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670>_둥지를 찾아서

by 미니

by 퀴어씨네클럽

대학생 때 애인과 함께 처음 종로3가를 찾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색하게 종삼 뒷골목을 기웃거리다 갈 곳을 찾지 못해 결국 모텔에나 들어갔더랬지. 이후 난 이별을 하고 졸업과 취업을 거치며 종삼에 가볼 생각을 단 한번도 하지 못했다. 그런 연유로 나는 게이 친구도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금 종로를 드나들고 있다. 그 시작은 도롱 덕분이다. 사내에서 뜻밖에 만난 퀴어 동료 도롱의 제안에 나는 간만에 종삼을 방문했다.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게이로서의 내 삶을 이야기했던 건 실로 오랜만이었고,


아 이래서 이곳을 찾는 거구나


새삼 실감했다. ‘이쪽 모임’에 가보라고 일러준 도롱 덕에 이후 이런저런 모임도 가보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애써서 ‘게이 둥지’로 들어가야만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3670>의 주인공인 탈북자 출신 게이 철준도 남한 게이 사회 내에서 소속감을 가지려고 부던히 노력하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박혔던 장면이 하나 있다. 친구라고 믿었던 게이 동지들의 뒷담화를 듣고 나서 철준은 울분을 삭이며 어떤 곳으로 향하는데 바로 탈북 동지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는 머뭇거리더니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한 둥지에서 버려지면 다른 둥지를 찾아가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이 비참해서였을까. 그 장면을 보며 인간은 왜 이렇게 소속감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소속감을 느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36701.jpeg 영화 <3670>에서

나는 원체 혼자 있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타인에게서 나와 비슷한 성질을 찾기보다는 같이 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내는 습성을 지닌 인간이다. 무엇보다도 게이로정체화한 이후에 난 내 게이니스(gayness)를 헤테로 사회에서 굳이 숨기지 않으며 살아왔고, 내 주변 사람들 또한 거의 대부분이 내가 게이인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게이 둥지’ 안으로 들어갈 필요를 못 느낀 채 살아왔다. 그래서 꼭 게이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거나 ‘이쪽 생활’을 하는 거에 있어서 관심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기꺼이 둥지 안으로 들어가기를 선택할 사람이라는 것 또한 말이다. 결국 <3670>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공동체에 속하고 싶은 유약한 존재라는 점,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36702.jpeg 영화 <3670>에서

철준이 속했던 탈북자 공동체, 교회 공동체, 97 게이 공동체, 그리고 새롭게 찾아갔던 보드게임 게이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철준은 그렇게 새로운 둥지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안에서 상처받고 또 성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속하고 싶은 둥지는 무엇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이쪽 모임에 갈 때 마다 곤욕인 건 여전하지만, 철준이 용기 내서 술번개에 나갔기 때문에 영준이라는 존재와 우연히 재회해 소중한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러한 우연 또한 결국 내가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긴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퀴어 동지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겐 올해 가장 크고 의미 있는 둥지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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