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를 빗대어 말하자면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영범'이와 같다. 누군가의 아들도 누군가의 남편도 모두 포기할 수 없었던 영범. 나의 아버지는 거기에 누군가의 아버지도 더해졌다.
장남
아버지는 세 남매 중 맏이였으며 장남이었다. 게다가 할아버지도 장남이었다. 아버지는 일평생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때마다 찾아오는 제사, 벌초, 종친회 등 아버지는 장남으로써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쉬는 날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에 찾았고 늘 병원을 모시고 갔다. 자신의 부모의 건강은 챙기면서도 정작 아버지의 건강은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일까. 아버지는 본격적인 인생의 시작이라는 '환갑'을 앞두고 '림프종'이라는 혈액암에 걸렸다.
남편
아버지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이와 같은 남편은 아니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장남 역할에 항상 동원되었다. 그래서 어렸을 땐 엄마를 고생시키는 아버지가 미웠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라는 역할을 등한시한 것도 아니었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용돈을 드리면 아버지는 항상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됐어. 이것도 다 너네 엄마 줘"
텔레비전을 보다가 경치가 좋은 곳이나 맛집이 나오면 꼭 엄마랑 같이 가야지하곤 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면 엄마와 함께 다녀오셨다. 자신은 고소공포증으로 높은 곳을 싫어하지만 엄마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전국의 출렁다리도 찾아다니셨다. 암 투병 중에는 자신 대신 돈을 버는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크셨다. 항암 치료 중에도 일자리를 알아보셨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호흡이 가빠져서 응급실로 가는 와중에도 아버지는 엄마가 걱정할까 '괜찮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
아버지는 아버지로서는 완벽했다. 다정하게 표현을 잘하시지는 않았지만 생일이나 화이트데이와 같은 날이면 작은 카드와 선물을 방에 놓으시곤 했다. 언제나 자식을 위해서 무엇이든 해주려고 하시는 분이었다. 자신은 할인하는 옷이나 신발을 사도 우리에게는 좋은 것만 사주시려고 했다.
행여 우리에게 짐이 될까 싶으셨는지 암 투병 중에 한 번도 도움을 청하신적이 없다. 병원을 모셔다 드린다고 해도 택시를 불러드린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시며 혼자서 다니셨다. 그리고 안부전화를 드리면 항상 ‘걱정하지 마. 아빠는 괜찮아.’라고 하셨다.
2025년 9월 5일
그 누구보다 강한 책임감을 지녔던 나의 아버지는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으셨다.
사랑하는 아빠,
아빠, 한평생 아빠의 인생이 아닌 누군가의 장남, 남편 그리고 우리의 아빠로 살아오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어요. 이제 그 무겁고 버거웠던 짐은 다 내려놓고 하늘에서는 오직 아빠만 생각하시면서 자유롭게 사세요. 아빠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 먹고 싶었던 것 등 모두 하시고 누리시길 바라요. 우리도 엄마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 누구도 걱정하지 마세요. 우릴 하늘에서 지켜달라라는 부탁도 안 할거에요. 아빠는 평생 우릴 지켜왔던 분이니까. 그곳에서는 부디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오직 아빠만 생각하시면서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흐르고 내가 아빠를 만나러 가면, 그때 '나 이렇게 자유롭게 재미나게 살고 있었다'하면서 반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