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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Sep 06. 2022

8 YEONSUE : 믿음은 단연 복수형

2022.04.22. @마포구청역


시그니처 아이템의 의미 ─
거울은 주 업무인 자기소개서의 목적이자, 제 삶에 일이 수행하는 역할을 상징해요. 저는 누군가가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을 반추하도록 돕고, 저마다 강조하고 자랑하고 싶은 소재들을 뽑아내는 일을 해요. ‘인생을 돌아볼 뜻밖의 기회’ ‘뿌듯한 순간이 이렇게 많았다는 걸 보여줘서 고맙다’라는 후기를 들을 때 자신감을 심어주는 거울이 된 것 같아 보람차요. 동시에, 노동 경험은 제 가치관과 취향, 능력과 적성을 비추어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아요. 내가 무엇을 유독 좋아하거나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지,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안되는 부분, 의외로 괜찮은 부분을 발견해가죠.




하루를 보내다 보면 내 마음이나 몸의 신호를 무시하는 일이 빈번하다. 배고파도 조금 더 참고 일한다거나, 쉬어야 하는데 커피나 영양제를 먹으며 버틴다거나. 타인에게 무시 받으면 온종일 기억에 남을 텐데 정작 나 자신을 내가 무시하는 경우는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그러는 동안 몸은 점차 시들고 최후의 신호를 보낸다. 이제 정말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일을 위해 무언가를 감수하는 건 통념상 당연하다. 시간부터 노력, 취미, 관계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지만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것들이 실은 일하는 동안 하나둘 잘려 나간다. 일이 곧 삶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하지만 삶은 일보다 훨씬 크고 넓어서 생산성이 없거나 가치 없는 것 역시 필요로 한다. 이 아이러니를 깨닫는 건 공교롭게도 일로 인해 몸이 망가질 즈음해서다.


연수 님은 일하면서 몸이 보내는 적신호를 알아챘다. 정신과 긴밀하게 연결된 몸은 의지나 다짐만으로 쉬이 나아지지 않았고, 정확한 진단과 호전될 방도가 필요했다. 그때 조직 내에서 배려를 구하기보다 조직 밖에서 내게 맞춘 일을 만들기로 했다. 그에게 무소속이란, 나를 위하는 선택지이자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일할 자유였다.







무소속으로 지낸 기간이 어느 정도 되나요?

퇴사하는 날부터 디데이를 설정해놨거든요(웃음). 확인해보니 오늘로 672일이 됐네요. 숫자로 세면 많아 보이는데 만으로 2년 조금 안 됐어요. 2020년 6월 중순쯤에 퇴사했으니 1년 10개월 정도네요.


무소속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로,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을 우선에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정신건강이 좋아졌다가 나빠지는 주기가 불규칙해서 저조차 통제할 수 없고, 우울이나 불안이 언제 오는지도 알기 힘들어요. 소위 멘탈 강한 사람들에게는 타격이 작아서 술 한잔하며 털어내거나 운동하며 푸는 일들이 저한테는 며칠간 지속되는 정신적인 고통일 수 있고요. 회사는 개개인을 배려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 아닌 데다 제게 돈을 주는 곳이다 보니, 그런 걸 겪고 있다는 걸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었어요. 조직이 원하는 일을 해내야 하고, 전체적인 프로세스라든가 업무 순서, 속도, 일정에 제가 맞추는 게 기본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하루 대부분을 회사라는 공간에서 보낸다는 게 제겐 상당히 힘들었어요.

두 번째로는, 일하면서 제가 중시하는 가치관이 뭔지 깨달았거든요. 금전적인 보상이나 소속감을 제외하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가치를 품은 일이어야 흥미를 잃지 않고 일할 수 있었어요. 이전부터 사회적기업처럼 영리 행위에 더해 타인과 연대하거나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사기업에서는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어요. 회사는 오직 자본을 축적하고 돈을 더 많이, 더 빨리 벌기 위해 설립되었으니 당연하기도 해요. 게다가 규모가 큰 회사에서는 프로젝트 일부만 책임지다 보니 내가 하는 행위가 최종 수요자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전혀 감각할 수 없었죠. 회사 생활이 매일 크고 작은 퀘스트를 깨는 게임이라거나, 제가 판 물건이 산 사람에겐 유용할 것이라는 의미를 갖다 붙일지언정, 근본적으로 자기 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웠어요. 누군가에게는 이 문제가 크게 중요하지 않거나 사이드잡 내지는 취미 수준으로만 실천해도 괜찮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 가치가 결여된 곳에서 일하면서 이것이야말로 내가 일하는 원동력이자 지속 가능하게 하는 동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여태 어떤 일을 해오셨어요?

