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0. @혜화역
시그니처 아이템의 의미 ─
여름이로 타투한 이유는, 제가 오래 기억하고 싶은 존재이면서, 타투를 볼 때마다 힘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요. 저에게 많은 것을 준 아이여서 꼭 새기고 싶었죠. 포즈를 오래 고민하다가 발라당 배를 보이고 누워있는 모습으로 정했어요. 고양이는 아무에게나 배를 보이지 않아서 친근한 사람에게만 허락하는데, 여름이는 사람을 좋아해서 누구에게나 저러거든요. 낯가림 없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오래오래 제 마음에 살았으면 해요.
1950년대에 문을 연 학림다방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1480년대에 창건한 창경궁을 산책하며 촬영했다. 세월이 깃든 공간을 누비는 동안 감지한 시간은 하루 단위가 아닌 존재 단위. 건물의 시간, 청년의 시간, 고양이와 개의 시간을 오가는 동안, 우리가 2022년이란 시간대에 각각의 존재로 함께 머무는 건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존재의 생애가 남긴 흔적은 기억으로 남거나, 기록으로 남는다. 몸을 한 번 관통한다는 점에서 한 존재의 생애는 개인적일 수 없다. 그래서일까, 어떤 생애는 취향으로 남기도 한다. 전에 없던 방향이 생기고 관심이 자꾸 쏠려서 새로운 자취를 만드는 식이다.
혜지 님은 본인을 두고 무엇 하나를 깊게 파본 적이 없어 취향을 논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단숨에 획을 긋기보다 나지막하고 꾸준하게 그어나가는 모습은 깊이보다 넓이가 적합하다. 널찍널찍하게 보이는 취향조차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혜지 님을 보며 알았다.
무소속으로 지낸 기간과 소개 부탁드려요.
2019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무소속으로 지낸 지 2년하고 7개월 됐어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틈틈이 여러 직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카페에서 일하기도 하고 화요일마다 초등학생 친구에게 미술도 가르치고요. 지금 기준으로 직업이 한 3개 정도? N잡러로 생활하고 있어요.
멋지네요. 흔히 연상하는 프리랜서의 모습과 비슷해요.
프리랜서가 아무래도 고정적이지 않으니까요. 이전에는 의류 패턴 회사에 다녔어요. 엄마가 수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마침 서울 생활이 힘들기도 하고 서울에 사는 게 과연 맞는 건지 고민해봤어요. 동선이 회사-집-회사-집으로 단조로운 데다 서울에서 일하는 친구가 없어서 남자친구뿐이었거든요. 입사 동기마저 퇴사하자 여러 요소를 종합해 퇴사를 결심했어요.
바이어나 실장님이 원하는 방향, 콘셉트를 제시하면 만드는 일로, 1년 반 넘게 일하니 손에 익어서 어렵지 않았어요. 다만 같은 지점에서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이 아니라는 점이 아쉬웠어요. 내 역할이 그저 제품을 빨리 찍어내는 데 불과하다는 생각에 휩싸이자 ‘이렇게 일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게 퇴색되겠다’ 싶었어요. 그때 퇴사하고 친구들과 베트남 여행을 떠났죠. 2019년 12월 말에 출국해서 2020년 1월 2일쯤 입국했는데 1월 말에 코로나19가 터질 줄 몰랐어요.
여행을 다녀와서 리프레시됐겠어요.
돌아와서는 퇴직금으로 생활하며 서울살이를 이어가야 할지 갈등하다가 고민할 바에 하고 싶은 걸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인터넷 쇼핑몰 강의라든가 굿즈 만드는 강의를 조금씩 듣고 사업자등록증을 냈죠(웃음). 잘 팔리는 제품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은 귀여운 제품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지인들 또는 건너 건너 팔리는 식이었어요. 수익이 불안정해서 크몽이라는 플랫폼에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등록해두고 작업물을 의뢰받아 일하기도 했고요. 아빠를 통해 지인을 대상으로 미술 수업을 하거나 카페 일을 한 것도 작업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주중에 잠깐 일할 생각에서 비롯됐어요. 안정을 구축하기 위해 찾은 루트들이죠.
