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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Sep 13. 2022

9 EUNJIN : 찰흙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2022.05.12. @내방역


시그니처 아이템의 의미 ─
어느새 세상은 스마트폰이 디폴트(default, 초기 설정값)로 자리 잡아 메모나 기록을 간편히 남기곤 하지만, 역시 쓰는 기분만큼은 수첩에 비할 수 없더라고요. 열림 상태가 되어도 독촉하는 커서 없이 느긋한 수첩이 좋아요. 스마트폰은 뚜껑이 없지만, 뚜껑이 있는 모든 것은 두 가지 상태가 존재하잖아요, 열림과 닫힘. 수첩은 태생적으로 닫힘이 디폴트인 물건이고, 펼치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공백이 존재해요. 그러면서도 대부분을 가방 한 구석에 욕심 없이 잠들어 있는 물건이기도 하죠. 참, 이 글은 수첩에 썼어요. 어차피 또 타이핑으로 옮겨 담아야겠지만요. 




인터뷰어에게 다른 조건 없이 본인 위주의 흥미로운 인터뷰를 기획하라고 하면 어떤 인터뷰가 나올까? 드문드문 만나는 인터뷰어에게 이 아이디어를 꺼내면 자신도 그런 기획을 고민했다는 말이 뒤따르곤 했다. 바로 인터뷰어 인터뷰다.


그래서일까, 은진 님과의 인터뷰를 고대했다. 은진 님은 ‘끗질’이라는 여성 인터뷰 팀을 구성해 활동하고 있는 인터뷰어로, 4050 여성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한다. 2030 여성들이 미래를 조망할 때 누군가에 종속되거나 고립되는 방식이 아닌, 현실적으로 건강하게 독립한 삶을 참고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였다. ‘언니’가 필요하다는 절실함. 그에게 여초 사회는 새로운 세계나 다름없었고, 그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며 맺어가는 인연들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로 시작한 의문은 점차 적확한 용어를 찾아갔다. 

그럼! 이제부터! 알아가자! 

그가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나아가는 순간을 삶 곳곳에서 포착해봤다.







무소속으로 지낸 기간과 더불어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제가 정말이지 소개를 어려워하는데요(웃음). 면접을 본다면 직업 관련으로 잘하는 걸 얘기하면 되지만 일상에서 목적 없이 만나 소개하는 일은 참 어색하더라고요. 무소속이 된 건 2021년 2월 이후예요. 같은 해 8월부터 학교와 학원 등지에서 초중고생 대상 코딩 강사로 일하고, 올해 초부터는 ‘끗질’이라는 여성 인터뷰 팀을 꾸려 활동하고 있어요. 글쓰기를 본령으로 삼고 싶어서 작년부터 여러 모임을 통해 꾸준히 글도 쓰고 있고요. 이전에 했던 일은 경영, 정책 컨설팅이에요.     


무소속으로 지내면서 주로 어떤 루틴을 갖고 생활하시나요?     

고정된 일정 외에 나머지 시간을 활용하는 식인데요. 이번 학기는 목요일에 오전 수업이 있고 나머지는 오후 수업들이라, 일찍 일어나서 오전에는 명상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끗질’ 프로젝트와 같이 여타 일을 해요. 수업 후에는 남은 일을 처리하거나 휴식을 취하죠. 저녁에 모임이 있는 날은 그렇게 일과를 마무리하고요.

한량처럼 보내는 걸 좋아해서 쉬는 시간을 두고 노는 데 할애하는 편이에요. 누워서 멍때리거나 게임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수업을 일찍 마치는 날에는 홀로 와인바에 가서 음미하기도 해요.     


단조롭고 하는 일이 별로 없는 제게는 은진 님이 알차게 쉬신다 싶어요내가 어떤 쉼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그때그때 맞게끔명상은 매일 하시는 거죠?     

그렇죠, 거의 매일 하는데 의도를 갖고 행동하기보다는 마음 편해서 하는 거예요. 아침에 부지런히 움직이면 기분이 좋아요. 오후에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게 느껴지죠. 특히 아침에 집중이 잘 되는 스타일이어서 그 루틴이 잘 맞아요.

가끔 늘어져 자는 날에는 죄책감을 안 느끼려고 노력해야 해요(웃음). 늦잠을 자면 괜히 기분이 처지는데,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면 쉴 줄 모르는 게 한국인의 고질병 같아요. 미란 님은 저한테 쉬는 방법을 안다고 말했지만, 한국 사람 중에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걸요(웃음). 적어도 제가 본 이들 중에는 죄책감 없이 쉬는 사람이 전무해요. 씁쓸하죠. 번아웃까지 겪고서야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쉴 수도 있지. 앞으로 살날도 많은데, 이것도 못 쉬어?’     