프리랜서 영어 강사, 종합상사 영업사원, 첨삭 노동자 겸 1인 컨설팅 기업 대표로 일해왔어요.

처음으로 가진 직업은 영어 강사인데, 당시 로스쿨 졸업과 변호사 시험을 1년 앞두고 자퇴한 상태였어요. 공익 변호사가 되는 건 오랫동안 꿈꿔온 직업적 소명을 이루는 방법이자, 저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어요. 아무리 궁리해도 법학에는 끔찍이도 적성이 없어서 그만두었고, 그 뒤에는 무조건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여겼어요. 못하는 걸 억지로 하는 동안 시험으로 평가받고 좌절하며 낮아진 자존감을 그렇게 채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많게는 한 달 동안 20명 이상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방곡곡 방문하며 수업하는데도 난생처음 돈 벌고 인정받는 기분이 좋았어요. 생계를 유지할 능력을 확인하니 피곤한 줄도 몰랐죠.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보람을 배운 기회이자, 우울 및 불안 증상이 반복적으로 발현되는 바람에(이하 ‘삽화’로 표현) 수업을 수시로 중단하면서 제 건강 상태에 맞는 일을 찾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시기예요. 당시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일을 시작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결국 취업을 선택했지만요.


그렇게 입사한 곳이 종합상사군요. 여기서 일한 경험을 통해 어떤 걸 배웠고 지금 이렇게 일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당시에는 소화해내기 버거웠겠지만, 이제는 유연한 느낌이랄까요.

맞아요. 회사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는데,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퇴사하게 된 셈이에요. 실무적으로는 비즈니스 이메일 작성 방법, 엑셀로 사업 계획을 작성하고 관리하는 방법 등을 배웠고, 나아가서는 마감을 지키기 위해 관계자들의 협조를 구하고 진행 과정을 관리하는 방법, 협업할 때 상대방으로부터 필요한 걸 부드럽게 얻어내는 동시에 부당하게 후려치기 당하지 않는 방법까지도 익혔네요.

업무 특성상 불가피한 파괴성이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근무 환경 면에서 운이 굉장히 좋았어요. 신사업을 위해 야심 차게 만든 부서였거든요. 팀장님부터 구성원들이 회사에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둔 양, 능력 좋고 인품도 훌륭한 분들이 대다수였어요. 보통 회사에서는 일만 잘하면 소통에 불편한 점이 있어도 승진하잖아요? 놀랍게도 그런 사람이 없어서 같이 일하는 게 좋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저는 사소한 피드백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면이 있는데 일하는 동안 그런 적이 거의 없었으니 말 다 했죠. 피드백에 감정을 싣지 않고 필요한 지적만 해주시는 모습에서, ‘너한테 감정을 푸는 게 아니라 네가 일을 잘하면 너한테도 좋으니까 알려줄게, 네가 스스로 익혀’라는 자세를 배웠어요.

그 경험을 통해 퇴사 결정을 내렸으니 공교롭죠. 이렇게 좋은 분들과 일해도 회사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고 업무 자체에서 오는 구조적인 한계가 명확했거든요. 당장 내일 아침까지 보고하라고 하면 순응해야 하는 상황, 내게 아무 의미가 없는 숫자들을 입력하고 윗사람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수정하는 업무 등 일하는 부서는 온실이지만 결국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에서 타 부서, 타 업체와 일을 같이하기 때문에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때 아쉬움과 별개로 해결될 부분이 더 없음을 깨닫고 떠날 준비를 빠르게 할 수 있었어요. 조직 밖에서도 혼자 잘할 자신은 물론, 자립해본 경험이 있으니 퇴사하더라도 굶어 죽지 않겠다는 믿음이 결단에 힘을 실어주었죠.







그렇게 시작한 입시・취업 컨설팅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요. 매번 다른 영역의 일을 택하시는 듯 보이기도 해요.

사실 이 일을 전업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퇴사 당시에는 프로그래머가 되어 세상을 누비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거든요. 정작 프로그래밍을 공부할수록 적성과 맞지 않았고 즐겁지도 않았어요. 법학 공부는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직업적인 소명이라도 있었지만 프로그래밍은 그렇지도 않았죠. 그때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처음 접하고 끌렸던 이유를 곰곰이 짚어 봤더니 ‘자율성’, 즉 조직이나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자유더라고요. 모든 프로그래머가 그렇게 일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선택지가 있다는 자체가 신선했고, 자유로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이 직업을 원했던 거죠.

