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왕별희>_무대 위/밖의 퀴어

by 미니

by 퀴어씨네클럽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게 있다면 첫째가 영화, 그다음이 춤이었다. 비디오테이프에 가수들의 무대를 녹화해 춤을 따라 췄고, 종일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던 KMTV와 채널 V, 엠넷은 방과후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넌 방에서 혼자 늘 그렇게 춤을 췄었어”라고 말하던 엄마에게 나는 “아들이 그렇게 춤추는 걸 좋아했으면 태권도 학원말고 댄스학원에 좀 보내주지 그랬어”라고 조금은 서운함이 담긴 대답을 했던 게 기억난다. 예술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던 그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위대한 예술가였지만 무대 밖에서는 험난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패왕별희>의 청데이를 보며 난


여러모로 마음이 심난했다.


청데이는 베이징에서 이름난 경극 배우다. 비록 자의로 들어선 경극의 길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를 진심으로 보살펴주었던 친구 단샬루 덕에 그의 재능은 만개한다. 특히 청데이가 가지고 있는 퀴어함은 경극 내에서 여성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도록 만들고 단샬루와의 환상의 호흡을 이끌어내지만, 무대 밖에선 그 퀴어함이 그저 장애일 뿐이다. 성폭력을 겪거나 원치 않는 상대와의 관계를 감내해야 했던 것에 더해 단샬루를 향한 그의 사랑은 무대 위에서만 가능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데이는 무대 위에서만이라도 행복하기 위해 그 모든 수모와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패왕3.png 영화 <패왕별희>에서


예술가 청데이의 삶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또 하나의 현실은 바로 당시 시대상이다. 경극 공연에 제약이 있었던 일제 시기에는 어떻게든 예술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마음에 일본군 앞에서 공연을 하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일제 패망 후 국민당 집권기에는 예술가로서의 존중을 전혀 받지 못하고 무대 위에서 모욕을 당한다. 공산당 집권 후 경극이 다시금 주목을 받나 싶었지만 문화대혁명 시대에 이르러서 그가 지켜왔던 예술은 국가폭력과 파시즘이라는 거대한 악에 의해 기어코 무너지고야 만다.


그런 청데이를 보며, 주류 사회에서 밀려나 자신들만의 ‘하우스’를 만들고 춤으로 삶을 견뎌냈지만 질병과 낙인 속에서 사그라졌던 드라마 <포즈> 속 보깅 댄서들이나, 한국 사회 내 수많은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소중한 작품을 만들어왔으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로 감옥에 가야만 했던 김경묵 감독과 같이 현실 앞에 무너졌던 수많은 퀴어 예술가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지금 세상은 청데이와 같은 퀴어 예술가들에게 어떠한 세상인가,


또 우리는 그들에게 얼마나 많이 빚지고 있는가를 곱씹게 된다.


예술은 결코 현실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실이 예술을 가로막거나 침범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난 아쉬움을 가진 채 내 어린 시절을 다시 상상해볼 수밖에 없어졌다. ‘여자 춤’을 멋들어지게 추는 남자아이가 부모 눈에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저 재능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회였다면, 지금의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무대 위에서도 빛나고, 그리고 무대 밖에서도 나 자신을 숨길 필요 없이 맘껏 나를 드러내는 그런 예술가로 살고 있었을까. 오늘도 그렇게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패왕4.png 영화 <패왕별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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