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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Oct 11. 2022

12 SORA : 점멸하는 빛을 따라서

2022.04.27. @홍대입구역


시그니처 아이템의 의미 ─
다정한 연구소 모임에 참석한 여성분들께 매번 손편지를 보냈어요. 웰컴 편지일 때도 있고, 마무리하며 보내는 편지일 때도 있었는데요. 그 편지를 쓸 때마다 제 안에 있는 좋은 마음과 다정함을 담아 쓰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일, 하고자 하는 일이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편지를 쓸 때의 마음을 떠올려보면, 상대가 잘 되기를 바라고 이 편지로 조금이나마 힘을 얻길 바라는 다정하고 애정 어린 마음이에요. 그런 마음으로 어린이와 여성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고, 제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마음들을 전하고 싶어요. 어딘가 이렇게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고, 그러니 이 세상에서 나답게 행복하게 살자고.




문제에는 답을 풀어가는 루트가 있다. 정곡을 짚으면 정확도 100%의 답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제시된 선택지 중에 어떤 게 오답에 가까운지 파악하는 게 문제를 푸는 요령이기도 하다. 오답을 잘 피할수록 정답에 가까워지는 일, 일종의 지뢰 찾기인 셈이다.


지금까지는 객관식에 한한 이야기. 그렇다면 주관식은 어떨까. 학창 시절 내내 연습해온 답을 찾는 방식은 여기서 무용지물이다. 논술이나 서술형은 물론이고, 인생의 문제들은 오답을 규정하기부터 어렵다. 누군가의 정답이 내겐 오답이 되고, 반대의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판에서 과연 정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질문이 잘못됐다. 거기엔 정답이 있을까.


보석테스트를 처음 마주했을 때 바로 이런 기분이었다. 분명 객관식임에도 오답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대개의 문제는 오답을 찾기 힘들 때 제대로 모르는 내 잘못으로 귀결되지만, 이 테스트는 내 잘못이 아니라 어떤 선택지이든 정답이라고 말한다. 관점이 아예 다른 데서 오는 의아함. 부정을 긍정으로 치환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볼 수 있을까. 테스트를 제작한 소라의 선택이 궁금했던 이유다.







무소속으로 지낸 지 얼마나 되셨나요?

작년 5월 말에 퇴사했으니까 아직 1년이 안 됐어요. 이전에는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사, NGO 대학생 교육단체 간사, 어린이 성교육 소셜벤처 교육 R&D 분야에서 일했어요. 2013년부터 꾸준히 어린이부터 청소년,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과 만났죠. 교육 프로그램, 콘텐츠 기획 및 제작, 교구재 개발 및 디자인, 직접 강의까지 교육 전반을 아우르고, 대학생들 대상으로 코칭, 상담하는 일도 병행했어요.


무소속으로 지내보니 어떠세요?

사실 이렇게 프리랜서, 무소속으로 살 생각으로 퇴사한 게 아니었어요. 한동안 제 일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큰 고민이었는데, 그저 제가 해보고 싶은 걸 도전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게 좀 더 컸거든요. 물론 내 일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게 프리랜서라는 명칭에 포함되는 건지, 그렇다고 1인 기업가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해서 제 일을 어떤 표현으로 담을지 오래 찾았어요. 또 기혼 여성으로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하는 부분도 오래 고민했어요. 아무리 사회나 환경이 달라졌다 해도 여전히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 자연스레 경력 보유가 되고 있으니까요. 임신, 출산을 고려하기에 내 일을 자생적으로 만들 힘과 방법들을 터득해둔다면 이후에도 나만의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1년간은 일을 만드는 실험을 하겠다 결심했죠.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인지, 그럴 만한 일이 있는지, 시장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 등 상상으로 그칠 일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들 그런 과정을 거치나 봐요. 프리랜서나 긱 워커가 점차 많아지는 시대이면서도 여전히 혼자서 어떤 분야에 특화된 활동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참 어려운 일 같거든요. 어쩌면 상상력이 더 많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해요. 노션 포트폴리오애 ‘1인 교육 기획가&기업가’라고 소개하셨더라고요.