사람마다 언제 집중하기 좋은지도 조금씩 다르더라고요아침에 움직일 때 더 좋다는 걸 안다는 것만 해도 본인에 관해 여러 방면으로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코딩 강사로 일하시는 루트가 눈에 띄어요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퇴사하고 6개월 정도 쉬었는데, 번아웃될 만큼 너무 힘들었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생각이었어요. 실컷 놀다가 여성 취업을 돕는 북부여성발전센터에서 현수막을 보게 됐어요. 욕심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고, 여러 양성 과정 가운데 일정에 맞는 코딩 과정을 듣게 됐죠.      


번아웃을 겪고 나면 재미 위주의 일을 찾게 되는 면이 있지 않나요기력을 아무 데나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요배우고 끝인 사람도 있을 텐데 곧장 강사로 일하게 되셨네요.     

저한테는 즐거움이 활용된다는 면보다 가벼운 마음이 더 주효했어요. 이전까지 일이라는 건 제게 전혀 가볍지 않은 영역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가벼운 시도 자체가 그때의 제게 중요한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냥 해보는 거지 뭐, 아니면 말고. 이른바 얼레벌레 일이 된 거예요(웃음). 그러니 이전 커리어와 연결지점이 전혀 없을 수밖에요. 센터는 재취업 과정과 훈련을 집중적으로 해주는 곳이니까 담당 직원분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세요. 지원서를 넣어보라고 제안하거나, 학교에서 공고가 나면 정보를 전달해주는 식으로요. 과정을 다 듣고 나니 7월이었고, 곧 2학기가 시작되니까 자연스럽게 강사로 일하게 된 거죠. 청소년들과 접점이 없고 통제가 쉽지 않으니 내심 걱정했는데, 결국 말하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컨설턴트와 교집합이 있어서 그리 힘들지는 않아요.


무소속의 제목적은 쉼이었겠지만 이제는 제법 많은 걸 하고 계신 데서 원래도 생산적인 일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인가 짐작해봤어요.     

에너지의 대부분을 생산적인 일에 쏟아왔죠. 그렇다 보니 빌라선샤인이나 헤이조이스 같은 여성 커뮤니티가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살았어요. 기획자, 마케터, 에디터 분야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남초에서도 중년 남성이 주류인 회사였거든요. 특히나 제 파트인 전략 컨설팅은 기업이나 기관의 중장기 전략, 비전 등을 만들어주는 일인데, 지식 노동이라고 표현할 만큼 일의 강도가 아주 셌어요. 입찰 경쟁에서 프로젝트를 따오는 식으로 진행하기에 다른 곳에 관심 둘 만한 심적 여유가 없었죠. 머릿속이 온통 일로 가득했고 나중에는 번아웃으로 이어졌어요.

퇴사 막바지 6개월은 신사업 팀에 발령 나면서 웹 기획을 하기도 했어요. 컨설턴트에서 갑자기 웹 기획 PM 역할을 맡게 된 거죠. 그때 함께 일하게 된 마케터를 통해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니 여자들이 여기서 이렇게 재밌게 일하고 놀고 있었구나!? 그때의 배신감이란(웃음)!







이렇게 재미난 걸 왜 여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하는 마음이 뭔지 알겠어요(웃음). 특히나 여성이 거의 없는 풀에서 일하다 보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적은 것에 더해외로움이나 여러 고충이 있을 텐데요.     

음, 외로움은 저한테 디폴트였어요. 성격이 무난하지 않고 회사에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면 발 벗고 나서서 목소리 내니까 더 그랬죠. 그간 일해온 회사들은 작든 크든 성추행, 성희롱이 없는 곳이 없었어요. 제가 당한 적도 있고, 저든 누구든 그런 일을 당했다면 상황을 알리고 책임을 물으려고 대표 방에 찾아가는 거예요. 그러니 조직 내에서는 저를 고깝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기 일쑤였어요.     


내 일이라도 목소리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심지어 남의 일에도 발 벗고 나서는 마음은 어디서 비롯하는지 궁금해요의협심일까분노일까?