그래서 자율성을 가지면서도 적성에 맞는 대안으로 택한 게 첨삭 노동이에요. 입시나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자기소개서나 면접 답변을 첨삭해주는 일이죠. 제가 입시생이거나 취준생이었을 때 서류 전형이나 면접 결과가 대부분 좋았고, 지인들의 합격을 도운 경험이 있어서 제 능력이나 적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한 번 의뢰받으면 짧게는 이틀, 길게는 1~2주 만에 작업이 끝나니까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얼마든지 신규 작업을 중단하고 쉬었다가 다시 복귀할 수도 있고요. 고객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되니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하는 점도 좋았어요. 이런 달콤한 조건에 비해 풀타임 근무 수준으로 성장시키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지만, 거의 2년간 지속할 만큼 제게 잘 맞는 일이라 만족해요. 현재는 1인 컨설팅 회사로 사업자등록을 마쳐서 무려 대표 타이틀도 갖추고 있답니다.


대면하지 않고 장소나 시간에 유동적으로 일하다 보면 생활패턴이 망가지기 십상이더라고요. 연수 님은 어때요?

생활 리듬 면에서 요즘은 8~9시간씩 자고 일주일에 4일, 오후 6시간 동안만 일해요. 오후 1시에 출근한다고 표현하지만, 회사처럼 아무 데도 이동하지 않고 일만 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다른 시간에 일하지 않기 위해 마감을 지켜서 작업하는 시간을 마련해놨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제게 맞는 패턴으로 일하고 있으니 아주 좋아요.

이렇게만 보면 저를 규칙적이고 바른 생활이 몸에 밴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무소속이 되고서 오랫동안 오전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어요(웃음). 처음에는 지켜야 하는 출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새벽 3~5시쯤 자고, 눈 뜨면 12시 반이었어요. 시작 시간이 늦다 뿐이지, 일어나자마자 바로 일해야 하니까 회사 다닐 때와 큰 차이가 없었죠. 결국 나를 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불만족스러웠어요. 사람마다 효율을 낼 수 있는 시간이 다르다고 해도 그런 패턴으로 생활하는 건 절대 건강하지 않았어요. 노력 끝에 이제는 새벽 1시쯤에는 자고 아침 10시에 일어나요. 아침에는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오후에는 돈 버는 일을 하죠. 이런 생활도 고작 2~3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요(웃음).


한껏 느슨해졌다가 일과 건강을 고려한 적정 패턴을 찾은 과정을 들으니 제게도 희망이 보이네요(웃음). 앞서 컨설턴트의 장점을 말씀해주셨는데, 이 일에 따르는 고충도 있을 거예요.

첨삭이다 보니 분량에 따라 견적을 조정해야 할 사유들이 왕왕 생겨요. 첨삭 요청은 500자 기준인데 더러 700자에 맞춰달라고 요청할 때도 있죠. 그러면 추가된 만큼 비용을 더 받아요. 고객 입장에서는 고작 200자인데 왜 돈을 더 받는지 의아할 수도 있어요. 재래시장에서 콩나물 2천 원어치 사면 3천 원어치를 담아주듯이 덤으로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에요(웃음). 갓 시작했을 때는 저도 그런 생각에서 손해 보면서 요구를 들어줬죠. 하지만 그런 일이 누적되니까 억울한 마음보다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 게 힘들더라고요. 왜 나 자신을 후려치고 있지? 고객이 과하게 요구할 때 대응하지 못하고 나는 이 정도만 받아도 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평가 절하하고 있지? 10만 원 받아야 하는 일을 8만 원 받을지, 6만 원 받을지 결정할 때는 절대적인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느끼기에 받아 마땅한 조건에 맞춰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이 불만은 회사에서 느끼던 아쉬움과는 달랐어요. 회사 다닐 때는 막연히 더 많이 벌고 싶지만 지금 연봉도 내 능력에 비해 과분하게 많다는 생각에 그냥저냥 다녔다면, 이 일을 하면서는 제가 들인 노력을 고려할 때 만족스러운 액수를 받지 못하면 불만족스럽고 원동력이 확 떨어졌어요. 지금의 과금 체계를 정하는 데만 거의 1년이 걸린 것도 그 이유예요.



과금 체계가 조금씩 변한다고요. 가격을 올리는 주기가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주관적인 기준인데, 일하다 보면 공급 대비 수요가 초과한다고 느껴질 때가 와요. 제 능력 이상으로 일이 과하게 들어올 때는 가격을 올려서, 고객이 줄더라도 적은 시간 노동하고 이전과 비슷하게 벌 수 있게끔 조정하는 식이에요. 하지만 그 방식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웃음). 사업을 그만두려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멈춘 상태로도 만족하긴 하지만 제 몸값을 더 올리려니 천장이 느껴지더라고요.