스스로 기획자라고 불러야 할지 기획가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했어요. 저는 기획 단계에만 관여하고 빠지는 사람이 아니라, 기획부터 직접 운영, 평가까지 전반을 총괄하니까 기획자로 한정되지 않았거든요. 물론 기획가라는 표현이 제가 하는 일을 제대로 담아낸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적어도 그 역할에만 초점을 맞춘 느낌은 덜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제가 하려는 일이 구체적인 용어에 담기지 않을 때 안성맞춤인 언어를 찾아가는 시간을 오래 보냈고요. 동시에 꼭 내 일을 명확하게 정리해야 하나? 하는 의문도 자주 떠올렸어요. 내가 이걸 하고 있다고 소개할 때나 내 일의 명확한 용어가 필요하지, 일할 때는 그런 용어가 필요하지 않잖아요. 그런데도 용어에 집착하는 게, 결국 내 일을 설명하고 싶고 사람들에게 노출되도록 내 일을 계속 만들어 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정석대로 가고 싶은 마음인가 싶었는데, 명료하게 설명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받아들이게 됐죠.

초반에는 설명할 언어를 찾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일의 형태를 찾는 데 집중해요. 예를 들어 제가 ‘다정한 연구소’를 한다고 소개하면 다들 오프라인 공간 또는 사업자 등록 여부, 비영리 단체 등록 여부를 물어요. 이미 존재하는 형태에 기반해 정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거죠. 저는 그런 형태가 아니라 온라인 게더타운에 만들었다고 설명하면서 사업자등록은 하고, 비영리 단체 등록은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여요. 나중에 오프라인 공간을 만드는 것도 꿈이고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이렇게 설명하는 게 괜찮으면서, 한편으로 ‘어디 소속이기를 원하는구나’ 하는 지점을 알아채곤 해요. 무소속 상태라면 물 흐르듯 겪는 일인가 싶고요.


1년이 채 안 된 기간에 내가 어떤 일을 만들어 갈지 고민하시면서 어느 정도는 정리된 것 같네요. 소위 정상성 루트에 부합하지 않아서 갈망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기에 그런 건지는 결국 본인이 답을 내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질문한다는 건 자신이 어떻게,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 때 가능한 거니까요.

기본적으로 그런 질문을 많이 던지는 편이에요. 정리를 좋아하는 성향이라 어질러져 있는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해요. 집만 해도 그런데, 일은 오죽하겠어요. 정리라는 건 있어야 할 자리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어떤 규칙과 질서를 갖게 마련이고, 일이 제자리에 안 들어가지니까 저한테는 스트레스였던 듯해요. 자리에 맞춰 넣을 언어를 찾으면서 언젠가는 이걸 꼭 찾아야 할까? 하는 의문을 품었고, 이제는 지금껏 찾은 언어로 표현하고 또 다른 언어를 찾으면 나중에 그렇게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에 다다랐어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뜻밖에도 사람들은 저를 개척자 같은 느낌으로 보더라고요. 그렇게 봐준다면 꿈보다 좋은 해몽으로 받아들여 봐야겠다는 태도로 변모해가는 중이에요(웃음).







주변에서 개척자로 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소라 님의 활동을 보면서 편견이 깨졌거든요. 한창 게더타운에 관심이 커질 때였고, 거점으로 삼아 일하는 분이 개발자가 아니라는 게 신기했어요. 대중화되기에 앞서 해나가시는 데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 게 아닐까 싶어요.