2년간 필요해서 갖춰진 직업들이네요.
네. 지금 사는 곳은 본가가 아닌 할머니 댁이거든요. 전남 함평이라고, 말 그대로 시골이에요. 부모님이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본가는 다 정리하셨어요. 내심 금방 서울에 돌아가겠다고 여겼는데, 살던 곳에서 떠나 친구 없이 적적하게 지내실 엄마가 마음에 걸렸죠. 아빠야 살던 동네라 친구도 많고 건설직이라 집을 떠나 지내는 기간도 꽤 되지만, 엄마는 사회관계망이 다 사라진 채로 새로 이 지역에 적응해야 하잖아요. 저마저 따로 살면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는 게 힘들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도 집 앞에 정원이 있고 논이 보이는 데다 산이 있어서 좋아요. 바다가 지척이라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바로 보이거든요. 반려견과 산책할 때 가끔 가요. 가끔 고라니나 멧돼지도 지나다닐 정도랍니다(웃음).
도시인의 로망이잖아요. 걸어서 바다를 볼 수 있다니(웃음).
저도 한창 서울에서 살다가 6개월간은 좋았어요. 동네가 조용하고 혼자보다는 가족들이 함께 머무는 게 반려묘에게도 좋더라고요.
반려묘 이름이 여름이죠? 어떤 계기로 같이 살게 됐어요?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친구와 자취를 시작했어요. 오피스텔로 2년 계약했는데 나중에 친구가 통학하겠다고 나가면서 여름이와 살게 됐어요. 대학생이 되면서 꾸준하게 아르바이트 해오다가 3학년 2학기부터는 졸업 작품을 준비해야 할 시기라 집중하려고 알바를 쉬었어요. 그즈음에 불현듯 동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페이스북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임신해서 한 마리를 분양한다는 게시물을 봤고, 그중에 여름이가 있었어요. 그렇게 저에게 왔죠.
고양이용품을 사고 집 곳곳 들쑤시며 틈이란 틈은 죄다 청소하고 맞이했어요. 고양이나 동물에 관한 지식이 없었는데 여름이와 살면서부터 달라졌죠. 아마도 제 취향은 독립을 기점으로 확고해졌을 거예요. 제 공간이 생기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거든요. 그전에는 슬픈 일이라든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혼자 괜찮아질 때까지 있다가 나중에야 주변 사람들한테 얘기하곤 했어요. 여름이와 함께 산 뒤로는 극적으로 달라진 건 아니라도, 감정 표현이 풍부해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혜지 님의 취향을 만드는 데 독립이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이 이해돼요. 반려동물과 사시는 분들은 시야가 넓어지잖아요. 심지어 길고양이 챙기려고 사료나 물 같은 걸 상비하고 다니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여름이의 존재는 제 관심 영역을 점점 확장시켜줘요. 여름이를 만나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고양이를 좋아할 줄 몰랐고, 길고양이에서 나아가 동물 복지까지 관심이 생길 줄 몰랐어요. 요즘은 이 아이가 살아갈 지구에 대해 자주 그려보고 할 일을 찾아 나서곤 해요. 그러면서도 여름이를 품을 정도의 책임감, 감당할 수 있는 책임감만 지는 편이에요. 할머니가 밥 챙겨주시던 길냥이가 있어서 그 길냥이, 조금 더해 새끼 몫까지 밥을 챙겨주는 정도.
이곳에 살면서 불편한 지점이 많이 보이는데, 인식 바꾸기를 무작정 강요할 수 없어서 난감해요. 시골에서는 개를 묶어서 키우고 동물 등록이니 중성화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잖아요. 크게 관심도 없고요. 실제로 중성화수술을 하려면 집 근처에 동물병원이 없어서 광주까지 가야 할 정도로 접근성도, 의식도 미비해요. 예전에 할머니가 키우던 강아지, 가을이도 심장사상충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기 때문에 더 마음 쓰여요. 접종시키거나 동물병원에서 진찰받았다면 달랐겠죠.
