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질문의 보따리

외계인과 영웅, 유전자와 문명, 그리고 계속되는 생각들

by Quaerens

이 글을 읽을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 미리 경고한다. 첫 번째는 이 글은 아직 프로젝트 헤일메리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만 보고 적는 글이라는 것이다. 나무위키에 상상 이상으로 자세하게 정리된 소설과 영화가 다른 점 은 모두 읽어보았지만, 그래도 미리 경고한다. 소설을 본 사람을 답답해 미치게 만들 수도 있는 이야기가 다량 들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자마자 적어두었던 수많은 질문들이 나무위키의 정리된 내용을 보고 나서 대부분 해결되었다.) 하드 SF의 과학적인 내용을 모두 영화에 때려넣다 보면 영화가 5시간이라도 모자랐을 것이니, 과학적인 의문이 여럿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그래서 든 생각이,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하지만, 무제한의 자본이 투입되어서 '하루 종일 보는 영화' 같은 것이 나왔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오전 타임 9시부터 12시까지 1부, 점심시간, 1시부터 3시까지는 식곤증이 있으므로 재미있는 내용 위주의 2부, 잠시 쉬는시간 뒤 6시까지 3부... 보통 감독들이 영화를 너무 길게 만들어서 나중에 내용을 잘라내는 경우가 많은데,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원래는 3시간 30분이 넘었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아하면 마냥 영화 제작 측면에서 부담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감독과 배우는 오히려 열심히 만들고 연기한 컷들이 잘리지 않아 고마울지도.


두 번째는, 이 글은 영화를 막 보고 나와 온갖 생각이 휘몰아치는 머릿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쓴, 두서없는 생각들을 글로서 저장하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에 쓰는 글이기 때문에, 두서없음이 고스란히 글에도 드러날 수 있으므로 감안을 해 주길 바란다. 머릿속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하려다 보면 저편에서 날라다니는 생각들을 놓치게 되므로 일단 좌라락 써놓고 봐야 한다. 물론 후가공을 하긴 하겠지만, 어찌 보면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글이기보다 나를 위해 쓰는 글에 가까우므로 과도한 수정을 거치진 않을 것이므로, 부디 용서를 빈다. 혹시라도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관련된 글을 쓰려고 하는 학생들에겐 여러 주제를 툭툭 던지므로 꽤나 쓸모있는 글이 되진 않을까 생각한다.


이 영화가 내게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외계 생명체의 과학적 기묘함 때문만이 아니라, 생명의 목적과 개인의 선택, 영웅의 탄생 방식, 그리고 협력이 가능해지는 조건을 한꺼번에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하드 SF처럼 보이지만, 내가 본 것은 결국 과학 자체보다도 과학이 만들어낸 결핍 속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된 두 존재의 이야기였다.


이 글은 이 내용에 대한, 그리고 추가적인 나의 상상들을 담은 보따리이다.




1. 그레이스와 로키는 어떻게 이렇게 잘 통할 수 있었는가?


인간과 외계인이 접촉하는 것을 그린 작품은 정말이지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신선했던 이유는 둘이 종족 전체의 명운을 건 상황에서, 서로가 모두 모행성에서 멀리 떨어진 채로,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만났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둘의 우정이 감동적이었다는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왜 이 우정이 가능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SF 명예의 전당 제 1권에 나온 소설 중 투기장 (Arena) 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상황은 좀 다르긴 하지만, 꽤나 흥미로운 내용이므로 간략하게 줄거리를 설명해 보겠다. 인류와 외계 문명의 문명 수준이 너무나 비슷해 싸우게 된다면 둘 다 모두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고 두 문명 모두 파멸하고 말 상황에서, 인류는 모든 전력을 태양계 외곽에 배치하고 외계 문명도 전 함대를 동원해 공격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는 그 순간, 전지전능한 존재가 개입한다. 진화의 궁극에 이르러 모든 이지가 하나로 결합된 초월체가 개입하여 인류 장군 중 한 명과 외계 생물 하나를 무작위로 선별하여 투기장 (Arena) 에 불러들이고, 둘 모두에게 공평한 조건을 주어준 뒤 싸움에서 승리하는 문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여러 난관을 헤쳐 인간이 승리하고, 그 순간 인간 장군은 다시 우주선으로 돌아오고 타노스의 핑거스냅에 당한 것처럼 외계문명은 한순간에 소멸한다.


