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프로젝트 헤일메리>_그 착한 모든 것들

by 에바

by 퀴어씨네클럽

과도하게 착하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두 주인공, 그레이스와 로키 말이다. 과도하게 타자를 믿고, 위하며, 기꺼이 희생한다. 그리고 나는 두 주인공의 선량한 품성, 그로부터 형성되어지고 마는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선하디 선한 관계를 보며 결국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함께 영화를 본 친구와 극장을 나서며 그레이스와 로키가 서로에게 한 말에 대해 곱씹다가 너무 슬퍼서 또다시 엉엉 울고야 말았다. 그제서야 내 마음의 소리를 듣게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레이스가 죽다 살아나 로키에게 사실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울었던 것처럼, 타인에게 기대를 안한지 오래된 나는 사실 누군가에게 기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극단적으로 들리겠지만,


누구에게도 기대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사실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

어딘가를 무한히 향하고 있는 어느 우주선. 영화는 그레이스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모든 기억을 잃은 그레이스는 상황 파악을 하며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 과학자라는 것, 그리고 어떻게 이 우주선에 탑승하게 되었는지 차츰 기억해낸다. 그렇게 로키를 만나게 되고,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면서 결국 그레이스는 슬픈 사실에 도달하고 만다. 자신의 권리는 철저히 배제된 채, 지구를 구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우주선에 강제 탑승하게 된 사실 말이다. 막중한 책임감 앞에서 그레이스는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전달했다. 희생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돌아온 건 인간의 강제였다. 이렇게 된 건, 그레이스가 착해서, 지구를 구한다는 대의에 진심이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헤일메리2.jpeg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아, 나 방금 착했나? 나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많이 한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함부로 착하면 안된다. 과한 착함은 적들의 표적이 되기에 적당히 착해야 한다. 나약한 면모를 들키면, 우습게 보인다. 친절과 선의와 착함의 사이. 그 미묘한 경계를 아주 잘 유영해야 오해받지 않고, 욕먹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착하면 왜 귀엽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까? 왜 세상물정 몰라서 어떡하냐는 소리를 들어야 할까? 왜 울면 착하다고 할까. 왜 강해져야 하고, 남들에게 우습게 보이면 안되고, 내 의견을 강력히 말할 줄 알아야만 할까. 착한 걸 들키면 안된다. 선의를 건네며 다가가고 싶지만, 착하면 대부분 당한다. 마치 그레이스처럼 말이다. 인간 세계가 그렇다.

헤일메리3.jpeg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착한 마음을 가진다는 건 외로운 일이다. 스스로와의 끝나지 않을 싸움이다. 로키를 만나기 전, 죽을 날 만을 기다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려는 그레이스의 마음이 딱 그러지 않았을까. 내 존재 가치와 공공의 선 사이에서 어느 곳에 더 비중을 두어야할까. 그런 와중에 그레이스는 로키를 만난다. 자칫하다간 서로를 해칠 수도 있는 미지의 공포 속에서도 만남은 반갑고 더듬더듬 대화를 해나간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목표와 광활한 우주에서 느끼는 고독함. 두 가지 공통점으로 둘은 최고의 동료가 된다.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고, 상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동료. 지구에서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서로에게 착할 수 있는 동료. 나 또한 그런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건 외계에서나 일어날 일인걸까.


이상과 그렇지 않은 현실이 교차되면서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마저도 그레이스와 로키가 서로에게 진심으로 해준 말을 곱씹으며 울컥하게된다. 내 진심이 온전히 전해질까? 내가 우스워보일까? 싶어서 전하지 못했던 말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에게 들었을 수도 있는 진심어린 말들이 우주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아서 슬프기만 하다. 나는 왜 이렇게 여릴까? 나약할까? 하는 자기비하발언, 자기의심은 이제 하고싶지 않다. 그건 당연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말한다. 인간처럼 볼품없고, 나약한 건 없다고. 약하면 뭐 어떤가. 결국 지구를 구한 건, 그레이스와 로키라는 여리디 여린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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