불편한 지점일 수도 있고 문화가 조금씩 변해가는 지점일 수도 있겠죠. 주민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도 그래요.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하기 시작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찾아보니 서울과 달리 이 지역은 중성화 사업도 안 하고 동물 복지 제도가 크게 없더라고요. 동물 등록도 마찬가지였어요. 보통 군청에서 동물 등록하는 절차로는 사진을 찍는다거나 특징을 적는다는데 여기서는 이름이랑 성별, 중성화 여부만 쓰면 될 정도예요. 그러면 동물 등록이 의미가 없지 않나 싶었어요.
동물권이나 동물 복지를 고민하는 목소리가 들리지만 아직 어렵네요. 이런 데서도 인프라가 서울이나 수도권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동물병원만 해도 1시간이나 이동해야 하니 동물 친구들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처음에는 병원 오가는 데만 해도 멀미가 심했어요. 말랑, 카우라는 강아지 2마리는 초반에 컨테이너 형태의 작업실에서 지내게 했다가, 요즘처럼 더울 때는 안에 머무는 게 고역이니까 강아지 전용 운동장처럼 큰 텐트에 망을 치고 인공 잔디를 깔아서 지내게끔 해놨어요. 가족들이 출근한 시간대에는 따로 돌봐줄 수가 없으니까요. 한번은 어떤 이웃이 이렇게 애지중지 키울 거면 더 좋은 종을 키우지 그러느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 친구들을 구했다고 생각해요. 만약 나머지 형제처럼 시장에 갔다면 개 농장에 끌려갈지 어떻게 될지 모를 노릇이잖아요. 저희에게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반려동물과 살 때의 책임감이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막연하게 드는 무게감과 두려움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같이 안 사는 게 더 쉬운 결정이라고 봐요.
저도 그런 생각이라 자취할 때 동물을 따로 들이지 않았어요.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겼으니까요. 놀랍게도 막상 여름이와 살고 보니까 더 어려워요. 차라리 몰랐다면 그저 고양이, 강아지로 보이겠지만 눈에 밟히는 아이들이 하나둘 생겨버렸거든요. 그 불편함을 알아가면서 동물권행동 카라나 동물 복지 단체를 구독하며 방법을 찾아보곤 해요. 얼마 전에 마을 개선 사업을 접하고서 신청할지 고민돼서 엄마와 얘기 나눴어요. 덜컥 신청했다가 사업을 시작하면 마을 분위기상 누가 신청했느냐는 게 문제시될 거라, 후폭풍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더라고요. 어찌 보면 주민들에게 저희는 타지인이잖아요. 그래서 이 지역에서 어떻게 동물과 살아갈지 매번 고민해요.
여름이와 말랑, 카우에게는 혜지 님이 가장이네요.
아마 저 혼자였다면 그런 환경을 구축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처음 데리고 왔을 때 제일 신경 써야 했던 부분은 중성화시키는 일, 실내에서 키워야 하는 부분이었어요. 가족들도 필요한 과정임을 알지만 다 돈이 들잖아요. 책임감도 돈에 기반을 두니 중성화 비용은 제가 부담했어요. 가족들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부분에서 감당 안 되겠다 싶으면 쉬이 포기해버리게 되니까요.
따지고 보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더 커요. 제가 언젠가 이 지역을 떠날 텐데, 여름이야 데리고 갈 수 있다지만, 말랑, 카우는 실내보다 야외 환경이 더 좋으니까 남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때 저 없이 부모님이 둘을 감당하는 일이 쉽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그러니 초반에는 제가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기로 한 거예요.
엄청난 결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로 인해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 점점 더 늘어나고 보이는 게 많아지고 있는 거잖아요.