의협심 같은 건 없고 너무 열받으니까 부들부들하면서 움직이게 되는 거였죠. 인간에 대한 분노, 환멸(웃음)! ‘동물들만 살아남고 인간은 다 죽어야 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뱉었기 때문에 제가 인간을 싫어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심지어 별명이 가산 타노스일 정도였죠. 직전 회사가 가산디지털단지에 있었는데 점심시간이면 거리가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서 ‘여기 있는 사람들이 반 정도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더니 동료가 그런 별명을 붙여주더라고요(웃음). 그만큼 사람이 싫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이 회사에서 무책임하게 행동할 때 진저리가 났어요. 아래 직급이 고통받고 힘든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만 하면 끝이라고 여기는 태도들이 보였거든요. 그게 회사에 오래 살아남는 비결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 방식이 싫고 괴로웠어요. 거기에 무서워하는 사람이 따로 없었으니 그럴 수 있었던 것 같고요. 대표나 상사를 무서워하지 않고 이 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다면 나가야지, 하는 태도였거든요.      


듣고 보니 은진 님을 구축하는 중요한 뿌리 중 하나는 양심이나 도덕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저는 양심이 지적인 문제고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동의해요옳다고 여기는 대로 행동해도 조직이나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환멸이나 회의감이 들 수도 있을 듯해요은진 님은 어떠셨어요?     

이후의 변화는 제 몫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할 일을 했고 미련 없이 그 조직을 나왔으니까요.

퇴사 전에 기억에 남는 풍경이 있어요. 제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동료가 겪은 일로 문제 제기했더니 징계위원회에 여러 번 불려가야 했어요. 진술하고 처분을 따지는 일들을 반복하는 동안 할 일은 잔뜩 쌓이는데 계속 불려 다니느라 지쳤죠. 하루는 징계위원회에 갔다가 자리로 돌아왔는데, 본부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기 일만 하는 게 눈에 들어왔어요. 영화의 한 장면 같았죠. 생경하다 못해 이상했어요. 난 당사자도 아니고 그 자리에 없었는데도 이 고생인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입 싹 닫고 모르는 체하는 태도가.     


회사 생활에서의 외로움을 나눈다면고충을 나눌 수 없는 유와 그들과 섞이지 않는 유가 있잖아요     

저는 후자의 외로움에 가깝죠. 회사 생활하는 동안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컸어요. 일하며 겪는 고충이야 회사 밖 친구들에게 얘기할 수 있으니 괜찮거든요. 내부 사람들이 다 이렇게 행동하는데 심지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면 ‘내가 이상한 건가, 유난스럽고 예민하고 쓸데없는 일을 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힘들더라고요.     



조직이 곪아갈 때 문제 제기하고 바꿔나가는 사람이 있기에 조금씩 나은 모습으로 변화한다고 여겨요.     

때로 ‘그래, 너 같은 애가 있어야 변해’ 하는 말을 듣는데, 웃기면서 열받아요(웃음). 꼭 행동까지 바라지는 않더라도 모르는 척만 안 해도 돼요. 하지만 제가 봐온 사람들은 그런 얘기조차 안 하고 아예 없던 일처럼 굴었어요.

당시 애인이 열받은 저를 보더니 해준 말이 그나마 위안이었어요. 그렇게 가만히 있고 침묵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초식 동물이야. 너는 일종의 사자고. 초식 동물은 항상 몸을 숨기고 다녀야 해, 그게 그 사람들이 사는 방법이야. 그 설명으로 다시 보니 그들의 행동이 일면 이해되기도 했고, 어쩌면 제가 지나치게 화를 내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게 됐어요.     


반대로 여성들과 일해본 경험을 통해 전에 없던 걸 깨달았다고요그게 현재 끗질에 이르게 한 경험일까 짐작해봤어요.     

처음은 2017년이었고 공공기관 위촉직 연구원으로 일할 때예요. 박사 이하는 다 계약직이라 6개월 정도로 짧았지만, 연구원과 박사님 모두 여자라서 여고 이후 처음으로 여자들과 어울리고 일해본 셈이었어요. 아침에 드립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시작해 곁들일 빵을 챙겨서 둘러앉는 것부터 남달랐어요. 차분하고 고상하고 순둥순둥한 사람들 속에 있는 느낌은, 내가 지금까지 어떤 쓰레기 바닥에서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천국 같았거든요(웃음)! 대화는 온통 귀여운 얘기뿐이고, 점심 이후엔 근처 공원을 산책하거나 여유로울 때는 소풍 가듯 돗자리 깔고 도시락 먹고 자전거를 타는 일과. 일하는 동안 제게 없는 부분들을 여성 동료들에게서 발견했고, 그 점이 멋있어 보였어요. 이후 어떤 상황에 부닥치면 ‘그분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고 상상해보게 됐고요. 같이 일할 때부터 곁에 없는 지금까지 여러 영향과 도움을 받고 있죠.

