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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Jan 07. 2016

어른 놀이: 당신들의 위로가 저주인 이유

40분. 


그때 내게 허락된 식사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식당에 가서 긴 줄을 기다려 밥을 받고 허겁지겁 식사한 뒤 담배 하나에 불을 붙이다가 관리자의 재촉에 생산라인으로 복귀했다. 일하기 전에 내게 말해준 식사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그 말은 자주 지켜지지 못했다.


두 시간 정도 일하면 십 분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네 번이 지나면 하루 일과가 끝나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바빴고 만들어야 할 물량은 많았다. 반강제의 추가근무를 더 해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를 일하고 나면 녹초가 되었다.


살바도르 달리, [시간의 지속](1933년 작)



당시 최저 시급 4천 원. 그렇게 주간 야간 라인을 번갈아 돌며 번 돈은 150만 원 남짓.


삶이 어려워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다. 전화로 보험을 팔다 욕을 먹어도 봤고, 컴퓨터 고쳐주는 일을 하다가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화가 난 손님에게 살해 협박도 받아봤다. 밀폐된 빌라 옥상에서 겨우 기어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비둘기 시체와 배설물을 마대 자루에 담아보기도 했다.


정말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제조업 공장에서 일했던 기억은 아직도 강렬하다. 그곳이 힘들어서만은 아니었다. 힘든 일에 비해서 돈이 적어서도 아니었다. 나는 거기서 오로지 일하고 밥 먹고 자는 것만 할 수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부품처럼 일했다. 통근버스를 오르며 잠깐 휴대폰 게임을 하는 게 다였다. 모든 관계는 정지되었으며 모든 사적인 시간은 다음날 일을 하기 위한 휴식에 쓰였다. 주말에도 특근 때문에 쉴 수 없었다. 딱 그 정도의 시간만 남아있었다. 그게 제일 힘들었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등록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 학기 정도는 대출 없이 뿌듯하게 다닐 수 있었다.


JD, CC BY




조기숙의 “패기”, 김무성의 “좋은 경험” 


예쁘지도 않은 추억을 문득 떠오르게 한 것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 홍보수석까지 지내셨다는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의 말이었다. 얼마 전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무릎 꿇으며 사과해야 했던 바로 그를 두고 한 조기숙 교수의 충고가 내 ‘버튼’을 눌렀다.


“우리 사회 갑질은 새로울 것도 없다만 백화점 알바생 3명이나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하루 일당 못 받을 각오로 당당히 부당함에 맞설 패기도 없는 젊음. 가난할수록 비굴하지 말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


“3D 업종은 사람을 못 구해 난립니다. 독재와 갑질이 기승을 부리는 건 당하는 자의 체념도 한몫합니다. 자신의 자존심은 지켜야지 함부로 무릎을 꿇다니요.”


조기숙의 트윗


조기숙의 트윗 (멘션)



어쩌면 그가 살아온 세상에서 그의 뇌리에 새겨진 ‘알바’쯤은 부족한 용돈을 채워주는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3D 축에도 못 끼는 제조업 공장에서 인생에 손꼽을만한 각오를 하고 나온 나는 그저 통과의례 같은 고생을 버거워하는 ‘나약한 애새끼’로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그가 자식 학원비를 벌 요량으로 야근과 주말 특근을 밥 먹듯이 하고 간신히 6,000만 원 받는 공장 정규직 노동자를 속으로 ‘귀족노조’라고 욕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속상한 나머지 그가 우리네 삶을 모른다고 속으로 단정해버렸다.


물론 나는 그가 무릎 꿇은 알바에게 요구한 당당함이 선의쯤이란 건 안다. 마찬가지로 (알바생의 부당한 처우에 관해 묻자)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고 답한 김무성의 말도 악의라고 생각지 않았다. 모두 다 선의다. 하지만 그건 말하는 사람의 의도일 뿐이다. 그의 말에는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었다.




당신들의 ‘어른 놀이’가 생략한 것들 


그 당당함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느라 보름을 허비하면 그 보름 때문에 석 달 동안 생계에 허덕여야 하는 것. 나의 혹은 우리의 당당함은 사측이나 사회에 아무런 균열을 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바로 당신 어른들에게 배웠다는 것.


이 모든 것을 생략한 채 그는 그저 고매하고 깨어있는 어른 놀이를 했다. 그리고 그 뻔한 어른들의 이야기는 익숙했지만, 여전히 상처였다.


우린 앞날의 삶에 희망이 거세되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자조적으로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꿈이라곤 그저 목전의 생존이 해결되는 정도다. 지긋지긋한 박봉과 계약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지. 이번 달 전기요금을 못 내는 건 아닐지.


우리는 여기까지만 생각한다. 집을 꿈꿔본 적도, 차를 꿈꿔본 적도, 가정을 꿈꿔본 적도 없다. 그 당연한 게 불과 몇십 년만에 판타지가 되었다. 당신의 일상적이었던 미래는 우리에게 판타지로 변했다.  알바생이 본 우리 사회의 맨얼굴: 알바 월급 기부 사건 알바생 인터뷰




당신들이 만든, 평범한 꿈이 판타지인 세계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말했다.


“나는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 [미생] 중 장그래의 독백




드라마 [미생] 중에서 (출처: tvN)



이 말은 일종의 모르핀이었다. 아무것도 탓할 수 없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우리는 그저 자신을 탓해야 했다. 하지만 ‘당신들의 세상’에서 장그래의 독백은 유효한 ‘자백’이 된다.


‘그래 너희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게 혼나고 우리 스스로 잘못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대화는 끝난다. 나는 솔직히 어떤 말을 더 이어 붙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굳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과 몇십 년 만에 달라진 세계를 탓할 수밖에 없다.


비굴하지 말라고 했다. 가난하기 때문에 남길 것은 자존심밖에 없으니까 더더욱 비굴해지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사실 가난한 사람은 비굴함을 대가로 돈을 번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때려치우고 싶다고 볼멘소리를 하면서 직장을 꾸역꾸역 다니는 친구는 틈틈이 채용 사이트를 가지만 이직을 할 곳이 없다고 한다.


자기 잘못이 아닌 것들로 고객에게 갖은 욕을 다 먹는 것이 지겨워 정말 그만하고 싶다고 울면서 말하는 친구는 그 알바를 그만두게 되면 당장 다음 달부터 카드사의 독촉전화를 받아야 한다. 나는 그래서 할 말이 없다.

‘참아야지. 어떻게 하겠냐.’




우리 시대의 멘토가 위안이 아닌 저주인 이유 


혜민 스님이나 김난도 같은 멘토들이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고 저주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하나다.


그들은 정작 자기보다 강한 것에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이 사회의 많은 문제는 변수가 아닌 상수다. 그저 이 틈바구니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만 변수이길 강요한다. 그들이 많은 문제를 그저 어쩔 수 없는 상수라고 우기는 이유는 공부가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수양이 부족해서인가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조기숙. 그리고 이 사회의 멘토들이 세상을 바꿔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내 기대는 소박하다. 그냥. 적어도 상처받지 않게끔, 당신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말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래서 나도 그냥 부탁인 것이다. 당신의 선의는 누군가에게 비수처럼 꽂힌다. 그러니까 아무 말도 말아 달라는 부탁하는 거다. 그렇게 잘나고 고매한 어른으로 남고 싶다면 말이다.



이 글은 2015년 1월 8일에 슬로우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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