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이 바꿔버린 유통의 개념
글로벌 온라인 유통기업 아마존, 그리고 국내 최대 온라인 유통기업 쿠팡.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물류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은 일찌감치 ‘풀필먼트(FBA : Fulfillment By Amazon)’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전까지 전자상거래 업체가 할 일은 커머스 사이트에 입점 업체의 물건을 전시해주고 주문을 받고 이 내역을 입점 업체에 전달하는 것까지 만이었다. 재고를 준비하고, 물건을 배송하는 것은 모두 입점 업체의 업무였다.
그런데 아마존은 여기에 몇 가지 기술을 더해 혁신을 창출해냈다. 아마존은 엄청난 양의 전자상거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데이터를 개인화(personalization)해서 처리할 수 있다. 아마존이 ‘테크’ 기업으로 분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객들의 전자상거래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빅데이터, 클라우드, AI 같은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마존이 기존 전자상거래업체와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이다.
이렇게 하게 되면 크게 두 가지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첫번째로는 효율적인 재고 관리가 가능하다. 유통기업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재고다. 재고가 적으면 주문 고객에게 물건을 팔지 못하고 반대로 재고가 남으면 폐기하거나 장기간 보관해야 한다. 여태까지 이 재고관리는 오로지 입점 업체의 몫이었다. 그들은 계절 데이터를 쌓거나 시장의 움직임을 감으로 주문량을 어림짐작해서 상품의 재고를 조절했다.
그런데 아마존에는 엄청난 거래 데이터가 시시각각 쌓이고 있다. 지역, 성별, 나이 등의 기본적인 바이오 데이터에 더해 계절, 트렌드, 각 지역별 특수상황, 연령별 소비 패턴의 변화 등 다채로운 판매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그간 감에 의존했던 개별 입점 업체에 비해 엄청나게 정확하고 효율적인 수요 예측이 가능해진 것이다.
아마존은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나의 혁신을 더 얹는다. 재고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은 물류에서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유통 업체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비효율 중 하나는 바로 물류다. 여태까지는 유통과 물류가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품을 배송하기 위해서는 물류사의 트랙에 따라야 했다. 셔틀버스처럼 움직이는 간선, 지선 물류 차량에 따라 개별 집하된 물류들이 허브 센터로, 허브에 있던 물류들이 다시 지역별 거점 센터로 옮겨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유통회사들이 직접 물류 센터를 꾸리고, 예측한 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물류를 구축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간 어디로 실려갈 지 모르는 온갖 물건들을 실어 날랐던 간선 물류 라인은 이제 지역 거점센터에서 소비자에게 전달될 물량들 만을 옮긴다. 거점 물류센터는 적절한 재고를 구축하고 소비자의 구매요청을 확인한 후 빠른 시간 내에 배송한다. 아마존프라임과 로켓배송이 빠르게 배송할 수 있었던 이유다.
앞선 시스템이 물류의 속도만 빠르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더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물류의 동선을 최적화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처럼 국토가 비교적 작으면서 도로망이 잘 갖춰진 나라의 경우 물류 최적화의 이점이 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처럼 국토가 광활해서 물류가 커버해야 할 영역이 넓은 경우에는 이 최적화가 더 힘을 발휘한다. 이 점이 바로 아마존이 노렸던 지점이다.
그렇게 아마존은 탈바꿈했다. 온라인 커머스의 업무 영역을 바꾸어 놓았다. 그간 주문을 받고 그 주문 건을 입점 업체에게 전달하던 것에 그치지 않고 주문부터 배송, CS까지 아마존이라는 채널로 일원화했다. 배송 기간이 단축되거나 포장 품질이 올라가는 것은 덤이다. 게다가 아마존은 유통 수익에 더해 물류 수수료까지 챙길 수 있었다.
아마존은 그간 판매 업체들의 골치를 아프게 했던 업무를 대행했다. 수많은 판매 업체들은 더 높은 수수료를 지불하면서도 아마존에 입점했다. 다양한 입점 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곧바로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아마존을 접속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것이 아마존이 만들어낸 혁신이며 동시에 아마존을 단순한 ‘유통’ 기업으로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허들 높은 ‘물류’에 아마존은 왜 뛰어들었을까?
아마존의 매출은 2008년부터 급상승했다. ‘풀필먼트’라는 무기를 장착한 바로 그 해다. 하지만 아마존의 영업이익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물류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작년 하반기에만 약 23억 달러, 우리 돈 2조 7275억원 가량을 배송 시설 확충에 쏟아 부었다. 아마존이 자체 보유한 물류 시설은 현재 항공기 50여대, 거점 배송 센터 110여곳(미국 내 기준), 포장 및 분류 센터 40여곳으로 웬만한 물류사를 압도한다. 아마존의 매출에서 배송이 차지하는 영역도 점차 늘어났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아마존의 배송 비용은 55억달러에서 617억 달러로 1000% 이상 증가했다. 지금은 전체 매출의 25%가 배송에서 발생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물류는 전통적인 ‘규모의 경제’ 이론에 가장 부합하는 산업이다. 인프라를 최대한 넓게 깔아 놓고 최대한 많은 물량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게 되면 유닛당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렇게 인프라를 구축해 놓지 않으면 기존 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아마존은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가며 물류 인프라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을 만들 당시부터 ‘물류’에 집착했다. 그는 이커머스 1세대 창업자이다. 창사 초기, 제프 베조스의 업무는 개인 집무실에서 서류에 서명을 하는 일 보다는 직접 주문 물량을 포장해서 물류사를 통해 물건을 일일이 배송하는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는 유통과 물류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창업 초기부터 체감했다.