가령 동네에서 말랑, 카우에게 하네스를 채우고 산책하면 동네 할머니들은 옷을 입혔다고 생각하세요. 하네스가 뭔지 모르시는 거죠. 그러면서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거 아니냐는 말이 덧붙어요. 저희 할머니도 그런 모습을 안 좋게 생각하는 면이 있으시고요. 때때로 당신을 안 챙기고 동물을 더 챙긴다고 질투하세요.
다양한 존재와 살아간다는 건 긴밀한 조율과 고민이 필요한 일이네요. 그런 상황 속에서 전보다 나은 여건을 조금씩 만들어 가시는 것 같아요.
같이 살기 전에는 제게 이만큼의 책임감은 없을 줄 알았어요. 점차 책임감이 더 실리는 곳으로 나아가게 되는 듯해요. 동물에 관심 두다 보니, 동물도 이런데 아이는 어떻게 키우나 싶어져요. 애인과 오래 사귀어서 결혼 얘기가 나오는데 때때로 아기도 생각해보곤 해요. 그런데 저희는 아직 돈이 없어서 안 될 것 같아요. 낳으면 어떻게든 된다고 하는 말도 있지만 제대로 갖춘 부모가 되었을 때 낳는 게 낫지 않겠어요? 양육자가 되려면 저희가 필요해서 애를 낳는 것보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부모가 됐을 때 낳는 게 맞다 싶어요.
사실 가족 형태가 다양해져서 딩크족도 있고 반려동물과 살 수도 있고, 입양도 있을 거예요.
맞아요, 꼭 낳아야만 내 아이가 되는 건 아니다 싶거든요. 가끔 입양 얘기도 나눠봐요. 가정환경 때문에 힘든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한 명쯤은 내가 도움을 줘도 되지 않나?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이죠. 막상 가족이 되었을 때 다른 구성원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부분도 고려해야 할 테니까요.
마침 팔에 하신 타투가 눈에 띄어요.
저는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죽을 때까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데 이 아이는 일생에서 저만 알고 바라보는 거잖아요. 사람의 일생보다 더 짧게 살다 가니까 삶부터 죽음까지 다 생각하게 되나 봐요. 나중에 제 삶에서 사라지더라도 이 아이를 계속 제가 기억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2018년에 처음 했어요.
가끔 아빠는 제게 동물의 모든 것에 관심 주면 못 산다고 하시는데, 때때로 화가 나요. 동물들이 직접 바꿀 수 없으니 사람이 생각하고 나서야 바뀌는 거잖아요. 나라도 관심을 두고 살아야 질문이 생기고, 그걸 생각하며 사는 게 사람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알았는데 부모님이 반려동물에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싫거나 불편해서라기보다 동물과 헤어질 때 슬픔이 너무 커서 지레 거리를 두는 게 크더라고요. 저는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어릴 때 병아리를 키웠대요. 어느 날 병아리가 죽었고 제가 찾을까 봐 몰래 아파트 화단에 묻었다고 해요. 그 작은 생명에게 애정을 주고 삶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아프게 남았다고요. 이후로 반려동물과 살지 않았대요. 지금 부모님이 ‘우리 여름이’라고 부르고 아빠가 메시지로 강아지 심장 호흡법을 보내는 모습에서 그 정도 변화만 생겨도 다행이다 싶어요.
애정을 주고 교감한 존재와 헤어지는 일이 어려운 건 애와 어른으로 나뉘지 않는 것 같아요.
만화 <짱구를 못말려>를 좋아한다고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봐왔어요. 요새는 볼 게 없다 싶으면 유튜브로 짱구를 검색해서 틀어놔요. 생각 없이 보다가 피식 웃기도 하고 잔잔한 감동도 있잖아요. 짱구의 매력 포인트는 5살 답지 않은 유머 센스 아닐까요(웃음)? 그리고 흰둥이는 엄청난 조연이죠, 하얗고 작고 귀여운 생명체! 심지어 똑똑하고 사람 못지않은 배려심까지. 포인트가 넘쳐나는 명작이에요.
저도 어릴 때 만화책, TV 애니메이션, 심지어 비디오까지 보면서 컸는데 혜지 님도 그렇다니 재밌어요.