아마 게더타운이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 크게 영향을 준 듯해요. 4차 산업이니 메타버스니 시끄럽던 작년 여름에 게더타운을 우연히 알았어요. 비대면 상황에서 교육 일을 하던 때라 줌으로만 진행하는 일이 피곤하니까 다른 게 없는지 알아보던 차였죠. 게더타운에서 활동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 구경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면 나도 한번 해볼까? 하고 가볍게 해본 거예요. 때마침 퇴사하고 혼자 일을 꾸려야 하는데 그때는 일이라고 부를 만한 뚜렷한 게 없는 상태에다 출근지도 없으니까 게더타운에 사무실을 만들었어요. 그렇게라도 출근 도장을 찍으면 생활에 패턴이 생기고 출근하는 느낌이 들잖아요. 온라인이라 해도 한 공간을 꾸미다 보니 재미가 생기기도 했고요. 그때부터 사무실에 출근하면 캡처하고 그날 하는 일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업로드하는 루틴이 자리 잡았어요. 이거로 일을 잘해나가겠다는 기대보다는 이거라도 해야 내가 뭐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요. 일종의 공개 선언으로 강제성을 부여한 셈이죠.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는 게더타운 강의를 하든지 그거로 콘텐츠를 만들라고들 조언했어요.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그 공간을 개인적으로 쓰는 게 좋은 거지, 기술적으로 접근하기에는 아쉬운 지점이 있었어요. 한 번 하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의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이것저것 벌려둔 걸 하기에도 여력이 없다고 여겼거든요. 모르죠, 어느 날 갑자기 강의 오픈한다고 할지(웃음).


2021년을 보내면서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나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고요.

코로나19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퇴사하는 과정에서 느낀 부분이 있었어요. 내가 최선을 다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 결국 나라는 존재는 지워지고 회사 이름으로만 남는 데서 상실감을 크게 느꼈어요. 당연히 회사의 것으로 귀속되는 거로 생각했으면서도, 막상 그 순간을 마주하니 허탈하더라고요. 특히나 교육 콘텐츠는 내용과 더불어 누가 교육하는지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내 이름과 얼굴을 걸고 무언가를 만들면 이런 상실감이 덜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콘텐츠를 통해 네임밸류가 생기기도 하니까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교육을 계속하려면 소속되기보다 혼자 하는 게 낫겠다고 여겼어요.



교육 콘텐츠는 본인이 교안을 짜고 하나하나 관여할 수밖에 없잖아요. 콘텐츠를 생산한 뒤 퇴사하더라도 그 파급력은 계속되니까.

맞아요, 교재부터 영상 전반을 제가 다 만들어서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있었고, 분명히 이 과정에 제가 관여했고, 심지어 중요한 역할인데, 일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그 부분을 온당하게 인정받지 못했어요.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면서 그 부분을 분리하기 힘들다면 혼자가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단 한 번의 만남과 교육으로만 관계가 이어진다는 것도 아쉬웠어요. 교육 이후 어린이의 변화나 성장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일면 당연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좀 더 지속적인 교육을 지향하다 보니 아쉬움이 짙었어요.


일할 때 타협이 안 되는 본인만의 원칙이 그런 데서도 드러난다 싶어요.

도덕성과 윤리 의식이 높은 편이라 아무리 많은 돈을 번대도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고통스럽게 하거나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마다해요. 일하는 내가 만족하는 것 못지않게, 타인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일을 대하려 해요. 그리고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묻는 편이에요.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스스로 이 정도가 최선이라는 마음이 들어야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죠.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일하고 싶으니까 기준이 꽤 높아요. 어떤 일에든 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진심을 담으려 하죠. 다만 진심을 어느 정도 담아야 하는지 그 적정선을 찾는 게 어려워서 문제예요.


괜히 다정한 연구소장님이 아니네요(웃음). ‘다정한 연구소’ 이야기도 해볼까요.