이 단편의 플롯도 굉장히 흥미로운 요소였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이 소설을 떠올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외계인의 생김새다. 구형에 촉수같은 팔을 이용하는 외형은 비슷하진 않지만 로키와 어느 정도 결이 같다. 두 번째는 소통 방식의 차이점이다. 이 단편에서 인간 장군은 투기장에서 처음으로 외계 생명과 접촉하고 외계 생명의 사고가 담긴 텔레파시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의 끝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공포에서 오는 두려움이 아닌 이질감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이다. 사고 방식 자체가 인간과 너무나도 달라 느껴지는 두려움인 것이다. (물론, 언어가 다른데 어떻게 어떻게 외계 생명의 감정까지 느낄 수 있냐는 의문이 들지만, '텔레파시' 라고 하니 어느 정도 납득은 할 수 있었다).


만일 로키와의 첫 접촉에서 이런 상황이 일어났으면 어땠을까? 영화 에일리언이 생각나면서, 장르가 가볍고 귀여운 외계인 친구와의 협동이 아닌 스릴러물로 갔을 것 같다. 서로의 이질적인 사고를 이해하면서 협력하는, 마치 배트맨과 조커가 협력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여기서 생각나는 질문이 있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한 문명을 이룩한 생명들은 모두 비슷한 정서, 비슷한 공감 능력, 비슷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을까? 어떻게 보면 지구상의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도 외계인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환경에서 진화했을 뿐 완전히 다른 종이니까. 그런 동물들과 인간이 교감하는 것을 보면 뭔가 비슷한 결이 존재한다. 특히 애완동물로 길러진 종들은 더욱 그렇다. 외계인도 비슷할까? 아니면 태초부터 사고 과정에 깔린 감정의 전제가 달라 '투기장' 에서처럼 접촉 후 미지의 공포를 느끼게 될까?


사실 이런 맥락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비교하기 좋은 훨씬 대중적인 작품은 '삼체' 일 것이다. 삼체에선 인간에게 '거짓말' 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외계종족이 인간과의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인류를 없애는 방향을 택하게 된다. 그리고 애초에 이런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삼체 문명의 발전 정도가 인류를 말 그대로 벌레로 볼 정도로 아득히 앞서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문명 발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면 로키와 그레이스는 애초에 협력 관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관계가 성립할 수 있었떤 이유는 문명 발전 정도가 비슷했으며, 서로 앞서 있는 부분이 달라 서로가 서로를 보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론적인 부분에서 앞서 있고, 에리디언들은 제작 부분에서 인류를 앞서있었기 때문에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기가 막힌 우연으로 이들은 협력 관계가 되었고, 이래야만 했으므로 소설가는 이렇게 플롯을 짠 것이었다.


여기서 들었던 질문은 왜 에리디언들은 상대선 이론과 방사선과 관련된 이론이 부족했는가였다. 물론 당연하게도 소설에 모두 설명되어 있겠지만, 스스로 추론해본 결과, 에리디언들은 음파로 소통하기 때문에 가시광선 및 '빛' 과 관련된 모든 실험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빛의 기본적 속성을 활용한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의 사고실험과, 뉴턴의 프리즘 실험에서 광전효과, 그리고 이로부터 이어지는 빛과 관련한 모든 실험을 구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론해 보았었다.


에리디언처럼 금속으로 이루어진 생명들이라면 사고 과정이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했다. 그들의 사고는, 뇌는, 그리고 생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수많은 의문점들이 남았지만, 소설에서 이를 상세하게 다룬다는 것을 보고 나의 질문을 그만 일축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선 그냥 일단 소설을 읽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다만 영화를 보며 소설에서 생략되어 정말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었다. 로키가, 그레이스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물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외계 생명' 이라는 것이다. 이 내용을 넣는 것이 서사를 더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을 텐데 정말 아쉬웠다.


여하튼, 로키와 그레이스는 자신의 종족의 명운이 각각에게 모두 걸린 상황에서, 서로 부족하고 서로 도와줄 부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 협력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했던 요소는 인간과 에리디언들의 정서가 비슷했다는 것이다. 이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유머 코드가 통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수렴발전으로 둘의 정서가 비슷하게 된 것인가? 아까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일정 수준 이상 문명을 이룩한 생명들의 정서는 모두 비슷할까?


여기서 더 드는 질문이 있었다.