학생 때는 하교하고 집에 오면 습관적으로 투니버스를 틀었어요. 집에 TV가 있어서 그랬던 건데, 대학생이 되면서는 집에 TV가 없으니까 유튜브로 찾아봤죠. 그때는 지금만큼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았지만요. 요새도 퇴근하고 돌아와서 TV로 투니버스를 틀어두거나 유튜브로 찾아봐요. 잔잔한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라 작년부터는 <날아라 호빵맨>에 빠졌고요(웃음). 넷플릭스에서 호빵맨 시리즈 전 시즌을 다 봤어요. 왜 이걸 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재밌다는 말이에요. 세균맨은 못된 짓을 하고 호빵맨은 호빵 펀치를 날려서 세균을 물리치죠. ‘바이바이 세균맨’ 하면서 사라지는 똑같은 패턴,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재밌잖아요.
짱구에서 최애 캐릭터는 누구예요?
흰둥이랑 맹구요. 흰둥이는 귀엽고 아주 똑똑해요. 심지어 사람보다 생각이 깊은 것 같기도 하고요. 맹구는 듬직하고 묵묵한 느낌이에요. 또래 친구들, 아니 캐릭터를 통틀어 제일 잔잔한 돌 같은 느낌이랄까요(웃음)? 사람의 감정은 널뛰기도 하는데 슬프건 화나건 표정 변화가 거의 없이 일정하게 평온하잖아요. 그런 데서 뭐 하는 앤지 궁금해져서 계속 보게 돼요.
둘 다 비중이 큰 캐릭터가 아닌데 꼽으시는 게 인상적이에요. 주인공 좋아하기는 쉬워요, 주인공 위주의 관점과 이야기로 짜여 있으니까.
어렸을 때는 주인공만 좋아했을 텐데 요새는 주변을 더 둘러보게 돼요. 주변 인물들에 포커스를 맞추면 다른 각도로 재밌고 우리 주변 인물들이랑 별다를 게 없어요. 어쩌면 이미 본 영화나 드라마를 다시 보기 시작하면서 시야가 달라졌는지도 몰라요. 볼 때마다 주인공이 아닌 배경이라든가 인물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는 면이 있어요. 그림 그리거나 글을 쓸 때 주변 상황, 풍경 등을 많이 관찰해야 표현할 게 늘듯이.
몇 년 전부터 레트로가 유행을 휩쓰는 추세잖아요. 음악 장르부터 콘텐츠의 톤, 취미 영역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느끼는데요. 과거의 것이 현재 재생산도 아니고 다시 향유되면서 과거가 계속되어 미래가 없어지는 느낌마저 들었어요. 제가 편안했던 지점은 1980-90년대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볼 때 현재 내 나이를 잊게 되는 거였어요. 그 당시에는 크게 고민도 없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음, 제가 만화에 친숙함을 느끼는 건 엄마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해요. 엄마는 아직도 만화를 보시거든요. 만화 <원피스>를 소장해두는 건 물론 웹툰도 꾸준히 보세요. 그래선지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을 보게 된 듯해요.
옛날에는 TV나 책으로만 향유하던 문화를 이제는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스트리밍 플랫폼이나 유튜브, 웹툰 플랫폼 등을 통해 누릴 수 있게 됐잖아요. 심지어 모든 게 핸드폰 하나로 해결되고요. 현재에 맞는 방법을 찾는데 과거의 콘텐츠를 찾아본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곱씹게 돼요.
본인이 편한 콘텐츠를 찾는 게 아닐까요? 요새 종이책 안 읽는 사람이 많잖아요. 전 종이책으로 읽는 게 제일 편안하거든요.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면서도 화면으로 읽는 것보다 종이를 넘겨 가면서 읽는 방식이 집중하기 좋아요. 이처럼 자신에게 맞는 방식과 콘텐츠를 찾다 보니 옛날 콘텐츠로도 넘어가고, 본인이 좋아하고 집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달라서 드러나는 모습이 조금씩 다른 거라고 봐요.