이를테면 디저트 가게에서 케이크 한 조각을 살 때 저마다 생각하는 적정가가 있잖아요. 평균 3~4천 원부터 저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8천 원이거든요. 그런데 인터뷰 전에 미란 님 선물 사려고 들른 가게에서는 한 조각에 거의 1만 원인 걸 보고, 아무리 3천 원짜리 케이크보다 3배 맛있다고 하더라도 쉬이 사진 못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처럼 고객들이 나를 찾지 않는 이유가 정확히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내 서비스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이 시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가격을 책정했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꾸준히 가격을 올려온 건 자신감과 모험심이 작용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자신감 없이는 뛰어들 수 없지만, 자신감이 있다고 꼭 성공하는 건 아닌 모험 같아요. 주로 ‘숨고’라는 앱을 통해서 모객하는데요. 고객이 요청서를 작성하면 각지에 숨어있던 고수(전문가)들이 각자 견적서를 보내고 고객의 선택을 기다리는 방식이에요. 일종의 오디션이랄까요? 예상한 조건에 맞지 않으면 아예 답장을 안 주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답변이 오는 확률을 통해 개선할 점이나 더 시도해봐도 좋을 점을 파악하곤 해요. 예를 들어 견적서를 10건 보내면 예전에는 5~6명에게 답장이 왔는데 1~2명도 안 온다면 견적서에서 원인을 찾는 거죠. 프로필을 구성한 방법이나 서비스 내용은 변한 게 없고 리뷰는 좋은 쪽으로 늘어났으니 가격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해요. 그럴 때는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나의 불만족을 감수하면서도 가격을 내려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유지해도 누군가가 나를 찾아줄 거라는 선택지에 배팅할지 고민해요.

그러면서도 분량당 견적 비용을 점진적으로 올리는 이유는, 제 능력에 합당한 수준으로 돈을 벌면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으니까요. 고객들이 저를 찾는 이유는 그간 쌓인 5점 만점 리뷰 덕분이라고 봐요. 리뷰가 느는 것에 비례해 가격을 조금씩 올렸죠. 그래도 저를 찾아줄 거라는 판단이 섰거든요. 급하게 올린 바람에 조금 낮춘 적도 있었지만, 기존 견적보다 덜 받지는 않았어요. 직업 철학이기도 한 과금 책정 방식 아이디어는, 인터넷에서 유명한 탈모 전문 헤어 디자이너분의 인터뷰를 통해 얻었어요. 당시 그분은 컷 비용이 10만 원 정도였는데,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너무 비싸졌다며 고객들이 아쉬워했다고 해요.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꾸준히 찾아준다는 건 본인 능력이 그만큼 좋다는 뜻이라 생각하고, 그 능력에 합당한 수준으로 가격을 책정했다는 대답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낮은 가격을 원하는 분들에게 무리하게 맞추기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고 내 가치를 인정해주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장사한다’라는 마인드로 일하는 모습이 멋지더라고요.


제게도 울림을 주는 멋진 예시예요. 그렇더라도 상황이 여의찮으면 불안한 마음이 들고 그럴 때 멘탈 관리가 중요하다 싶어요.

저는 돈을 벌지 않는 나도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후려치기 당할 만한 사람이니까 적게 벌어도 괜찮다고 느끼는 것과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시장의 한계에 부딪혀 수입이 줄어드는 건 엄연히 다른 차원이잖아요. 고객이 저를 찾지 않는 명확한 이유는 영영 모를 거예요. 항상 궁금하죠, 견적서를 보냈는데 왜 답장을 안 줄까? 왜 ‘죄송합니다. 다음에 할게요’라고 말할까? 꼬치꼬치 물어볼 수 없지만, 그 이유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이미 제 손을 떠났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물론 통장 잔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다 보니 돈을 적극적으로 벌지 못할 때 돈 쓰면 속상해요. 그럴 때 돈이 별로 안 드는 여가 활동들을 하죠. 자전거를 타거나 뜨개질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뜨개질의 경우 뜨기보다 실 사는 데 몰두하면 돈 쓰기 쉽지만, 다 떴는데 안 입는 옷을 풀어서 다시 뜨면 지름 욕구도, 지출도 아껴요. 또 제 생각과 감정을 글과 그림으로 자유로이 표현할 때 충만함을 느끼거든요. 소비하는 순간의 짜릿함을 이겨내고 더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죠. 다만 요즘은 독립출판을 목적으로 쓰고 그리다 보니 전처럼 마냥 여가처럼 느껴지지는 않지만요.

이건 어디까지나 일상을 지키는 마인드컨트롤일 뿐, 그것만으로 근본적인 경제적 문제를 회피하고 싶지는 않아요. 당장 수입이 끊기면 생활에 제약이 생기고, 그런 구질구질함이 피부에 와닿는 걸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제가 돈 욕심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것 외에, 수입원을 다각화해서 위험을 분산시키는 방안도 고민 중이에요. 장기적으로는 컨설팅 노하우를 담은 전자책 출간 등으로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창작 활동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데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직업인으로서 창작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요.