두 번째는 앞서 얘기한 여성발전센터에선데요. 여기는 3050 경력 단절 여성분들이 많더라고요. 애 키우느라 경력이 단절됐다가 다시 일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센터에 모이게 된 경우였어요. 몇 달간 주기적으로 카페에 모이다 보니 금세 친해졌죠. 커피와 빵을 두고 언니들의 얘기를 듣노라면 귀가 아프고 먹먹한데도 정말 재밌었어요(웃음)! 이 그룹에서는 성희롱을 걱정할 필요가 없잖아요. 내가 어떤 시선으로 보일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전함, 편안한 감각을 간만에 느꼈어요. 특히 몇몇 언니들과는 사적으로 만날 정도로 친해졌고 세세한 삶을 듣는 동안 ‘왜 나는 이 언니를 지금껏 못 만나고 살았지? 이렇게 재밌는 얘기가 있는데 왜 아저씨들이 하는 재미도 없는 얘기를 들어왔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은 억울한 마음도 들었고요. 그러면서 ‘끗질’ 프로젝트가 생각났고 팀원들을 모아 자연스럽게 실현하게 된 것 같아요.     


말 나온 김에 끗질’ 프로젝트 얘기를 조금 해볼까요언니들의 이야기를 사적으로 듣는 것과 인터뷰로 기록해보겠다는 마음은 또 다르잖아요왜 인터뷰였나요?     

인터뷰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황선우, 은유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서 영향받았던 듯해요. 프로젝트의 가닥을 잡은 뒤에 고민한 지점은, ‘어떤 형태의 콘텐츠로 만들까?’였는데요. 두 작가의 인터뷰 스타일이 다르잖아요. 대화의 비중 면에서도 그렇고요. 대화냐 글이냐, 고민하던 중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들었어요. 여기서는 서로를 학인으로 부르고 써온 글을 읽고서 피드백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는 게 의미 있다고 여겼고, 언니들의 삶을 인터뷰로 풀면 좀 더 생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삶의 분기점으로 유럽 여행을 꼽아주셨죠그때 배우고 본 것들이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고요     

유럽 여행은 22살에 한 번, 30살에 한번 다녀왔어요. 20대에는 10개월 치 알바비를 모아 무작정 떠났어요. 영국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로마로 나오는 전형적인 유럽 여행 루트였지만, 로망이 있어서 혼자서도 잘 다녔죠. 물론 무섭기도 했어요. 지금이야 핸드폰만 있으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아도, 그때는 서툰 영어로 종이 지도를 들고 다니면서 길을 찾아야 했고, 소매치기 안 당하려고 복대 차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요. 긴장감에 매일 코피를 쏟을 정도로 신체 적응이 더뎠죠. 영국 런던에서 그렇게 지내다가 프랑스 파리로, 체코 프라하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동하면서 서서히 깨달았어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그때부터는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한국 사람이나 또래 여행객이 보이면 어디서 묵는지 물어서 같이 가는 식으로 요령이 생겼어요.

그때 깨달은 건 내 몸에 대한 부분이에요. 그전까지는 신체 콤플렉스 때문에 늘 검은색 긴 바지만 입고 다녔거든요. 여행지에서 자기 몸이 어떻든 마음껏 입고 다니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마주했고, ‘나도 이렇게 입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처음으로 반바지도 입고 짧은 치마도 입어봤는데 아무도 제 몸을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그 분위기가 반가웠어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더 과감해지기도 하고, 여러 아이템을 시도해보면서 제게 맞는 스타일도 알게 됐어요. 베레모가 그 예예요. 저는 베레모가 잘 어울리는 스타일인데 한국에서는 왠지 놀림 받기 십상이거든요. 그래서 파리에서만큼은 마음껏 쓰고 다녔고 마주한 사람들로부터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어요.