인간 개인의 의지가 생명의 존재 의미 - 유전자의 존재 의미를 초월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어떻게 보면 현 인류의 상황이 아닐까. 발전한 문명은 꼭 이런 상황을 겪는 것일까, 아니면 이는 인류만의 특이한 현상일까. 인간의 개인 의지가 종족 보존의 유전적 방향성을 초월해야만 문명이 발전하는 것일까. 종족 보존 자체가 유전자의 존재 의미이며 이를 위해서 진화해 왔는데, 현재를 본다면 결혼하지 않는 사람,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상황이 빈번하다. 전쟁으로 서로를 죽이고 서로 파멸로 이른다. 잘 사는 국가는 출산률이 낮다. (여기서 또 드는 질문은, 저출산이 정말 저출산이냐는 것이다. 오히려 적어도 종은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이 의도한 숫자보다 인류가 너무 번식을 많이 한 것 아닐까. 저출산이라는 수치의 기준은 그저 현재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척도에서 나온 기준이지, 아예 시각을 다르게 보면 저출산이 정말 '저' 출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살고 있기에 더 흥미롭게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결국 종을 보존하고 아이를 낳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정이 가져다주는 행복 때문인가? 순간의 욕망 떄문인가? 이 행복조차 유전자가 각인한 감정인가? 종족 보존을 위해서?


...수많은 질문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쏟아졌다.


2. 영웅에 대하여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과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요소가 많지만 그레이스 개인의 변화를 놓고 보아도 서사가 매우 풍부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욱 매력적이다. 다양한 등장인물들과의 복잡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적 서사가 아니라 그레이스 개인에 대한 변화여서 머리가 아프지 않았고, 집중하기 편했으며, 세련된 감정적 몰입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영화가 싫다는 것이 아니다. 많은 등장인물도 관계를 유기적으로 만들면 재미있으며, 한 명의 감정에 집중을 해도 서사를 엉터리로 만들면 독자마저 고독해지고 지루해진다.


결론적으로 그레이스는 영웅이 된다. 그러나 처음엔 영웅이 아니었으며, 애초에 스스로도 영웅이 될 생각이 없었다. 그레이스는 소시민이었다. 그렇다고 겁쟁이는 아니었다. 만일 그가 정말 소극적이고 겁이 많았다면 아스트로파지에 대해 연구해 보겠냐는 제안에 선뜻 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죽을 수도 있다는 첫 실험에서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방법이 없는 여행에 선뜻 자원하지는 못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이제 우주로 나갈 적임자는 너밖에 없다고 하면 당황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그레이스도 내심 권유받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소설을 읽지 않아 모르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레이스는 강제적으로 혼수 상태가 되어 우주선에 탑승하게 (실리게) 된다.


이러한 기억이 처음에 바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억지로 끌려왔다는 것이 일찍 기억이 나 버리면 안 그래도 혼자만 남아 혼란스러운데, 여기에 분노와 억울함까지 들어와 사람이 완전히 미쳐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억이 돌아오는 것을 회상이라는 영화적 장치로 활용하여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병행되며 독자의 의문을 해소하는 방식은 영화를 훨씬 흥미롭게 만들어 주었다. 과거와 현재 혹은 여러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소설이나 영화는 정말 많지만, 잃어버렸던 기억이 돌아오며 회상으로 들어가는 작품은 많이 보지 못했다. 의문을 남기고 해소하는 과정이 기억을 되찾으며 회상하는 과정에 녹아든 것은 영화에 신선함을 더해주는 아주 좋은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요즘엔 단순한 병행적 구조보다 병행적 구조 자체에 서사를 더하는 sf 영화가 흥행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터스텔라도 단순한 회상이 아닌, 중력으로 인한 시간 왜곡으로 흐름이 달라진 두 세계를 병행적으로 소개해 주니 말이다.


여하튼, 만일 그레이스가 영웅적 인물이 아니라면, 그가 영웅적 행동을 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물론 영화를 모두 보면 이 답은 어렴풋이 감은 잡히겠지만, 이것을 명확히 언어로 정리해보려 하면 참 오묘해진다.) 그레이스는 강제된 상황에서 거의 자포자기의 느낌으로 그저 최선을 다 한 것이었을까?


그레이스는 그저 우울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리가 우울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뭐라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뭐라도 했다. 그러다가 로키를 만났다. 로키는 자신이 꿈에 그리던, 자신의 박대받았던 논문의 산 증인인 물이 필요 없는 생명이었다. 안 그래도 외계인을 만나 흥분되는데 자신의 이론을 증명해주는 생명이라니, 영웅심이고 자시고 과학자의 근원인 호기심이 미칠 정도로 자극되어었을 것이다.


