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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쿰 May 18. 2020

zoom 화상회의

GD의 한계와 뛰어넘기

요즘 학교에서 부장님과 나 사이의 화두는 단연 GD이다. 40대 후반의 부장과 30대 후반의 기획이 서로 손가락질하며 '어유 GD'라는 말로 서로에게 야유를 보낸다. 물론 장난으로. 3년 연속 부장복이 있어, 이런 편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학교생활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다.

우리끼리 낄낄대며 이러고 있으면 주변 선생님들이 물어본다. 도대체 그 GD가 뭐냐고. '아, G-Dragon은 아니에요'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이 버럭한다. 그걸 몰라서 묻냐고. 그렇게 실실 웃으면서도 우리는 쉽게 가르쳐 주지 않는데, 생각보다 많은 선생님들이 별도의 힌트 없이도 그 정답을 알아낸다. 역시 시대의 화두는 모두에게 통용되는 법. 그렇다. GD는 요즘 너무나도 흔히 쓰이는 그 단어, '꼰대'의 (우리끼리의) 은어이다.


부장님이 나보고 꼰대라고 놀리면 나는 의외로 쿨하게 나의 꼰대성을 인정한다.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30대 후반이 되어있고, 정신을 차려보니 학생들에게 꼰대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여러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불과 몇년 전, 어른들을 꼰대로 여기고 있었던 바로 내가. 여러 가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지만, 오늘 이 글에서 다룰 예는 바로 화상회의 상황이다.


미국의 미네르바스쿨에서는 전 수업이 화상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하버드대 붙은 애들이 하버드 포기하고 가는 대학'이라는 별명이 붙은 학교답게, 세계의 석학들을 모아놓고 수업을 하다 보니 그 화상수업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을 붙여본다. 왜냐하면, 나는 도무지 이 화상회의 상황이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PBL(Project Based Learning) 수업을 제대로 해 보고 싶은 주변학교 선생님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이 있다. 만든지 약 반년 지났는데, 생각보다 매우 활발히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3주에 한번씩 모여서 저녁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자신의 수업을 검토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는데, 이 모임이 꽤나 재미있다. 한 5번 정도? 저녁 메뉴도 먹고싶은 걸로 돌아가며 먹고, 예쁘고 넓은 카페 가서 맛난 디저트 시켜놓고 공부도 하며 눈과 입과 지적 욕구가 충족된 즐거운 모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졌고, 우리 모임은 잠정 중단되나 했으나.....나름 교육에 대한 열의를 가진 선생님들이 모여있다 보니 중단 같은 선택지는 아예 없었던 것이다ㅋㅋ 코로나 19로 인해 급부상한 온라인 수업 도구 중에서 zoom으로 우리의 시선이 몰렸고, 그렇게 우리는 이미 zoom 화상모임을 오늘로서 3번째 가졌다. 그리고 그 모임은 생각보다 정말 활발한 토론과 공부로 점철되고 있다. 정말 코로나 19따위,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보였으나!


문제는 나였다. 모임하기로 한 날짜만 되면 아침부터 체한것 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오늘도 그랬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나는 도무지 그 화상 너머로 대화하는 상황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람들끼리 서로 말하는 타이밍을 재는 것 같은 그 느낌도 싫고, 여러 명의 발언이 중복될 때 상대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 상황도 나를 불안으로 몰고 간다. 아나운서들이 2초인가 3초간 오디오가 비면 방송사고로 여긴다고 하던데, 이 회의에서 내가 딱 그 꼴이다. 오디오가 비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서 내가 아무 말이나 지껄이게 되고, 그런 상황이 나에게는 정말 큰 심적 부담이 된다.


근데 또 사람이 웃기는 게, 그런 상황에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분명 나는 화상회의 내내 뭔가 체한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그 배움의 토의 과정을 즐기고 있는 내 모습도 같이 발견할 수 있다. 같이 모임하는 선생님들은 내가 화상회의에 대해 몸서리칠때마다 '대체 그렇게 잘 이야기 하면서 왜 그러냐'며 의아해 할 정도. 그렇게 회의를 마칠 때면, 꽉 막힌 것 같은 그 기분은 온데간데 없고, 오늘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충족감이 몰려 와서 또 자신 있게 다음 회의 날짜를 잡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 잡은 날짜가 가까워져 오면 나는 또 체한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이토록 디지털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역시 꼰대가 쉽게 변하나'라는 자조적 절망감이 들다가도, 어느새 또 그 화상회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의외로 꼰대가 쉽게 변할지도'라는 희망을 찾게 된다.


시대가 변해가고 있다. 그 변화의 파도 속에서 디지털 화상회의 따위는 내가 넘어야 할 산 중에서는 산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경사 3도 정도의 얕은 오르막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 넘어야지. 싫다고 피하면서 살기에는, 나는 자아실현 욕구가 너무 강한 사람이다. 나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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