‘다정한 연구소’는 이걸 해야겠다 생각하고 시작하진 않았어요. 작년에 시도한 도전들 가운데 버터나이프크루 3기(여성가족부 청년성평등문화추진단) 활동도 있었어요. 유독 여성들은 몸과 마음을 대할 때 혐오하거나 자기 검열의 시선으로 보기 십상이잖아요. 저는 마음 돌봄이 중요한 사람이라, 버터나이프크루를 통해 여성 마음 돌봄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애초 계획대로라면 어린이 성교육 분야로 일하려 했는데 막상 프로젝트를 마친 뒤엔 여성을 위한 성교육과 마음 돌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의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공감하고 접점을 가질 수 있는 대상이자 영역이니까요. 제 생애주기에 따라 임신과 출산을 한 후에는 양육자 포지션으로, 그 후에는 중년 여성으로 계속 다루고 해갈 수 있는 일이겠다는 판단도 했고요. 제 평생 할 수 있는 일인 거죠! 또 어린이와 여성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다정한 연구소’를 올해 2월 오픈하고 베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운영해가고 있어요. 이 일만큼은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하고 싶어요.







최초의 씨앗은 아동이나 청소년 대상 교육이었다고요. 책이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게 눈에 띄어요.

중학교 2학년 때 『토토의 눈물』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창가의 토토』를 읽고서 큰 감명을 받아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 읽었죠. 작가는 일본 배우이자 국제 구호 활동가예요. 그렇게 제3세계 어린이의 상황을 알게 됐죠. 이제는 빈곤 포르노라는 아쉬운 지점이 보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학교에 너무 가고 싶다고 말하는 어린이를 마주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밥을 먹거나 집에서 자는 등 제게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소원이라니.

그전까지는 제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강원도 원통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나 쭉 살았거든요. 늘 벗어나고 싶었고 사춘기에는 누리는 게 별로 없는, 아주 열악한 곳에서 산다고 여겼어요. 그런 때에 내가 상상도 못 했던 삶을 사는 어린이들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부끄러워졌어요. 그리고 나라도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뭐라도 돕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몇 날 며칠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뭘 보더라도 책에서 봤던 장면이 떠오르고 TV를 틀어도 그런 것만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에게 털어놨죠. 책을 읽었는데 그게 내 마음에 강하게 남았는지 꿈에도 나오고 계속 생각난다고. 그러자 엄마는 그러면 뭘 하고 싶은 거냐고, 네가 뭔가 하고 싶거나 네 마음에 뭔가가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 아니냐고. 천천히 생각해 본 뒤 그 마음을 한번 따라가 보라고 하셨어요.


어머니의 조언이 딱 필요한 말이었네요. 책에 영향받은 마음을 오래도록 품고 진로까지 정하기 쉽지 않잖아요. 든든한 조력자 덕분에 나아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고요.

처음에는 동정심이라 생각했어요. 인류애도 있었겠지만 그 아이들이 행복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고, 그에 일조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으면, 그런 어른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가장 먼저 떠올린 직업은 의사였어요. 주변 본보기로는 의료가 일반적인 접근이었거든요. 그러나 의사가 되기에 저는 이과적인 성향이 없는 사람이고, 생명을 직접 다루는 일이 겁났어요. 그다음으로 떠올린 게 전쟁이나 강렬한 경험을 한 이들을 심리 치료해 주는 일이었어요. 그즈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등장했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상담이나 심리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분야도 다양하더라고요, 언어 치료, 미술 치료, 음악 치료 등. 그래서 대학 전공으로 아동복지와 청소년학을 전공했고, 대학생 때부터 교육 분야로 업의 방향을 잡고 지금까지 왔죠.

비록 국제 구호활동가와 같이 제3세계 어린이를 직접 만나는 일은 아니어도, 캄보디아 교육 봉사, 인도 교육 봉사로 어느 정도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이후에는 특정 나라나 지역이 아닌, 제가 있는 곳에서 만나는 모든 어린이를 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어린이들이 행복하려면 양육자도 같이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언젠가는 저만의 학교를 세우고 저만의 교육 콘텐츠로 어린이와 양육자를 함께 교육하는 꿈을 꿔요.


어린이라는 존재가 아주 각별하네요. 왤까요.