익히 알다시피 어린 동양인 여자가 혼자 다니면 남자들의 대시가 숱해요. 그때 어울렸던 친구들과의 대화가 인상적이었어요. 전공에 관한 화제가 나오면 너무나 멋진 꿈이라며, 여기 와서 하면 어떠냐, 이런 아이디어는 어떠냐며 가벼운 제안들이 이어지는데 정말 색달랐어요. 한국에서는 누군가의 꿈을 걱정이란 이름으로 깎아내리고 돈이 되는지, 장래가 유망한지로 귀결해버리는데, 여기서는 그 꿈을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대하는 태도에서 존중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나를 북돋는 멋진 경험들이네요내 몸을 보는 시선부터 내 미래나 아이디어를 공감하는 분위기까지 전부요     

30살 때도 비슷했어요. 그때는 파리에 잠깐 머물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중심으로 다녔죠. 특히 스페인 음식은 여느 유럽 국가보다 한국 사람 입맛에 잘 맞아요. 술이 싸고 맛있다는 점도요. 유럽 어디든 남부는 날씨와 지리적 여건이 좋잖아요. 따사롭고 바다가 있으니까 바르셀로나부터 남부를 쭉 도는 동안 어딜 가나 좋았어요. 보는 족족 예쁘고 스페인 사람들도 좋고.     


은진 님은 술을 좋아하시나 봐요     

그 때문에 더 좋았죠(웃음). 동행이 있는 것도 좋지만, 혼자 여행하면 얻는 게 많다고 느끼는 게 고독할 때 뭔가를 많이 남긴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행이 특별한 건 내가 지금까지 해오지 않은 방식으로 시간을 쓰기 때문이잖아요. 돈은 지출하고 시간은 쓰는 식으로 오로지 마이너스의 방향으로만. 생산적인 일일랑 전혀 하지 않고 한량처럼 아침부터 점심, 저녁마다 와인이나 클라라(레모네이드와 맥주 섞은 술)를 마시는 거예요. 이외에는 현지인과 데이트하거나 한국 사람 만나서 같이 돌아다니고요. 일상과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써보는 경험이 과감해지는 데 도움 돼요.

아, 여행지니까 할 수 있었던 경험도 있어요. 포르투갈에서 리스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경유하는 지점이 있는데요. 파루라고 하는 조그만 마을에서 식사하고 있을 때였어요. 한 아저씨가 곁에 와서는 자기 동네에 가면 농장이 있대요. 말도 탈 수 있고 바비큐도 해줄 테니 하루 놀러 오라고요. 조금 떨어진 곳이라기에 냉큼 따라갔잖아요(웃음). 막상 날이 흐려서 농장을 못 간 대신 아저씨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했어요. 한 교회에서 기도드리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시신을 본다거나, 할아버지들이 당구 치고 축구 경기를 보는 동네 펍에서 술을 한 잔씩 먹고 나온다거나, 아저씨 집에서 옆집 아저씨랑 생선 바비큐를 먹는다거나. 분명 우려되고 위험할 만한 제안일 수 있었는데 다행히 네, 안녕합니다(웃음).     


여행지그러니까 낯선 곳에 가면 좀 무모해지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뒤를 더 생각하지 않게 된달까.     

맞아, 그렇게 돼요. 그래서 여행지에서는 안 해본 것들을 시도해보는 것 같아요.

여행을 다녀오고서 도시에서 마신 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글감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매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셨으니까 쓸 이야기는 충분했거든요. 안 쓰고 뭉그적거리는 사이 외장하드가 데이터가 소실되는 바람에 한동안 멘붕에 빠졌지만, 다행히 금방 괜찮아지더라고요. 나이 먹는 게 그런 점에서 좋나 봐요어쩔 수 없다사라졌어야 하는 것들인가 보다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된 점에서.     



은진 님을 표현하는 키워드로 모험이나 시행착오실패하는 부분을 들어주셨죠시행착오를 통해 나에 관해 더 알게 되는 것 같고 동시에 좀 넓어지는 부분이 있잖아요경험 이후에 달라진 지점이 있을까요     

무엇이든 시도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어요. 몰랐던 점 한두 가지는 무조건 알게 되기에 기회가 생기면 웬만큼 도전하는 편이에요. 안 하거나 못하는 영역도 분명히 있지만, 그게 설사 나쁜 짓이 아니라면 대체로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요.     


안 하거나 못하는 영역은 뭐예요?     

못하는 건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요. 사랑하는데 표현을 못 한다고 해야 할까요. 사람 대하는 걸 망설이고 조심스러워해요. 좀 더 과감해져도 될 것 같으면서도 어려워요. 연애 상대처럼 확고한 관계 외에 호의를 가진 정도의 관계라면 특히나. 그 외에는 니체가 얘기하듯 악행이라도 행해보는 편이에요. 그 악행이 뭐냐에 따라 다를 테지만요(웃음). 친구가 머릿속으로만 있는 게 악행인지 아닌지는 해봐야 안다고, 뭘 고민하고 있냐고, 그냥 하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여겨요그중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도 있을 텐데은진 님은 후회를 크게 안 하는 편인가요?     