혜지 님이 좋아하는 걸 주변에서도 같이 누리나요?
아니요, 저뿐이에요. 카메라만 해도 필름 카메라, 디지털카메라, 폴라로이드까지 다양한 종류를 가지고 있는 편이고, 책은 보통 종이책으로 읽거든요.
같이 누릴 사람이 없으면 외롭지 않아요?
다 다르니까 같이 누리자고 굳이 강요하지 않아요. 제가 사진 찍는 건 아날로그 느낌이 좋아서고, 사진을 선물해 주면 친구들도 좋아하는 편이에요. 종이책 같은 경우도 혼자 그 느낌을 간직하고 가끔 친구들이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요새 이 책 읽었는데 재밌다는 식으로 가볍게 추천해요. 수정이에게 더러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요. 꼭 보라고, 재밌다고 해버리면 강요하듯이 돼버려서 더 안 읽죠(웃음). 부담스럽잖아요. 마치 공부하라고 하면 공부 안 하는 것처럼.
저는 덕질할 때 입이 간질거려서 주변에 막 떠들게 돼요. 얘가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다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업하듯 돼버리거든요(웃음). 그럴 때 제가 좋아하는 걸 계속 얘기하노라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하는 듯해요.
저는 타인보다 저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제가 겪은 일이나 보았던 콘텐츠들이요. 저부터 관심 분야가 아닌 데는 할 말이 없기도 하고 리액션을 못 해서 그런가 봐요. 누군가 자랑하거나 좋아하는 것에 관해 얘기해도 영향을 잘 안 받아요. 새로운 분야라 신기해하며 듣긴 해도 제 취향이나 생각이 확고해서 그런지, 취향이 달라지거나 하진 않아요. 친구가 말하길, 저는 좋아하는 데 집중력이 남달라서 옆에서 방해해도 꿈쩍도 안 한대요. 결과물이 나오면 자랑하기보단 자기 만족하며 뿌듯해하는 모습에서, 누군가의 인정보다 스스로 만족하는지가 중요한 사람 같다고 하더라고요.
어린 시절 누구나 만화를 보고 자라고, 한 번쯤 그려보는데 잘 그린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면 그 영역이 사라져버리는 듯해요. 관심도, 애정도. 어렸을 때부터 계속 그리셨다고 하셔서 어떻게 그림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져요.
엄마가 어린 제게 그림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라고 해서 계속 그림 그리다가 미술 학원에 다니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이어온 일이지만 세세히 살펴보면, 그림 대회가 있으면 다 나갔을 거예요. 학원에 다니면서는 물론, 중고등학생 때는 관련 대회에 무조건 나가니까.
취향이 직업으로 이끌기도 한다고 여겨요. 전공을 택하신 데도 그런 게 좌우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계속해와서 전공을 택한 경우예요. 고3 때 미술 쪽으로 진로를 고민하다 보면 시각 디자인, 광고 디자인, 제품 디자인 등 분야가 다양해요. 여태 도화지에 그림 그리다가 네가 하고 싶은 걸 선택하라고 하는데 일차적으로는 흥미보다 성적에 맞춰가야 하죠.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텍스타일 디자인, 섬유 디자인을 택했어요. 그때는 제 흥미를 우선에 두지 않았고 아빠가 국립대학을 권하셔서 성적과 디자인의 교집합을 찾은 게 텍스타일이었어요. 다행히 배우다 보니 재밌어서 계속해온 거고요. 직업을 고민할 때도 전공을 살려도 좋겠다 싶어서 관련된 직업으로 찾았어요.
혜지 님에게 재밌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거예요?
고등학생 때까지 공부가 재밌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대학에서 전공으로 배운 것은 다 재밌더라고요. 재밌으니까 열심히 했죠. 자격증이나 관련 공부를 스스로 찾아보고 시도했고요. 그렇게 배우는 과정에서 집중하고 지식을 흡수하고 있다는 느낌이 재밌는 포인트였어요. 그때 깨달았죠, 관심 있는 분야를 파면 이렇게나 재미있구나!