왜 어린이에 꽂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누구에게나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좋은 대상이 있을 거예요. 저는 그게 어린이였고 누군가는 반려동물이겠죠. 화면이든 실제로든 아이가 보이면 일단 눈길이 가고 ‘쟤네가 행복해지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계속 자리 잡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어린이를 도울 수 있는 일, 그중에서도 어린이 성교육으로 나아온 것 같아요. 단순한 유아 교육이나 치료적인 부분에 머물던 시야가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확장되었고요. 성교육은 어른을 교육해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라고 판단했거든요. 어른보다 어린이가 변화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좋은 감수성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하면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그 사회와 삶이 달라지겠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그림책을 펴낸 것도 그런 맥락이에요. 양육자들이 성교육할 때 제일 먼저 그림책을 찾으니까요.


교육은 한 회로 끝나지 않잖아요. 그럼 그림책도 시리즈처럼 발간할 계획이 있었던 거예요?

아예 출판사를 차려서 발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아이디어가 정말 많았거든요! 처음 펴낸 그림책은 제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 중에 제일 무난한 주제예요. 원래는 몸에 관한 성 지식이나 성교육도 담고 싶었거든요. 현재 성교육 그림책 시장을 보면 제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있어요. 한 10년 전 자료를 개정하다 보니 현재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폭력의 가해자를 교육하기보다 여전히 피해 예방에만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많아요. 모든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메시지로 접근하지 않고 여전히 여자 어린이가 피해자이고 피해를 겪은 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데만 급급하다는 인상이었어요.

더군다나 몸에 관해서 알려주는 것도 속옷 입은 모습이 일반적이에요. 하지만 아이들은 속옷을 벗기고 싶어 하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화장실을 따라 들어간다거나 서로 벗고 보자는 사고가 일어나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아쉽죠, 각자의 몸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고 다 얘기하면서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고 알려준다면 달라지는 지점이 생길 텐데. 펴낸 그림책은 독립출판으로 직접 그리고 제작하다 보니 장기적으로는 더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기획이 거창해질수록, 꿈이 커질수록 무거워져서 다음 책은 손도 못 대고 있네요.



멋진 꿈이라 덩달아 기대하게 돼요! 보석 테스트도 인상적이었어요.

교육하다 보면 면대면으로 만나는 데 한계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콘텐츠를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줄곧 해왔죠. 성교육의 경우 학교나 기관에서는 집단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집단 교육은 일회성인데다 주제나 내용이 제한되는 부분도 많고, 피해 예방에만 초점 맞추기에 아쉬움이 컸어요. 가령 디지털 성범죄 관련해서는 실생활이나 궁금한 부분에 초점을 맞춘 눈높이 교육보다는, 하지 말라는 말만 계속하는 식이죠. 학교에서는 교사가 먼저 내용을 살펴보고 진행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고요. 그런 데서 제가 궁극적으로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다는 게 매번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사실 어린이, 청소년이 온라인에서 접하는 성 관련 지식은 잘못되고 이상한 것들이 무척 많아요. 특히 네이버 지식인만 살펴봐도 피임과 관련한 질문들과 잘못된 답변들이 수두룩해요. 내가 만날 수 있는 이들이 한정될 수밖에 없으니, 보편적으로 공감하고 쉽게 공유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혼자서 하기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네이버 지식인에 댓글 다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하루 이틀이지, 더 파급력 있는 게 필요했어요. 왠지 유튜브는 겁이 나더라고요. 제 얼굴을 달고 이야기한다는 부담감에 더해, 성 관련 이야기는 자극적인 콘텐츠로 소비되거나 희화화되거나 둘 중 하나니까요. 그렇게 혼자 고민하던 중에 디지털 사회혁신(Digital Social Innovation. 정부 중심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시민참여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활동) 양성과정 내에서 팀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저희 팀은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어요. 비록 양성과정은 작년 말에 끝나는 과정이었지만, 기왕 테스트를 만들었으니 배포까지는 마치고 싶었죠. 팀원마다 각자 사정이 있어서 다 떠나고, 남은 한 분과 계속 붙든 끝에 올해 초에 정식 배포했답니다!


