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에서 계류유산까지-3
의미 없는 사건은 없다
안 겪었으면 더 좋았을 거 같은 이 일련의 사건들도 나에게 슬픔과 우울만 남긴 것은 아니다. 임신출산과 관련된 여러 이슈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였고, 인간관계에 대한 전반적 가치관을 고찰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어정쩡한 난임지원
시험관 1차 시술은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지원금이 거의 맞아 떨어졌다. 기본적으로 지원금을 사용할 때마다 내 돈도 10% 드는 시스템인데, 이 정도는 크게 부담되지 않고 시술을 진행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물론 나는 수정란이 적게 나와 냉동에 드는 돈이 적어서 더 그랬겠지만. 수정란이 많이 나오는것은 축복받은 일이지만, 많은 만큼 냉동비용이 많이 든다.
문제는 2차에서 성공하고 나서부터였다. 이식 전부터 지원금은 동이 났고, 이식부터 임신 유지를 위한 주사비는 오롯히 우리의 부담이었다. 문제는 그 금액이..모두 보험이 안 되는 주사인지라 일주일에 거의 30만원씩 주사비가 나갔다. 보통 임신 10주까지는 죽 맞아야 하는 주사들인지라 그 가격을 토탈로 계산해 봤을 때 약 300만원 정도. 오로지 한 번의 임신 유지를 위해서 두 달간 들인 우리의 돈이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사정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저 금액은 우리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감당 가능했다. 그러나 이건 뭔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사정이 좋지 않은 부부가 우리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금액이 부담되서 임신 유지를 포기할 가능성도 높지는 않겠지만 분명 존재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 아이 가지는데 국가가 그거까지 지원해 줘야 하냐'고 생각하는 분들은 조용히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길. 난임지원 자체가 국가가 출산률의 문제를 더 이상 사적 영역으로 두지 않겠다고 판단했다는 뜻인데, 그럴거면 좀 더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2. 인간관계란 무엇인가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는 나는 친구가 적은 편은 아닌 것 같다. 유산을 겪고-물론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위로를 준 사람이 훨씬 많지만, 괜찮냐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친구들을 보며 참 야속했다. 내가 인간관계를 잘못 맺어왔구나 하는 씁쓸함도 덤으로 느껴야 했다. 나이가 들수록 많은 관계보다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하게 된다고 하던데, 이 사건이 나에게는 그 계기가 되는 것 같다.
3. 남편이 최고다
죽이니 살리니 해도 이럴 때 곁에 있어주고 있을 수 있는 건 남편밖에 없더라. 본인도 힘들텐데 그 마음을 뒤로 하고 나의 마음을 우선하여 살펴준 남편에게 참 고맙다. 남편에게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