중의 방랑기다. 그리고 그의 적응기와 몸부림, 방랑기는 곧 나의 이야기였다.
딸각딸각. 일하다 잠시 여유가 생기면 게이 커뮤니티에 들어간다. 등산 모임, 동갑 모임, 노래 모임 등 수많은 모임이 올라와 있다. 산을 오르는 취미는 없으니 포기. 동갑 모임은 가입 전에 얼굴을 보고 뽑는다고 해서 포기. 이런저런 이유로 구경만 하다가 결국 커뮤니티를 나온다. 그러다 어느 날, 내 눈길을 붙잡는 모임이 있었다. 수영 모임이다.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좋아하기도 했고, 마침 주말에 시간을 낼 수도 있었다. ‘이참에 수영을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에 공지를 찬찬히 읽는다. 최대 규모 수영 모임이란다. 국내 최대 규모 ‘게이’ 수영 모임. 그 많은 게이를 마주하는 것도 부담인데, 수영복 차림으로 마주한다니. 결국 노트북을 덮고 포기한다.
며칠 뒤, 다시 커뮤니티에 들어간다. 미련인지 뭔지. 이번에도 수영 모임 모집 글이 눈에 들어온다. 곧 여름인데, 수영을 다시 시작해볼까? 딱 한 번만 맛만 보자는 마음으로. 아니다 싶으면 때려치면 되지. 그렇게 무겁게 가입신청을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수영장에 간다.
나 빼고 다 친해.
분명 일주일 만에 보는 사이라는데, 몇 년 만에 재회한 듯 반갑게 맞이한다. 난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폰만 만지작거린다. 제발 시간아 빨리 가라. 그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다. “처음 오셨어요? 같이 밥 먹어요.” 또 다른 이는 차에 태워준다. 처음 온 사람들을 주로 태워준단다. 친절하기도 하여라. 찍먹하기로 했던 마음은, ‘딱 한 번만 더 가보고 결정하자’며 다시 고쳐먹는다. 그렇게 다음 주에도 수영장에 간다. 또 그 다음 주에도. 조금씩 회원들의 얼굴이 익어간다. 인사받기만 하던 내가 이제는 먼저 인사를 건넬 여유도 생긴다. “처음 오셨나 봐요? 식사하세요? 다음에는 같이 먹어요.”
학창 시절, 새 학기 첫날은 항상 공포였다. 혼자서는 1년을 버틸 수 없기에, 반드시 내 편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이 지긋지긋했던 공포는 졸업하고는 다시 겪을 일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 그것도 자발적으로 다시 맞닥뜨릴 줄이야. 철준과 나는 왜 그렇게까지 이 집단에 꾸역꾸역 소속되고 싶었던 걸까?
그 집단에 속해 있는 동안만큼은 100%의 내가 될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내 성정체성을 알아채면 어떡하지? 여자친구 없냐는 질문에는 뭐라고 대답하지? 거짓말로 나를 포장해야만 하는 성가신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빠가 자꾸 결혼 언제 하냐고.
하나의 고민은 모두의 고민이 되어 나눠 가질 수도 있다. 시덥잖은 농담에 웃고 떠들 땐 이보다 편할 수 없다. 텍스트로만 접했던 ‘안식처’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바로 여기 아닐까. 그래서 철준도, 그 수없이 튕겨 나갈 위기 속에서도 어떻게든 이곳을 붙잡으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