그 과정도 놀랍네요.

다들 여성분들이었고 디지털 성범죄 이슈에 공감했어요. 저희 능력 밖인 콘텐츠는 최대한 배제하고, 조심하라고 다그치거나 너무 무겁지 않은 콘텐츠를 고민했죠. ‘이건 문제고, 이게 정답이야. 위험하니까 하지 마’라고 말하는 건 너무 어른의 관점이잖아요. 사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고요. 더군다나 청소년기에 친구들이 다 하는데 나만 하지 않으면 소외되거나 바보 된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에 어울리는 것도 무시 못 해요. 그렇게 청소년의 일상에 맞춘 교육으로 방향을 정했어요. 어떤 상황이 위험한지,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런 상황이 벌어질 때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테스트의 결과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피해자나 가해자의 성별을 구분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결과가 정답처럼 비치지 않도록 여러 유형의 보석 중 하나로 도출하되, 누구나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가장 중요한 건 대응 방법이니까 신고 방법을 눈에 잘 띄고 쉽게 파악하도록 안내하는 것도 신경 썼고요. 성폭력 피해 상담가분들이나 활동가분들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테스트가 적절한지, 표현은 어떻게 다듬으면 좋은지 꼼꼼히 살폈죠. 마침 MBTI 테스트가 유행하니까 성격 테스트처럼 꾸리면 자발적으로 공유하면서 흥미를 끌 수 있겠더라고요.


이렇게 얘기를 들어보니 그간의 노고가 절절히 느껴져요. 개인적으로 테스트를 보면서 감동하기는 처음이었어요.

아쉬운 부분이라면 학교 밖 청소년의 관점을 더 담지 못한 지점인데, 세세한 표현, 관점을 정말 신경 써서 다듬었어요. 그 과정이 힘들면서도 재밌더라고요. 이 프로젝트를 함께한 팀원들과 합이 잘 맞아서 진행이 수월했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다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선을 다했어요. 저희가 배포할 수 있는 온,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동원했고, 청소년들이 볼법한 인스타툰 작가님들께도 부탁드려서 배포했어요. 현재 10월 기준, 약 1만 3천 명 정도가 참여했어요! 조금씩 계속 퍼져가고 있어서 감사해요.







다양한 일을 병행하다 보면 몸이 축나기 쉬워요.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버겁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많은 편이에요. 일하면서 에너지를 뺏기기보다 얻어서 일을 다양하게 벌이는 감이 있어요. 하나에만 몰두하면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커지다 못해, 그 욕심에 제가 집어삼켜지거든요. 원래 하려던 의도와 방향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고요. 그래서 제 나름의 거리 두기 방법이랄까, 다시 몰입할 수 있도록 다른 장치들을 자꾸 두는 거예요.

예를 들어 ‘다정한 연구소’만 하면 자꾸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왜 사람들이 안 올까? 왜 이거밖에 안 볼까? 조회수가 왜 이럴까? 내가 별로인가? 하는 생각들로 자꾸 빠지니까 자신이 없어지고 뭔가를 더 해야 하는지 염려하는 식으로 흐르곤 해요. 그러면 내가 왜 이걸 하려고 했는지도 희미해지더라고요. 그럴 때 다른 프로젝트를 번갈아 하면 시선을 돌릴 수 있으니까 다시 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한 번에 하나만 하는 게 과몰입돼서 스트레스받고 더 힘든 편이라 다른 일과 적절히 분배하면 숨통이 트이고 마음도 가벼워져서 재미난 마음을 이어갈 수 있죠. 이거 해볼까? 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자꾸 하는 이유예요. 다행히 완벽주의 성향이라 흐지부지되는 걸 못 봐서 어떤 일이든 대충하지 않아요.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니 이 방식이 저한테는 더 맞아요. 그러면서 제가 일하는 방식이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아요.