그렇게 로키와 친구가 되고, 친구에서 넘어서 '전우' 가 되고, 전우애로부터 로키를 구하려는 영웅적 행동을 한 것이다. 친구는 호감과 친밀감으로 맺어지지만, 전우는 공동의 위험과 공동의 임무를 통과하면서 생긴다. 우리에게 로키와 그레이스의 관계가 단순한 친구 관계 이상으로 다가온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신을 지구로 돌려 보내주겠다는 제안을 한 로키에게 감동을 하게 되고, 이로서 더욱 끈끈해진 관계는 지구로 돌아가다 다시 로키에게 돌아가게 되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단순히 외계인과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목표를 위해 나아가며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전우가 된다는 포인트 또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더 재미있고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든 것을 희생하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더 영웅적인 것은 로키일지도 모른다) 이는 오히려 전우애에 가깝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전우애 또한 영웅심의 다른 형태이며, 결국 그레이스는 인류에게 영웅적인 행동을 해낸다. 만약 그레이스가 처음부터 영웅적인 주인공이었다면 이렇게 스토리가 입체적이고 흥미롭지 않았을 것이다. 그레이스는 "나는 인류를 위해 죽겠다" 는 고전적 영웅이 아니라, "나는 이 친구를 버릴 수 없다" 는 마음으로 움직였으며, 이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만일 그레이스가 처음부터 영웅적인 주인공이었다면 작품이 납작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는 원래부터 영웅적이었던 다른 두 명의 대원들을 죽여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3.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SF소설가가 되고 싶은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굳이 타우세티까지 가야 하는가? 주인공이 한 마리의 아스트로파지를 실수로 죽였듯 지구에서 아스트로파지를 죽이는 방법을 개발하면 안 되는가? (아마 행성급으로 아스트로파지를 막는 방법을 고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지만, 영화에서 설명되지 않아 의아했다. 영화에 진지하게 반박하려 들면 끝이 없다는 것은 이러한 유형의 질문에 항상 달리는 의견이다. 하지만 영화가 SF이니만큼, 이러한 상상은 고리타분하고 무의미한 반박이 아니라 오히려 SF의 본질에 가까운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아스트로파지도 생물인데, 지구의 생물학 기술로는 아스트로파지를 죽일 수 없었는가? 우주에서 미생물을 배양시켜 아스트로파지를 없애는, 먹어치우는 미생물을 만드는 것은 정말 불가능했는가? 아스트로파지를 연료로 쓸 만큼의 기술력을 그냥 생물학 쪽에서 아스트로파지 대항마를 만드는 데에 할애했으면 안 되는가? 대체 인류의 생물학적 기술력은 얼마나 부족했던 것인가?


결국 그레이스의 생고생은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여기서 문득 내가 배울 점이 생각났다. SF소설가가 되고 싶은 나는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인류는 기술력이 부족해서 타우세티까지 가야 했다. 결국, 인류의 과학 수준이 더 높았다면, 지구에서 각종 유전적 기술로 아스트로파지를 죽이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었다면 이런 희생과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그레이스와 로키의 만남도 없었을 것이며 이런 영화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을 배웠다. 무조건 과학적으로만 접근하면 재미있는 sf 소설은 나오지 않는다.


과학이 부족하면 인간은 고생한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인간이 고생해야 독자는 재미를 느낀다. 기술력이 충분했다면 이 모든 모험과 희생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더 완벽한 세계는 더 좋은 서사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완벽하면 이야기의 틈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내가 배운 것은 "과학적으로 허술해도 된다" 가 아니라, 과학적 정합성과 서사적 필요 사이의 긴장을 감각적으로 조절해야 흥미로운 작품이 탄생한다 는 것이었다. 때로는 과학적 결핍, 기술적 미완성, 어쩔 수 없는 희생이야말로 인물과 관계와 선택을 발생시키는 진짜 원동력이 된다.


나의 과도한 과학적 상상력은 좋은 소설의 서사를 놓치게 만들 수 있음을 배운 것,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이었다.


4. 각종 상상


[에리디언 vs 인간]


영화를 다 보고 난 다음 속편의 내용도 혼자 상상해 보았다. 헬다이버즈 2라는 우주 종족 간 전쟁을 다룬 게임에서는 인류에게 지식을 전수해 준 문명을 인류가 배반하고 전쟁을 벌인다. 이와 비슷하게 에리디언들과 인류가 지적 교류를 시작하고, 인류나 에리디언 측에서 서로를 지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다 결국 몇 개의 사건으로 인해 두 종족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순수 피지컬에선 인류가 압살당한다. 영화에서 보여준 에리디언들의 회복력과 내구도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애초에 금속 생명이므로 당연하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한 문명 간의 전쟁은, 그 문명을 이룬 생명 자체의 강함을 논하는 것을 별 의미가 없다. 무기가 발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기로 들어간다면, 인류가 손쉽게 에리디언들을 말살할 수 있을 것이다. 에리디언들에겐 방사선 내지 원자력과 관련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레이스가 로키에게 상대론에 대해 알려주었고 에리디언 행성에서 선생님이 되었기 때문에 인류가 에리디언들과 전투를 하게 되는 시기가 되면 에리디언들도 원자력을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전쟁이 모두 끝나고 살아남는 쪽은 에리디언이 될 것 같다.