후회와 반성은 다르잖아요. 마음이 무거울 때 반성은 열심히 하고 후회는 거의 안 해요. 결론이 매번 ‘다음에 안 그러면 되니까’로 흘러선지, 선택할 때 부담이 없어요. 어차피 후회 안 할 거니까. (팁이 따로 있어요?) 전 그냥 저지르는 것밖에 없는데… 딱 떨어지는 팁은 없고, 몸에 쌓이는 데이터가 나름의 팁 아닐까요여러 번 해보면서 그 선택으로 인한 경험은 손실이 아니라 길게 볼 때 이득이라는 걸 인지하면 결정할 때 한결 쉽겠죠확신그리고 뭐가 됐든 후회하지 않겠다는 다짐! 끗질의 시작도 망해도 포기하지 않겠다, 망해도 절대 손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시작했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다행이라는 안심과 함께 용기가 생겨요선택 앞에서 늘 조마조마하잖아요더구나 무소속으로 지내다 보면 이후가 잘 그려지지 않고 막연해서 더 두렵고요     

저도 매 순간 두렵고 다음 달, 그다음 달, 정해진 미래가 없어요. 회사에 다니면 어쨌든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니까 몇 달 뒤를 계획할 수 있는데 프리랜서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학기가 끝나면 계약은 종료되고 방학 때는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죠. 무소속의 일이란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그래서 초연해야 하고 거리를 둘 필요가 있는데코앞에 생존 위협이 닥치면 쉽지 않더라고요. 한때는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듯했는데 지금은 ‘어쩔 거야’ 하는 배짱도 생겼어요. 사람마다 운이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제 운을 믿거든요. ‘결국에는 뭔가가 나를 구원해 줄 거라는 믿음’ 말이에요뭐든 지나다 보면 해결될 거예요.







쓰시는 글 얘기를 해볼까요. ‘글을 본령으로 살고 싶다고 소개하신 게 인상적이에요글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하셨나요?     

보통 인생의 어떤 목표나 꿈을 언제 발견한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오히려 번아웃일 때 명확해졌어요.) 저는 어렸을 때 자신의 꿈을 안다고 생각해요. 타고났다고 말하면 과하지만,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 본능적으로 끌리는 게 하나쯤은 꼭 있어요. 내가 품고 있는 꿈이나 소망, 바라거나 도달하고 싶은 지점 등.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책 읽는 환경도 중요하다고들 말하는데 집안 분위기나 제 습관상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러다 중학교 1학년 때 백일장에서 시를 써서 장원을 탔지 뭐예요. 그러니까 저도 놀라고, 우리 반 애들도 놀라고, 우리 엄마도 놀랐죠(웃음). 그때부터 글 쓰는 게 재밌어졌어요. 말도 안 되는 소설이든 뭐든 쓰는 행위 자체로 즐거웠죠. 고등학교에 간 뒤로는 소설책을 주로 읽었고, 영화감독을 꿈으로 삼았어요. 이야기를 직접 만들고 싶은 욕망이 계속 있었던 거죠. 대학에서는 영화를 부전공할 정도로.

이제는 꽤 알려진 부분인데, 영화는 기술적인 일도, 예술적인 일도 아닌 사람 일이잖아요. 글이야 혼자 쓰면 된다지만 영화는 공동 작업이라 참여진이 많고, 10여 년 전에는 지금처럼 단순하게 찍는 분위기도 아니었어요. 결국 연출이라는 건, 감독이라는 건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는 걸 그때 알았죠. 제가 사람을 그렇게나 싫어하는데 사람 다루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웃음)? 게다가 심각한 남초 사회. 지금보다 더 심한 일들을 겪으며 더러웠고 제 성격에 안 맞아서 포기했어요. 재학 중에 작품 하나 만들려면 100만 원이 금방 깨질 정도로 돈도 많이 들었고요. 그러면서 이전과 상반된 길로 가게 됐어요.