현재의 선택에 후회한 적은 없나요?

선택 자체를 후회한 적은 없어요. 어떤 선택이든 선택하지 않음으로 인한 반대급부가 있잖아요. 물론 지금의 삶에 완벽히 만족하는 건 아니니까 선택적으로 그리운 것들은 있죠. 바로 월급(웃음)! 초년생에게도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였거든요. 돈의 액수를 떠나 매달 25일에 정기적으로 돈이 들어온다는 걸 아는 그 안정감!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으니까 내가 손을 놓는 순간 일이 끊기고, 심지어 열심히 해도 돈이 안 들어올 수도 있다는 불안정함이 크죠.

또 하나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거요. 타고난 성향상 아무리 좋은 사람들과 일해도 혼자 하는 게 제일 좋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이 사람한테는 이렇게 대하는 게 맞춰져 있는데 1대 1을 넘어서 2대 1, 3대 1로 응대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점점 머리가 복잡해지거든요. 혼자 일을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좋지만, 가끔은 회사에서처럼 능력 좋고 소통이 원활한 사람들과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그립기는 해요. 시간이 더 지나서, 용기가 생기고 다른 사람들과 일할 기회가 생겼을 때 시도해볼 생각이에요.


‘일’이 내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게 일은 단순한 수입원이나 소속에 그치지 않아요. 추구하는 가치관과 원동력,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고 실험하는 장이기도 하거든요. 일례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제가 문제를 해결하고 도움 주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배웠어요. 이 부분이 결여된 회사에서 쉽게 흥미를 잃은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고요. 현재는 컨설팅 일로써 전보다 보람과 원동력을 크게 얻고 있어요.

나아가 정신건강의 굴곡과 속도에 맞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깨달음도 마찬가지고요.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 기분 장애, 경계성 성격 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지는 꽤 되었지만, 회사에서 일해보기 전에는 제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모습과 동등하게 존중하고 관리해야 하는 일부라는 사실을 몰랐어요. 인정받으려면 숨기고 없애야 하는 존재로만 취급했죠. 어떤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제 정신건강을 최우선에 두지 않으면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일하며 알았어요. 앞으로 업무 영역을 확장하고 변화시키며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제게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배워가고 싶어요.


그럴 때 타협할 수 없는 일 원칙은 뭐예요?

업무량과 범위, 방식과 속도를 정할 때 정신건강을 최우선으로 두는 점이요. 저 자신을 지우지 않고, 지키면서 일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정체성의 큰 부분을 구성하는 동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게 정신건강이기 때문이에요. 회사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강행했더니 자아가 극명하게 분열되어서 자신을 전혀 자각할 수 없게 되거나, 시간이 멈췄거나 반대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른 적이 있어요. 일시적 삽화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소멸하는 듯한 지속적인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무섭고 절망적이었죠.

때문에 지금은 정신건강을 절대 타협하지 않아요. 갑자기 기분이 바닥으로 꺼지거나 극심한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면 하던 일을 즉시 멈추고, 남은 하루 동안 노트북을 켜거나 메일함을 확인하지 않는 식이죠. 그건 일을 내팽개친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으니 작업 기간 중 꼭 휴일을 포함하거나 급한 연락을 위한 창구를 유지하는 등 일에 지장이 없도록 체계를 만든다는 뜻이에요.

그와 연장선상에서, 고객 입장이 되어 조금이라도 걸리는 게 없도록 작업하는 점도 꼽을 수 있어요. 저는 무언가 소비할 때 까탈스럽고 예민하거든요. 이런 기질을 장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결과물을 검토할 때 고객이 저처럼 까다로운 입맛을 가졌다고 상상해보는 단계를 거쳐요. 동시에 단점이 될 수 있는 상황을 경계하죠. 쓸데없거나 과도한 집착이 되지 않도록 작업에 얼마나 필수적인지, 고객의 의도와 부합하는 변경인지 고민한 뒤에 까탈스러움 모드를 켜려고 노력해요.



자율성과 책임감이 중요한 동시에 가치 있는 일, 공익성을 빼놓을 수 없다는 인상이 커요.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문제의식이라는 게 생기고 이를 깊게 탐구할 기회가 생기면서,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에 눈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 특성상 철학, 사회학처럼 일반 학교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분야를 공부할 일이 많았던 덕에 여러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책을 많이 읽었어요. 제가 존재하는 세상을 형이상학적으로, 내지는 사회적 맥락과 구조에서 분석하며 당시 저를 괴롭히던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정신 문제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되는 경험을 했죠.