성적을 받는 데 일차 목표를 두면 재미를 느낄 새가 별로 없죠. 대학생 때 재미를 발견한 것도 흔치 않아요.
그래선가, 동기 친구들은 저더러 독하다고 했어요. 그즈음에는 목표를 정해서 오늘의 할당량을 성취하는 식으로 지냈어요. 재미를 느끼는 분야를 찾았으니 더 잘하고 싶잖아요. 공교롭게 자취하던 곳이 학교 바로 앞이라 친구들이 놀러 나오라고 자주 연락했는데, 그럴 때도 제가 정한 할당량을 못 채우면 나가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학점이 목표였다면, 지금은 스스로 목표를 만들면서 생활해나가고 있어요.
졸업하고 회사 다니면서는 매일 비슷한 평균값에 할당치만 채우다 보니 발전하는 느낌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퇴사하고서는 직접 그리고 만들고 팔아보자는 마음으로 굿즈 제작과 스마트스토어 강의를 듣고, 사업자 등록증을 냈어요. 대단한 포부에 비해 결과는 미미했죠. 그래도 새로운 걸 만들 때마다 힘들어도 재밌더라고요. 집중해서 무언가 만들고, 제 제품을 좋아해 주는 피드백을 들으면 보람찼어요! 직전에는 독립출판물 제작 수업을 들었고 지금은 이모티콘 만드는 수업을 찾아 들어요. 흥미가 생기면 선뜻 배우곤 해요.
만드는 데서 파는 데로 점차 나아가네요.
음, 한 분야만 파기보다 관심을 다양하게 두는 편이긴 해요. 살아갈 날이 많을 텐데 뭐든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앞으로는 한 가지 직업만으로 먹고살 것 같지도 않고요. 그래서 창작 수업을 많이 찾아 듣나 봐요. 내가 가진 능력을 다양하게 쓰는 걸 배워두면서 생존 수단을 마련해놔야겠다는 마음으로.
독립출판물은 제 작업물을 만들 수 있으니까, 이모티콘은 집에서 혼자 작업하다가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수강하는 것들을 보면 내가 책상에 앉아서 할 수 있다는 기준을 충족해요. 하지만 이 일을 경험으로 역시 사업은 쉬운 게 없다고 깨달았어요. 재무 관련은 하나도 몰라 네이버와 유튜브의 도움으로 어찌어찌하게 운영했는데 역시나 어렵더라고요. 알고 있지만 소통은 특히 더 어려워요. 나를 알리고자 SNS를 운영하면서 뷰나 팔로워 수를 꾸준히 올리기란 힘들고요. 이래서 마케팅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고 있어 후회는 없어요. 남들에게는 티가 안 나겠지만 제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답니다!
이제는 하나를 배워서 평생 써먹거나 밥벌이하는 게 안 통하는 시대 같아요. 수시로 재교육 해가면서 능력치를 만들어 가야 하는 거죠. 독립출판물 얘기를 하셔서, 혹시 글도 쓰세요?
요새 조금씩 쓰고 있어요. 만들어 보려는 독립출판물이 있어서 할머니의 물건에 관해서 쓰는 중이에요. 솔직히 어릴 때 할머니와 살아본 적 없이 성인이 된 후에야 같이 살기 시작한 거라 흔히 예상하는 애틋함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매일 부대끼며 사는 할머니의 물건을 주축으로 짧은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어요. 카페에서 일하다가 손님이 없으면 조금씩 쓰다 보니 지금은 14~15편 정도?
좋아하는 독립출판물 중에 <할머니의 요리책>이란 책이 있거든요. 할머니의 요리법을 기록했는데, 재료는 본인이 그리고 요리 순서는 할머니의 사투리를 그대로 살려 적어뒀어요. 어찌 보면 개인의, 한 가족의 이야기에 불과해 보이지만 충분히 확장될 수 있는 이야기로 보이더라고요.