번아웃임을 알기 전까지는 저 자신을 강하다고 여겨왔지만, 와르르 무너지는 때가 오자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누군가로 인해 내가 망가지더라고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그렇게나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 멀쩡할 리 없죠. ‘이렇게 미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다다를 수밖에. 그렇게 미라클모닝을 시작했어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명상하고, 모닝페이지도 쓰고, 책 읽는 루틴을 만들면서 그 효과를 봤고, 그러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찾게 됐어요. 그리 보면 번아웃이 꿈을 발견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에요(웃음).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까 아주 깊숙이 묻어뒀던 꿈과 만나게 된 거죠. ‘맞다! 나 원래 글 쓰는 거 되게 하고 싶었지!’ 

사실 글쓰기가 돈이 안 되는 일이잖아요. 당시에는 재능이 출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쉽게 포기했는데 결국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어요애써 무시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걸 깨달았달까요. 회사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글로 쓴 건 마음 깊이 글 쓰고 싶다는 걸 깨닫고서 퇴사 시기를 얼추 정할 때였어요. 마침 퇴사까지 6개월 전이라 ‘이 기간의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 마음으로 입사 한 달, 입사 두 달, 퇴사 몇 달 전으로 가벼운 목차를 짰죠. 훈련이 안 돼 있는 상황에서는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뭘 써야 할지 몰랐는데, 이거야말로 명확하고 좋은 글감이잖아요. 아주 괜찮고 심지어 자극적이야! 그 포인트가 먹혔는지 브런치나 다음 메인에도 노출되더라고요(웃음).     


제가 볼 땐 퇴사라는 키워드보다 은진 님이 글을 맛깔나게 쓰셔서 메인에 걸린 게 아닐까 해요은진 님의 글을 읽으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씁쓸하고 힘들지만글맛이 있어서 읽는 게 즐거웠어요에세이가 이렇다면 인터뷰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 기대되는 거예요(웃음).     

실망이 커질 수도 있죠(웃음). 인터뷰는 에세이와 달리, 재밌을 뿐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기도 해요. 어려운 부분과 마주할 때마다 잘하고 싶어서 힘들 때도 있지만 좋고요. 글, 에세이를 쓰면서 좋았던 건 사건을 객관화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상처를 해소할 수 있던 점이에요. 감당하기에 너무 뜨거운 감정을 표출해내고 싶어서 쓴 게 아니라 최대한 이걸 잘 전달해서 쓰고 싶으니까, 쓰다가도 계속 검열하게 돼요. 그때 상황이 이렇게 됐었나? 이 사람이 너무 나빠 보이지 않나? 나쁜 놈은 맞긴 하지만 너무 악인처럼만 읽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동시에 하며 쓰니까 내 일인데도 다양한 입장을 고려해보고, 감정을 털어낼 수 있었어요.

글을 마무리 지을 즈음에는 상처나 트라우마, 미련들이 다 사라졌어요. 앙금이 없으니 그때를 떠올려도 괴롭지 않아요. 글쓰기가 제게 남긴 좋은 영향이라고 여겨요. 제 글에 달리는 댓글들은 저와 비슷한 일을 겪은 분들이 대다수예요. 너무 슬픈 일이죠, 이런 아픈 경험을 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중에는 3년이 지났는데 감정이 해소되지 않아 아직도 괴롭다는 분이 있어서 참 속상하더라고요.      


본인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본인을 잘 알고 있고 객관화해서 볼 수 있잖아요그런데도 은진 님에게 인터뷰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저 자신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항상 제가 품는 제1 의문점인데,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등 스스로에 대해 메타인지가 높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실제로 일할 때, 컨설팅할 때는 꽤 높았던 것 같아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고 뭘 해야 하는지 등을 꼽는 게 순조로웠거든요. 놀랍게도 일에서 벗어나자 그 때문에 당혹감을 느꼈어요. 나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심지어 감정도 잘 모르는 것 같다그러니까 번아웃이 왔겠지. 많은 분이 스스로 번아웃인 줄 몰랐다고 얘기하잖아요? 남한테는 좀 쉬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이렇게 게을러서야 되나, 자책하니까.

결국 나를 알고 싶어서 계속 쓰는 것 아닐까요? 잘 모르니까.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은 글을 안 쓸 것 같아요. 글쓰기는 고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아시겠지만, 뭔가 쓰려고 하면 괴로워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적합한 말을 고르고, 시점을 달리하며 쓰는 일련의 과정은 때로 귀찮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에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크게 자리하니까 쓰는 거잖아요. 저는 그 욕망이 나를 알고 싶은 욕망이라고 봐요. 잘 모르니까 더 쓰고 싶고, 이 감정을 모르니까 해석해보고 싶은 마음.     