한 번은 다문화가정 출신 자녀들을 가르치는 교육 봉사에 참여했는데, 같은 공부방 또래들이 대놓고 괴롭히고 따돌리는 현장을 목격했어요. 평균 나이 열 살도 안 되는 집단에서도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차별과 배제가 이루어진다는 게 충격이었죠. 어릴 때 겪은 혐오가 꾸준히 축적되어 어른이 되었을 때 얼마나 심한 손상과 절망이 될지 두려웠어요. 그때부터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존재만으로도 배제되는 사람들과 이들을 배제하는 보이지 않는 사회 규범, 질서를 탐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공을 사회학으로 정했고, 비영리단체와 관련된 각종 대외활동과 인턴을 하면서 졸업 후에도 같은 진로를 이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의미나 가치 있는 일이라도, 효능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하잖아요. 그 동력에는 수입도 있고요. 대체로 비영리단체는 수입이 넉넉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인데, 고민은 없었나요?

일에 있어서 돈은 기본 전제에 가깝다고 여겨요. 그게 무너지면 더 이상 일이라고 볼 수 없겠죠. 사전 질문으로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 돈을 번 것 위주로 써달라고 하셨는데, 그게 딱 일의 정의 같아요. 아무리 취지가 좋은 일이라도 금전적 아쉬움을 감수하는 건 별개의 문제예요. 수입은 제한적인데 지출만이 늘 변하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니까요.

비영리단체에서 꼭 일해야겠다는 확신이 흔들렸던 것도, 논문을 위해 인터뷰하며 만난 활동가들이 모두 운영의 어려움을 이야기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도 눈을 반짝이며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거라는 모습에서 ‘나는 이 정도의 사명감이 있나?’ 자문해봤어요.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고, 그렇게 소셜섹터만 고집해야겠다는 생각은 줄어들었어요.

돌이켜보면 사회를 책으로만 공부했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돈을 좇는 건 그저 탐욕스럽고 고고하지 못한 일이라고만 믿었던 것 같아요. 활동가들이 인터뷰 중 월급을 서슴없이 공개하고, 이에 따라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진짜 일하고 싶냐고 농담을 섞어 물어봐 준 덕분에 그런 안일함이 많이 깨졌어요. 그렇다고 비영리단체 활동가들이 수익이 절대적으로 적고 가난해서 일하기 싫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에요. 단체마다 운영 방식이나 재정 상황이 천차만별이고, 모든 단체가 재정난에 시달리는 게 아니거든요. 각자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와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다른데, 저와 활동가들 간에 그런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던 거죠.



컨설팅이 보람과 가치를 느끼는 일임에도 업계의 천장을 확인하고서 더 발전하려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고요.

이 일을 하면서 제 능력의 한계와 제 삶의 가치관과 충돌한다는 한계를 확인했어요. 입시・취업 컨설팅은 좁은 의미에서 글을 더 예쁘게 만드는 일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시장 트렌드를 알고 방향을 제안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입학 사정관이나 인사 담당자들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고, 전형이나 직무별로 뭘 중요하게 보는지 등의 정보를 보유해야만 사업 규모를 키울 수 있어요. 다행히 지금까지는 단순 첨삭을 원하는 고객의 수요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제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정도의 정보력이나 경쟁력을 가졌다고 보진 않아요. 그러니 능력을 키우면 되지 않나 싶은데, 하기 싫더라고요. 저는 직관적이고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 거부감이 느껴지면 일단 멈추고 생각해보거든요. 내가 왜 그렇게 느꼈을까. 나도 모르던 알고리즘이 있을 테니까요. 예를 들어 학교별 전형 자료를 분석하거나 인사팀 관계자와 인터뷰할 계획을 세웠어요. 막상 하려니 제가 자꾸 피하고 딴짓만 하는 거죠. 단지 지치거나 귀찮아서 안 하는 건지, 무의식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지 따지다가 이 일의 두 번째 한계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건 일을 통해 제가 창출하는 가치,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가치가 제 삶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부분이었어요. 평생을 경쟁에 특화돼 살아왔기 때문에 몸은 본능적으로 이기려고, 잘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경쟁을 그리 즐기지 않아요. 정신질환을 관리해야 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나를 잘 돌보고 다독이는 일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데도 프리랜서 플랫폼에 등록된 분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고, 이보다 더 심한 경쟁을 뚫고 학교나 회사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지원하다 보면 여러 감정이 교차해요. 제 일이 주류를 공고히 한다거나 연장한다고 보는 건 비약이겠죠. 제 역할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할 테고, 입시나 입사는 여러 요소가 맞물려야 하니까요. 하지만 구조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에 합류하길 원하는 사람들과 계속 일하다 보니, 이 일의 방향성 자체에 공감하기 어려워지고 있어요.


