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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Mar 06. 2017

나는 종종 5,500원짜리 커피를 먹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틈만 나면 커피로 시비다. 커피를 달고 사는 나로서는 속상하다.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지만 나는 동네 앞 1,500원짜리 커피를 먹는다. 나도 맛있는 커피가 뭔지 안다. 합정동 근처 어느 카페에서는 커피를 5,500원에 판다. 정말 맛있다. 이따금 그걸 먹으러 간다고 이야기하면 무슨 커피를 그 돈 주고 먹느냐고 하겠지만, 그냥 맛있어서 간다. 대신 자주 못 간다. 나도 그게 커피 값 치고는 비싼 걸 안다.      


합정 근처 5Extracts, 여기 맛있다.


1,500원짜리 커피에 그윽한 향 따위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아침마다 커피를 먹는 이유는. 그래, 내 생활패턴이 그렇게 잡혔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맛대가리도 없는 커피를 그저 카페인 때문에 먹는다. 그걸 먹어야 비로소 몸이 오늘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이따금 내가 먹는 커피 값이 한 달로 치면 십몇만 원이 된다는 이야길 듣는다. 그 돈을 1년간 모으면 한달치 월세가 넘는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 돈 아무리 아껴봐야 고작 한두달치 월세에도 못 미친다. 이거 아끼면 뭘 할 수 있을까? 한 20년 동안 모으면 차 한 대 뽑을 수 있겠다.     


물론 내 커피에 불만을 품은 어른들은 내가 먹는 1,500원짜리 커피를 기준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스타벅스 커피는 4,000원을 넘었고 좀 더 비싼 건 5,000에 육박한다. 휴일 같은 에누리도 없이 깔끔하게 30일을 곱해서 나온 가격은 15만원. 이제 액수가 적당히 크다. 사치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걸 아껴도 크게 윤택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애초에 그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매일같이 사먹을 수 있는 사람도 몇 되지 않는다. 뭐 상관 있겠나. 결론은 정해졌고, 커피 값이야 어쨌든 쟤들이 돈 없다, 힘들다 소리치는 건 그냥 니들이 나약한 탓이기 때문일 텐데.     


내가 대학생 때 커피는 생활필수품 까지는 아니었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어지간하면 밥 때를 피하긴 힘들다. 그걸 피하면 커피라도 먹어야 한다. 넓디넓은 캠퍼스에는 생각보다 약속 잡을 장소가 많이 없었다. 우리는 모두가 공평하게 가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적당한 장소로 커피숍을 택했다. 거기서 과제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서로를 흉보며 수다를 떨 때도 있다. 어쨌든 그곳은 우리가 만만하게 약속을 잡을 수 있는 곳이었다.      


대학교 때, 알바를 달고 살았다. 이전의 여러 글에도 남겼지만 정말 오만가지 알바를 다 했다. 그래도 생활비가 빠듯했다. 한 때는 고시공부를 했었는데 이때는 고정적인 알바를 할 수가 없어서 고시원 총무 알바를 했다. 정말 돈이 없더라. 밥 굶다 운 적도 있다. 배고픔도 배고픔이지만 비참함이 더 컸다.      


제일 슬픈 건 커피 먹으러 나갈 수 없는 거였다. 사소한 약속조차 잡을 수 없었다. 물론 내 이런 사정을 설명하자면 친구들은 그깟 커피 한잔이 대수겠냐고 사준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싫었다. 그냥 그런 상황 자체가 모두 싫었다. 나는 고시원에서 섬처럼 지냈다. 사람들과 단절된 채 둥둥 떠다녔다. 두어평짜리 방, 사람 몸 하나 뉘이기 힘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들 섬처럼 지냈다. 그래 보였다. 나는 저녁밥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내게 커피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커피를 포기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고시원이라는 무인도에 낙오된 나는 스마트폰도 가지고 있었고 인터넷도 할 수 있었으며, 조금 낡은 노트북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인도에서 나를 구출해주지는 않았다. 당장 나를 여기서 꺼내줄 수 있는 건, 고시에 합격을 하든 그걸 때려치고 회사에 취직하든 돈을 버는 일이었다. 고시를 비교적 빨리 포기했는데 그래도 취직이 쉽게 된 건 아니었다. 그 섬에 나는 4년 넘게 갇혀있었던 것 같다.     


유복하다고 한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 한 손에는 커피. 나도 젊은 애들이 밥을 굶는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다. 당신네 젊은 시절에 가난을 이기려 물배를 채웠단 이야기는 많이 보았다. 너희들은 우리 때보다 낫지 않겠느냐. 그런 말이 왜 튀어나오는지는 알겠다. 이해도 간다.     


빈곤의 양태가 비슷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유복한 시대를 자란 우리에게 빈곤은 사실 다른 양태로 온다. 평균값이 다르다고 해서 뒤쳐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뒤쳐짐은, 비록 양태는 다르더라도 비슷한 박탈감을 주며 삶의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끼니를 걸렀던 당신들의 삶이, 빈곤이 곧 관계의 단절로 직면하는 우리보다 나았단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빈곤의 형태가 다르게 찾아온다는 거다. 아 물론, 기사에서 접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세대도 밥 굶은 경우가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더 슬픈 일은, 그 뒤쳐짐을 이겨낼 동력조차 녹록치 않다는 거다. 이건 어른들도 기사에서 봤을 거다. 역사상 최고로 취업이 안 된다고 한다. 호봉제의 세상에서 ‘나이 먹음’을 적당한 호사로 누렸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평생 오르지 않는 비정규직의 임금체계를 각오해야 한다. 적당히 좋은 곳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운 좋고 실력 좋은 친구들은 성과연봉제니 뭐니 하면서, 취업 할 때부터 직장에서의 수명이 마흔 중반을 넘지 못할 거란 걸 각오하고 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우리 대부분은 미래를 설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커피를 사먹는다. 차라리 커피 값을 아껴서 몇 년 안에 이 지긋지긋한 월세 방에서 탈출할 수 있다면야 당장 커피를 끊을 수 있겠다. 내집 마련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이것저것 포기하고 나니까 숨통이 트인다. 물론 이렇게 해서 숨 쉴 여유를 만든 나는 내 세대 청년 중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운좋게 평균 이상의 생활에 안착한 나는 이것저것 꽉 막힌 미래의 과업들을 포기하고 나니 일 년에 한번 여행도 다녀올 수 있다. 그게 우리의 사치의 이유다.     


우리의 가난이 당신들의 경험으로 치환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솔직히 말해서 ‘애 낳으라’는 윽박 그거 하나도 무섭지 않다. 우린 단체로 파업하고 있는 게 맞다. 출산을 빌미로 교섭을 하고 싶으면 요구조건에 맞는 걸 가져와야 할 것 아닌가. 뭐 고스펙 미혼 여성을 어쩌겠다고?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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