할머니와 같이 지내다 보면 찰나에 깨닫게 되는 포인트가 있어요. 할머니의 습관이라든가, 은연중에 나온 이야기나 행동인데 뭔가 남는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걸 조금씩 남기는 과정이에요. 할머니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공감대가 있을 거라고 여겨요.
퇴사하고 한가할 때는 할머니 곁에 붙어서 많은 부분 챙겨드렸는데, 요즘은 퇴근하고 돌아오면 주무셔서 잠자리를 봐 드리는 정도예요. 온종일 붙어있을 때는 필요한 부분을 제가 다 해드리다 보니 할머니 스스로 하시는 게 적었어요. 몸이 안 좋으셔서 그런 건데 결과적으로 치매가 악화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직접 하실 수 있게 유도하고 있어요.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의지하는 면이 심해졌거든요. 할머니 입장에서는 해줄 수 있는 건데 야박하다 싶을 거예요. 엄마가 뒤치다꺼리를 도맡을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알기에 제가 엄마를 대신해 싫은 소리를 할 때가 많죠.
꼭 타인에게 보이지 않더라도 가족 안에서 기록을 물려간다면 대를 이어서 그 사람이 잊히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프리랜서로 지내면서는 시간이 여유로워서 책을 많이 읽었거든요. 그 영향인가 싶어요. 보통 수필집을 읽곤 했는데, 소설과 달리 중간에 읽다가 멈추고, 다시 읽어도 되니까요. 일상에서 글감을 찾는 내용을 접하면서 서서히 내 주변도 둘러보게 되더라고요. 다른 지역으로 여행 갈 때면 꼭 독립서점을 들르곤 하는데, 독립출판물은 일정한 형식이 없어서 자주 들춰보고요.
잔잔한 관심을 ‘라이트하다’고 하잖아요. 혜지 님은 전방위로 넓게 보고 삶에 묻어나는 것들에 관심 가지는 듯한 인상이에요.
신청할 때 고민이 딱 그 지점이었어요. 덕질, 취향이라고 쓰여 있는데 깊게 파본 사람만 이야기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고요. 취향이 전방위로 이렇게 뻗어갈 수 있는 분야라면, 덕질은 그걸 좁혀가는 것 같아요.
하나를 파는 사람만 대단한 게 아니라 다양한 데 관심을 두는 것도 대단하거든요. 하나에 관심 두다 보니 연결되는 것들이 느는 과정으로요. 앞으로도 어떻게 살아가실지 궁금해요.
‘책을 한번 만들어 볼까?’처럼 방향을 정하되 기간을 못 박아두지는 않아요.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으니까 일단 해보자, 하다 보면 다음 챕터가 생기겠지 싶어요. 현재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에요. 학생 때는 흘러가는 대로 해왔는데 하루를 열심히 살 때 그다음 챕터가 생기는 거라는 생각이 든 후로는 마음가짐이 달라졌거든요.
생애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만들어진다. 물리적이기도, 심리적이기도 한 이동 과정에서 무언가를 만났다가 헤어지고, 배우고 후회한다. 경험치가 쌓이고 한 영역을 잘 알기 때문에 질리거나, 모르기 때문에 선뜻 용기가 나기도 한다. 이동은 좋은 게 좋지만은 않다는 것, 나쁜 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알려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생의 역설이 이해되고 하나둘 직접 터득해갈 때 이야기의 주변부라고 여긴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혜지 님의 삶에 불쑥 들어선 여름이, 맹구, 텍스타일 디자인이 그렇다. 갑작스러운 존재가 등장할 때 그는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며,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 간다. 자기 삶으로 끌어안는다.
그를 보면 취향은 패션보다 인사에 가깝다. 만남 이후에 벌어질 일을 고대하는 느낌이다. 거기서 새로운 일이 우후죽순 벌어지고 때로 헤어지기도 할 테지만, 겁내지 않는다. 그래야 다음이 있으니까.
인터뷰, 촬영 미란
디자인 로고블랭크
사진제공 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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