그럴 때 연수 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본 건 어떤 부분이에요?

경쟁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많으니까 생기는 거잖아요? 학교든 회사든 보통 정해진 인재상이 있거든요. 거기에 안 맞을 때 맞는 것처럼 포장해서 보여주는 데서 한계를 느꼈던 것 같아요. 이 사람은 이것 말고도 다채로운 모습이 있고 부족한 점들도 공존하는데, 예쁘게 싹 도려내어 정리하니까.

장기적으로는 입시나 입사가 목적이 아닌,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자기소개서 작업을 도울 수 있기를 바라요. 보이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다듬는 게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이야기, 본인이 발견하고 싶은 부분,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찾는 데 제 능력을 쓴다고 상상하면 또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당장은 힘들겠지만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편해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성공 경험이 연수 님을 단단하게 만들었겠다고 짐작해봐요.

겸손을 덜어내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압도적으로 성공 경험이 많죠. 정신과에서 상담받으면 심리 검사부터 하거든요. 문장완성 검사로 ‘나는 앞으로____’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우울과 불안 때문에 힘들어서 병원을 찾아와놓고도 ‘성공할 것 같다라고 쓰고 있더라고요. 근거 없는 자신감, 막연한 긍정보다는,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실패할 거로 지레 생각하지 않고 그냥 몸을 던지는 편이에요. 그런 행동력과 운이 맞물려서 큰 실패 경험 없이 줄곧 승승장구하다가 로스쿨 자퇴라는 큰 실패를 처음 경험한 거예요. 감당하기 힘든 생애 첫 좌절이자 엄청난 흠이었으니 인생이 끝났다고 여길 수밖에요.

정신과 선생님들은 자신감이 좋기만 한 건 아니라며, 적당히 실패하고 또 성공해보면서 내성을 키우고,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해주셨어요. 제 삶에는 그간 실패라고 부를 만한 일이 없었으니 단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고 망가진 거죠. 부끄럽지만, 살면서 목표한 걸 이루지 못한 적이 없었으니 일어서는 법을 배울 계기가 없었어요. 자연히 목표를 이루어야만 존재 가치가 있다고 여겼고 그게 인생 전부인 줄 알았어요.

성공만 해본 사람은 실패하면 제대로 쉬는 법을 몰라요. 성공을 통해 내 능력을 되찾겠다는 조급함이 먼저 들죠. 자퇴하자마자 학원 등록하고 학생들을 모집해 영어 강사로도 일한 게 그 예예요. 그러다가 취업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 실패했으면 지금 뭘 하고 있을지…. 뭔가는 잘했을 테지만 아마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예요. 이제는 아프더라도 실패 경험이란 꼭 겪어야 하는 예방주사라는 걸 알아요. 성공 기준도 달라졌죠.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성공일 수도 있다는 관점이 생겼어요. 내가 그렇게 선택하고, 이리저리 구르다 회사생활도 해보면서, 변호사라는 탄탄대로를 걸었다면 영영 몰랐던 것들을 느꼈겠구나. 그때와는 다른 사람이 됐다는 걸 알았죠.


감당하기 힘든 경험, 고통을 감내하기까지 연수 님에게 힘이 된, 버틸 수 있게 한 존재가 있는지 듣고 싶어요.

제겐 저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성공하려고 아등바등했던 건 내가 실패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임을 확인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하거든요. 외동이고 항상 혼자였기에 외로움이 컸고, 가족이 있어도 의지하진 못했어요. 그래서 거의 쉴 새 없이 연애했는데, 돌이켜보면 운명적 사랑이기보다는 기댈 사람을 찾고 싶었나 봐요. 당시 애인들이 기댈 존재였냐면,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었으니까요. 원동력보다는 배출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더 컸죠. 애착 관계를 맺는 듯 보이지만 마음 깊숙이는 그 사람을 이겨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마치 라이벌처럼 견제하고 경쟁 상대로 둘 정도로 저밖에 몰랐던 시기예요. 그래서 그들은 장소였던 것 같아요.



장소라는 표현이 마음에 남네요. 때로 사람 아닌 존재가 위로일 때가 있는데, 함께 사는 고양이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강아지, 햄스터, 이구아나 등 다양한 동물들을 키워봤어요. 가족과의 사랑은 불안정하고 의존하거나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동물의 사랑은 무한하고 일관되게 저를 좋아하고 용서해요. 동물과는 기본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어서 그런 사랑이 가능하다고 봐요. 아마 대화할 수 있다면 서로가 바라는 걸 상대에게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데서 복잡해질걸요. 서로가 무슨 말 하는지는 모르지만, 단순하게 따뜻한 햇살처럼 서로를 원하고 있다고 느끼곤 해요.

