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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세라세라 Dec 09. 2020

QURIOSITY 01 : 꾸준한 상상력

변형의 미, 안드레스 아랑고 랄린데의 오토퍼지 아트

    브랜딩과 디자인 작업을 하다보면 이따금씩 막다른 길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상상력을 환기할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뚜렷하면서 동시에 모두가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꾸준히 발견할 방법을 콜롬비아 메데인의 한 아티스트가 제안합니다.


THE ART OF TRANSFORMATION
Interview with the Colombian artist Andrés Arango Lalinde


 그래픽 디자인, 내지는 전반적인 디자인이란 혁신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 디자인은 산업의 한 분야가 되어 매우 정형화된 절차를 거치고 있다.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는 우리는 보통 자유롭게 생각하고 작업할 수 있지만, 때때로 유행에 제약을 받기도 하고, 그래야만할 때도 있다.

 산업화된 디자인 속에서 기계적인 생산이 반복되면 공급자도, 수요자도 매너리즘을 느끼기 쉽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를 표방하는 우리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이런 매너리즘에 대처하는 방법을 주지하고 있어야 하지만, 벤 곳에 반창고를 바르는 것처럼 단순하게 맞설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는 안드레아는 최근 느끼고 있는 '공장화'의 해소 방법을 안드레스 아랑고 랄린데의 작업 방식 안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안드레스 아랑고 랄린데는 콜롬비아의 메데인에서 활동하는 플라스틱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은 매우 다양한 소재들이 복잡하게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안드레스는 자신의 작업실에 있는 미사용 재료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완전히' 사용하고자 한다. 남은 재료들이 사용되지 않았다면 왜 사용되지 않았는지 검토하고, 남은 것들의 의의를 다시 확인한다.

 모든 크리에이터들이 그렇겠지만, 안드레스 역시 조사하려는 대상이 있으면 면밀히 연구하고 조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왜 그 대상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까지 탐구한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는 과정을 통해 작업자는 비로소 자신의 예술적인 고집, 혹은 개성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변할 수 없을 때까지


 만일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 하나를 사용한다면 그는 그 플라스틱을 예술품 재료로 다시 활용한다. 일회용 스푼도, 영수증 종이도 그대로 버려지는 법이 없다. 영수증 종이도 종이라면 그것이 활용되지 못할 까닭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 그것 역시 완벽한 재료인 셈이다.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까지 소재의 기능을 이용하다보면, 결과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새롭게 도출된다. 대부분의 재료들은 그 단계까지 이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실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의 예술활동의 일부이며, 그 안에서는 항상 '변화'가 일어난다.

 그는 이 작업방식을 '오토퍼지'라고 부른다. 오토퍼지는 세포가 불필요한 체세포성분이나 퇴행한 부분을 스스로 분해하는 과정을 이르는데, 이 오토퍼지 작용 덕분에 세포는 항상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창작과정에 오토퍼지를 도입할 경우, 아티스트는 소재가 완전히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소모할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그러면 실제로는 자기 곁에 있는 소재만으로도 충분한 창작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그 과정 자체가 매우 철학적이다. 가령 작품의 주제와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진 소재가 있다면 우리는 이 소재의 존재 자체를 간과하기 쉬울 것이다. 쓰임새를 다했다고 생각한 소재도 돌이켜보고, 다시 해석하고, 분석하다보면 결국 모든 사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이 사고방식이 바로 안드레스의 예술적 콘셉트의 골조이다.


 그렇다면 이 방법을 어떻게 디자인에 반영할 것인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예술은 어떤 고정된 결과물이나 콘셉트로 고착되지 않는다. 오토퍼지라는 방법론에서 벗어나 '파기하지 않고 활용한다'는 관점으로 작업해보면 뜻밖의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다. 안드레아는 지우개를 사용하지 않은 드로잉, 복사와 붙여넣기 과정을 한 번도 쓰지 않은 일러스트처럼 작업과정 전체를 캔버스에 남긴 결과물들이 이따금씩 그녀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다고 한다.

 공정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생물학적 기제에서 찾는다는 발상은 무척 참신하다. 브랜드의 특질과 정체성을 파고들어야하는 우리에게 '뚜렷이 구분되는 것', '미처 알지 못했던 의미'를 찾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언뜻 보면 다소 검소하거나 원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나, 덕분에 결과물은 특별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산출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고려하지 않았던 성질, 간과했던 의미들이 복잡하게 녹아든 작업물은 창작활동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마치 세포가 스스로 끝없이 새로워지듯이 말이다.



*이 내용은 케세라세라의 디자이너 안드레아 포사다(Andrea Posada)와 안드레스 아랑고 랄린데(Andrés Arango Lalinde)의 인터뷰 내용을 우리말로 다듬어 정리한 것입니다.


▶ 케세라세라의 프로젝트 더 자세히 보기
http://queserser.co.kr/projects
▶ 케세라세라의 프로젝트 갤러리(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queserser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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