[아르트로파지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아스트로파지에 대한 수많은 의문들이 있었지만 소설을 읽지 않아 조심스럽다. 그러나 내가 혼자 아스트로파지에 대해 상상한 내용들을 소개해 보겠다. 일단, 아스트로파지는 어디에서 생겼을까? 빛을 먹고 번식한다는 것은 지구의 미생물들과 크게 다르진 않다. 하지만 우주 환경에서도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다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에게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진화의 방향성을 설정해 주었는가? 이와 유사한 환경이 아스트로파지가 처음 생겨난 행성에서 우연히 생겨났는가? 그렇다기엔 너무나도 아스트로파지가 살아남는 환경이 극단적이다. 곰벌레가 저온, 고온, 고압, 저압, 진공, 방사능에서 살아남는 것을 보면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닐 것 같기는 하다.


여기서 폰 노이만이 제시한 행성 개척 방법인 '폰 노이만 탐사선' 이 생각나며 제 3자가 아스트로파지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폰 노이만 탐사선이란 단 한 대의 로봇만 보내도 은하계 전체를 개척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이다. 폰 노이만 탐사선은 다음과 같다 : 일단 로봇이 행성에 도착한다. 그리고 광물을 채굴하여 필요한 부품과 에너지를 조달한 뒤, 확보한 자원으로 자신과 똑같은 복제 로봇을 여러 대 만들고, 복제된 로봇들이 기하급수적인 확산 속도로 다른 행성으로 날아가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그레이 구' 가설이 제시되는데, 만약 로봇의 복제가 풀려 모든 물질을 자기 복제에만 사용하게 된다면 은하계 전체가 로봇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가설이다. 그리고 이 가설은 아스트로파지가 별들을 잠식해 나가는 상황과 놀랍게도 똑같다!


그렇다면 아스트로파지는 한 문명이 만들었던 폰 노이만 탐사선에 오류가 발생한 것인가? 아스트로파지를 만든 문명은 이미 아스트로파지에 의해 멸망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어땠을까? 혹은 제 3세력이 먼저 다른 문명들을 제거하기 위해 만든 고도의 바이러스일까? 즉, 타우세티까지 갈 수 있는 수준의 지적 문명을 거르고, 그 미만의 문명들을 모두 제거하기 위해 아스트로파지의 해결책을 일부러 타우세티에 심어두고 은하계 전체에 일종의 시험을 제시한 것일까? 그들의 명확한 목표는 무엇인가? 문명의 발전 수준은? 상상이 끊이질 않았다!


[비슷했던 나의 소설 구상]


사실 2년 전 쯤 바위 내지 광물로 이루어진 외계 생명에 대한 아이디어를 혼자 구상한 적이 있어서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굉장히 친근하게 다가왔었다. 완전히 혼자 구상한 것은 아니고, SF 명예의 전당 1편에 나온 광석 생명에 대한 단편에서 영감을 얻어 구상했었다. 내가 구상했던 광물 생명은 에리디언들처럼 움직이는 광물이 아닌, 그저 거대한 광물 자체가 하나의 생각하는 생명이었다. 개체라는 개념이 없는, 바위 하나, 산 하나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 시스템인 것이다. 아웃풋이 하나도 없는, 인풋도 거의 없는, 자신들 스스로룰 분석하며 궁극의 양자역학적 지식을 갖게 된 종족이다. 인간이 본다면 그저 평범한 돌처럼 보일 것이다. 그저 구조가 조금 이상한 광물처럼 보일 뿐. 이 생명들은 결정 구조와 상전이, 응력 분포 등으로 사고하며 시간 감각이 거의 없다. 이들에게 우주는 곧 자신 내부의 양자적 세계이다. 마치 아웃풋 장치가 하나도 없는 거대한 양자컴퓨터와도 같은 것이다. 인류가 우주를 개척하다 이 광물 생명으로 뒤덮인 행성에 착륙하고, 결정구조가 특이해 이 광물 생명을 채굴하기 시작하는데, 사실 알고 보니 우주의 시스템적 구조를 총괄하고 계산하던 데이터 센터가 이 생명들이었으며, 서서히 우조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인류는 그 원인을 찾으려 고생하고... 같은 소설을 구상해 본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