종종 발작처럼 삽화가 오면 크게 울고 물건을 던질 때도 있어요. 고양이는 그걸 방문 밖에서 들어야 하니 당연히 좋지 않은 상황이고요.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고양이들도 나를 싫어하겠지, 고양이들도 내가 죽기를 바라겠지. 근데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고양이들은 한 번도 저를 외면한 적이 없어요. 항상 똑같이 반겨주고 친밀하고 변치 않는 사랑을 듬뿍 줬죠. 거기서 오는 안정감!


그렇다면 연수 님에게 고양이는 장소가 아닌 존재네요.

아, 그런 존재가 또 있긴 해요. 제게는 반려 휴먼이 있는데요(웃음). 고양이에게서만 얻을 수 있을 것 같던, 대다수가 나를 낳아준 부모나 가족에게서 얻었다고 말하는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어요. 이를 통해 인류애를 약간 회복하고 있달까요. 혈연이 아닌데도 생활 공간을 공유하며 부대끼며 살고, 금전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지지해주는, 내가 뭘 하든 긍정해주는 사람이 처음이었어요. 여태는 각자의 삶을 독립적으로 책임지면서 정서적인 관계만 맺었고, 문자 그대로 온종일 같은 공간에서, 심지어 통장을 공유하는 금융 공동체가 된 적은 없었거든요.

무려 3년간 우울하고 삽화 오고 발작하는 모습부터 싸우고 거짓말하고 힘든 상황을 연출하는 등 정떨어지는 상황에서도 반려자는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 애정을 보여줬어요. 결혼이라는 형식을 취하든 아니든, 그를 보면서 반려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빨리 섰죠.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게 정서적으로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지금까지 말씀해주신 내용이 독립출판물 제목과 연결되더라고요. 『지워지는 나를 지키는 일도 일하는 나를 드러내고 있고요. 연수 님이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각자 방법은 다르겠지만, 책을 읽는 분들이 자신을 존중하며 일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제게 정신건강 문제가 하나의 요인인 것처럼, 사람마다 타협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한계나 기준이 있을 거예요. 이건 아니라는 직감이 들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여기거든요. 그걸 예민하고 정확하게 분석한 뒤에, 수용할 수 있고 잘 맞는다고 느껴지는 일의 조건을 자문하고 나아가 발견하기 위해서 많이 실험해보면 좋겠어요.

제가 볼 때 한국 사회는 도전해보라고 하지만 실패에는 관대하지 않아요. 자연히 위험 부담 있는 도전을 피하게 되죠. 꼭 조직을 벗어나야만 시도할 수 있는 건 아닐 거예요. 조직 밖이 자유롭기는 하지만 조직에 속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풍부한 자원과 기회도 있으니까요. 금전적으로 여유로우니 계획적인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자유도 있고요. 사이드잡이나 조직 내에서 다른 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분이라면 지금 맡은 일이 아닌 새로운 걸 시도해보면서 내가 어떤 것을 더 좋아하고 더 견딜 수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겠죠. 나 자신을 꾸준히 알아가려는 사람들, 마음에 걸리는 일에 있어서 내가 이런 걸 생각보다 못 견딘다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들이 책을 읽었으면 해요. 나만의 시금석을 파악하기 위해 용기 내게 되기를!





나를 존중하며 일하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한지 얘기하는 동안, 믿음을 자주 곱씹었다. 의심과 기브 앤 테이크가 문화로 자리 잡은 시대에 믿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그만큼 나를 내보여야 하고 그만큼 상대를 수용해야 하기에 하루아침에 될 리 없다. 나를 믿는 일,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믿어주는 일에도 크고 작은 연습이 필요할 수밖에.


돌이켜 보니 올해 초 박주영 판사의 판결문을 읽으면서도 믿음을 곱씹었다.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믿음을 그에게 심어 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한 개의 이야기인 이상,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이야기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힘을 싣고 빼는 일부터 살리고 죽이는 일까지, 믿음은 형체가 없지만 분명해서 그만한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그리 본다면 믿음은 단연 복수가 아닐까. 내가 나를 믿는 것에 더해 누군가가 나를 믿어줘야만 하니 말이다. 그걸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시소처럼 좌우로 뻗은 직선이 아니라 합쳐졌을 때 원이 되는 모양일 테다. 생애 언제든 고꾸라지는 때, 일어설 힘이 부족하다면 내게 어떤 믿음이 충전돼야 하는지 알아챌 수 있기를. 일단 연수 님은 믿음을 추 삼아 오뚝이처럼 일어나리라는 확신이 있다.




연수 님을 더 알고 싶다면


http://instagram.com/yournokok



독립출판물 <지워지는 나를 지키는 일> 온라인 구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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