정리처럼 휴식도 중요한 키워드죠. 본인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고 나를 잘 신경 쓴다고요.

일주일 중에 최소 반나절에서 하루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시간으로 둬요. 꼭 어느 요일로 못 박지 않더라도 나를 위해 쉬는 시간을 고정적으로 확보하는 거예요. 마치 직장인에게 당연한 주말처럼요. 또 제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하며, 스스로의 패턴을 인지하고 있어요. 유독 의욕이 없어지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특히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할 때는 지금 힘들다는 신호예요. 고향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지금 내가 어떤 점이 힘든지 살펴보고, 처리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해결해요. 혼자 쉴 수 있는 공간이나 시간을 확보하고 핸드폰은 끄거나 뒤집어서 안 보이는 데 두는 일도요.

제가 뭘 하고 있는지 파악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예민해지는 듯해요. 일이나 일상이 내 손에서 벗어났다는 감각이 들면 그간 뭘 했는지 적어보면서 점검해요. 주기적으로 다이어리를 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편이라, 마음이 힘들 때는 쓰면서 쏟아내는 과정을 통해 원래의 나에 도달하기도 해요. 편안한 관계들을 찾는 것도 중요하고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긴장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막 하고 올 수 있는 관계요. 저를 지지해 주는 이들을 통해 다시 힘을 얻고 쉬는 거죠. 혼자 일하면 집에만 있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 수다 떨고 싶은 욕구가 해소되지 않잖아요. 일에 대한 고민도 그렇고 시시콜콜한 얘기도 하고 싶은데 안 되니까 블로그를 많이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동시에 뺏기기 때문에 점점 자연과 가까이하게 돼요. 소라 님도 그러신다고 해서 동질감 느꼈어요.

자연으로부터 얻는 에너지가 싱그럽고 훨씬 더 좋아요. 사람을 만나면 기본적으로 긴장할 수밖에 없잖아요. 우선 저 말이 무슨 뜻인지 파악해야 하고, 내 표정이 어떤지도 통제해야 하고, 분위기나 상황들을 종합해서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제가 해온 일이 주로 사람을 상대하는 거라 사람을 좋아하는데도 질리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교육할 때나 상담할 때는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드물고, 힘든 얘기들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아서 때때로 감정 쓰레기통이 된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그 이야기와 감정에 공감하고 조언해야 하니까 피로도가 높죠. 그걸 하지 않는 순간이 절실했기에 혼자만의 시간을 더 확보했던 것 같아요.

특히나 자연, 그중에서도 바다를 무척 좋아해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정화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 시간만큼은 사람들에게 들어온 말이나 감정들로부터 귀가 씻기는 느낌이었어요. 저를 돌보는 과정이랄까. 코로나19 이전에는 분기마다 최소 1박, 못해도 당일치기로 혼자 여행을 다녔어요. 쉴 목적이라 바다를 보고 밥 먹고 오는 거예요. 강릉을 유독 자주 찾았는데, 퇴사하고부터는 그런 시간이 줄어도 사람을 덜 만나니까 회복이 수월해졌어요(웃음).



나를 지키기 위해 거리 두는 방법을 찾은 거네요.

자연에서 받는 위로 중 하나는, 늘 거기 있다는 안정감이에요. 바다도 늘 그곳에 있고, 산도 늘 그곳에 있죠. 계절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하면서도 묵묵해요. 그런 데서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면도 있어요. 때가 되면 해야 하는 일들을 묵묵히 한다, 다른 존재가 되려 하지 않는다 같은. 장미는 개나리가 되려고 하지 않는데, 사람은 자꾸 다른 내가 되고 싶어 해요. 거기서 고통이 시작된다고 봐요. 산책하면서 꽃이나 자연을 유심히 보고 제게 닿는 메시지를 사진 찍으면서 포착해두는 편이에요.


본인을 향해서 깊게 파고들면서 외부로도 열려 있는 분 같아요. 균형감을 잘 유지하신달까.