은진 님에게 중요한 키워드에는 확장도 있죠시도를 통해 잘 뻗어나가시는 듯해요.     

그런가요? 어떤 교수님이 하신 말씀인데,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모르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대요. 자기가 아는 게 원의 크기라고 봤을 때 원이 커질수록 이 세상과 닿는 면도 더 넓어지니까 모르는 것도 많아진다고요. (멋있는 말이네요.) 그렇죠? 커지고 있으니까 모르는 게 많은 거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졌다가, 아무리 그래도 너무 모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왔다 갔다 해요(웃음).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게 글쓰기랑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 같아요마침 은진 님이 그 두 가지를 하고 계시고요그럴 때 나다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밖에 없는데그게 유머 아닐까 해요.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그 사람이 한 농담을 보면 된다는 말 있잖아요. 한편으로 무서운 말인데, 맞는 듯해요. 농담하는 걸 보면 뭘 재밌다고 여기는 사람인지가 뚜렷하게 드러나니까요. 예를 들어 약한 사람들을 비웃는 농담을 하는 사람, 저급해질 수도 있는 영역을 건드리는 사람을 보면 그렇죠. 저는 농담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기준을 가지고 있다 보니 쉽사리 던지지 못하겠어요(웃음). 내가 이런 농담을 하면 상대에게 어떤 식으로 보일지 검열하게 되거든요.     


농담이 참 어렵다고 요즘 계속 느껴요나를 위해서든 상대를 위해서든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농담이 가능할까그 고민이 아직 풀리지 않고 있어요     

맞아요. 진짜 어려운 거예요. 실없는 농담하는 것도 싫잖아요. 괴로워(웃음). 반응이 없으면 정말 더 괴롭고요. 


농담을 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적어도 고도로 발달한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타고난 분들도 있지만 진짜 똑똑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언어유희도 잘하시고. 부러워요. 적재적소에 유머를 구사하시는 작가분들을 볼 때면, 너무 좋아서 저도 모르게 밑줄을 쫙쫙 긋곤 해요(웃음).     


이만큼 유머를 중요하게 여기신다면재밌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는 바람이 있으실까 궁금해지네요.     

제 앞에 놓인 과제는 무거운 것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뭔가 할 때 몰입하다 보면 자꾸 무거워지거든요. 그러니까 ‘끗질’도 혼자 해보고 망하면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프로젝트가 되고 팀원들이 생기면서 일이 커지잖아요.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나, 팀원들끼리 의견이 잘 안 맞아 괴로울 때 점차 무거워지고 있다고 느껴요. 올해는 무거워질 때마다 풀어내는 훈련을 해보는 중이에요. 제가 가벼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재밌는 사람은 말 그대로 유머러스한 사람일 텐데 뭘 위한 유머인가 생각해보면,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살기 위해서예요. 재밌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하니까 내가 재밌으면 싶어지는 듯해요. 엊그제 김혼비 작가 북콘서트를 다녀왔는데, 제가 김혼비 작가 특유의 유머를 좋아하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살면 좋겠다 싶었어요. 저 자신이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지금보다 더 나이 먹으면 레벨업이 되겠죠     

아마 나이 드는 게 더 재밌을 거예요. 인생이 재밌어져서 더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은진 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찰흙을 주무르는 모습을 그렸다. 찰기 있고 조합하기 수월한 찰흙은 곧잘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고, 반대로 망쳤더라도 금세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 만들 수 있다. 흙 자체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다.     


그 막연함에 주춤거리는 사람이 있지만 그는 무작정 덤비는 쪽이다. 이 흙을 주물러 만들어낼 모습이 있지만, 삐끗해서 망가진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 물을 묻혀 모양을 다시 다듬거나 흙을 덧대어 조정하면 되니까. 하지만 수정할 수 있는 기한은 며칠뿐. 굳어버리면 그 모양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면은 삶과도 비슷하다. 어떤 시절에만 머물러 있고 더 변하지 않는 지점들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기에 그가 겁 없이 시도해보는 일들은, 굳지 않도록 여러 번 물을 칠하며 반성하는 과정이자, 시행착오를 거쳐 굳어진 모양이 맘에 들길 바라는 간절한 자기애가 아닐까.




은진 님을 더 알고 싶다면


여성 인터뷰 팀 끗질

https://www.instagram.com/kkeutjil


노원구 로컬매거진 「NUGU」

https://www.instagram.com/magazine_nugu/







인터뷰, 촬영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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