제가 성숙이라고 여기고 추구한 방향이 늘 그런 모습이었던 듯해요. 처음 스스로 관찰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불안했거든요. 20대 초반에는 기복이 있는 감정과 관계에 심하게 영향받았고, 그런 제 모습이 싫었어요. 성격의 문제라고 치부했죠. 너무 예민한가? 소심한가? 이렇게 타인을 의식하는 게 자존감 낮은 게 아닌가? 이런 식으로 해석하니까 나를 부정하고 미워하고 혐오하는 순간이 잦았어요. 아마 저뿐 아니라 많은 여성이 실제로 그러는 것 같은데, 그게 크게 다가오니까 그런 나를 바꾸고 싶었어요. 내가 좀 단단했으면 좋겠다, 안 흔들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때로는 둔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에서 내 감정이 어떤지, 뭐에 반응하는지, 나는 왜 이 관계에서 이렇게 긴장하는지 파악하기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고 온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곰곰이 따져보니 그 친구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너무 의식한 거예요. 나도 모르게 이 친구가 나를 평가하고 있다 여기고, 멀어지려는 낌새가 보일라치면 더 잘해줘서 나를 좋게 봐주길 애쓰면서요. 만나면 평소보다 오버하게 되니까 돌아와서 그렇게 피곤한 거예요. 이후로 관계에서 어떤 패턴을 가졌는지 추적하면서 나다움을 계속 찾아갔어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찾다 보니까 저에 대한 데이터들이 쌓였어요. 그 뒤로는 나와 가까워졌다는 감각이 생겼고, ‘다정한 연구소’에서 강조하는 부분도 이런 거예요. 감정 추적도 그렇고, 몸이 느끼는 감각들에 주목하자고. 만약 어깨가 굳고 어딘가 아픈 만남이라면 말을 많이 한 탓도 있지만 과하게 의식할 때 힘이 들어가는 경우예요. 그걸 알아채면 아픈 부분을 풀어주거나 긴장했다고 이해하고 넘길 수 있어요.


그래서 20대보다 30대가 참 좋아요. 안정감이 느껴지고 불안감을 그나마 좀 감당할 수 있게 됐달까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면도 있죠. 20대 때는 체력이 받쳐주니까 나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게 안 돼서요(웃음).

예전에는 그런 의미의 ‘타협’을 안 좋은 의미라고 여겼어요. 왜 저렇게 나약하지? 더 밀고 나가야지! 싶었거든요. 지금은 그 생각을 오히려 위험하다고 느끼면서 유연하다고 보죠. 불구덩이 안에 들어있기보다 한 발 떨어져서 지켜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한 번 더 고민해보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20대 때 만났더라면 몰랐을 지점, 통하지 않았을 면들이 30대에는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의 제가 좋아요.





광산에서 보석을 채굴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며 조금씩 깊고 어두운 곳을 파고 들어가는 일. 산소가 희박하고 분진 때문에 온몸이 더러워지다 못해 건강에 해로운 일. 심지어 캐낸 광물 가운데 보석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


왜인지 소라와 대화하면서 광부의 모습을 떠올렸다. 광부는 광산이라는 공간에서 의미 있는 직업이고, 보석을 발견할 때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는다. 희소가치 때문에 귀한 보석이 때때로 본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오지만, 본인만큼은 그 일을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그 시선이나 대우보다는 본인이 어떤 마음으로 작업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어렵게 발견한 보석에게 그는 속삭인다. 너는 보석이고 고귀한 존재야. 아직 그 가치가 빛을 발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그 빛은 분명 유일무이해. 그의 광산은 아직 찾지 못한 곳이 아닌 바로 나 자신 깊은 곳이다. 나로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이라는 광산을 조심스럽게, 동시에 다정하게 들어가는 그의 얼굴이 밝다.




소라 님을 더 알고 싶다면


https://www.instagram.com/ssora_is


다정한 연구소

https://www.instagram.com/dajeonghan_lab/


보석테스트







인터뷰, 촬영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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