일반적인 유통업이었다면 그냥 거기서 멈추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존은 전통의 유통업과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이전까지는 없었던 사업, 이커머스라는 영역을 창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커머스라는 사업은 장소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다. 고객들은 차를 타고 가게로 가는 대신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쇼핑을 한다. 이상적으로만 생각해보자면 공간의 제약이 없는 이커머스는 고객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존은 그 이상을 현실로 구현했다.
아마존의 2020년 2분기 매출은 889억달러, 우리 돈으로 105조원 정도다. 미국 최대 물류회사인 페덱스가 직전 분기에 거둔 매출실적은 173억 달러로 아마존의 1/5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존의 전체 매출 중 25%가 배송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페덱스와 아마존의 물류 매출 규모와 페덱스의 매출 규모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유통으로 규모의 경제를 장착한 아마존에게 유통과 직결된 물류로 다시 규모의 경제를 갖추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존에게 있어 물류는 단순히 볼륨이 큰 사업 영역 하나를 내재화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만약 물류를 외부 업체에 위탁한다면 물류 측면에서 아마존이 개선할 수 있는 분야는 고작해야 포장을 자동화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물류를 직접 통제할 수 있으면 여기에 혁신을 도입할 수 있다.
물류업의 1차 진화, 허브 앤 스포크
과거 물류업의 프로세스는 출발지에서 배송할 물건을 모아 도착지로 바로 보내는 이른바 포인트 투 포인트(그림 A)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포인트 투 포인트 방식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물량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A집하점에서 모은 물량이 B, C 두곳으로 보내진다면 포인트 투 포인트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A 집하 포인트에서 모인 물량을 보낼 곳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출발지와 도착지의 경로가 매우 복잡해지는 것은 물론 출발지와 도착지에서의 분류작업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물류사들은 운송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식을 하나 고안해냈다. 바로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모델이다. 앞서 설명했던 대로 기존의 포인트 투 포인트 방식은 물류량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동선이 복잡해진다. 그런데 그 중간에 허브를 놓으면 물류 동선을 훨씬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다. 출발지에서 집하한 물량을 일단 각 허브로 모은 뒤 거기서 분류작업을 거친 후 다시 각 지점(스포크)으로 뿌리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어떤 집하점에 상품이 모이더라도 1차적으로는 허브로 보내진다. 허브로 보내진 물건은 분류작업을 거친 뒤 다시 각 지역으로 보내진다. 물류의 이동 동선이 명확해지고 간단해지는 것은 물론 물류 분류를 대단위로,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분류 작업에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효율성을 더 높일 수도 있다. 필요하면 허브와 스포크 사이에 중간 허브를 설치해 효율성을 더 증대시킬 수도 있다.
이커머스의 확장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늘어난 물류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물류사들은 ‘허브 앤 스포크’라는 기법을 도입했다. 물류사의 효율성 개선을 통해 배송단가는 점차 줄어들었다. 이는 유통사의 매출 증진에도 도움이 되었다. 배송비가 덜 들면 물건을 주문하는데 고민을 덜 해도 된다. 물류사와 유통사는 이렇게 한동안 공생했다. 그러나 온라인 유통 사업자 간의 치열했던 싸움이 정리되고 시장 점유율이 안정을 찾아가면서 물류사와 유통사의 행복한 협력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유통사가 자체 물류시스템을 가동하면서부터다.
물류업의 2차 진화는 물류사가 아닌 유통사로부터 시작됐다
허브 앤 스포크는 분명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물류사의 기준이었다. 공룡 유통사가 된 아마존은 그런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어차피 고객들이 계속 물건을 구입할텐데 미리 가져다 놓으면 안될까?”
아마존 같은 글로벌 유통사는 엄청난 양의 거래 정보를 갖고 있다. 이 데이터들은 수요 예측을 정밀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이렇다.
매 주말은 식료품 수요가 평일보다 20%가량 늘어난다. 다음 주에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관악구에서는 해마다 육아용품의 수요가 3%씩 성장하고 있다. 신혼부부가 많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로구에서는 여름만 되면 음료 주문량이 떨어진다. 직장인이 여름 휴가를 맞는 시즌으로 기업 고객들이 평소보다 음료를 덜 주문하기 때문이다.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통사는 각 허브에 시기와 지역, 트렌드를 반영해 적절한 재고를 쌓아 놓는다. 그전까지는 유통사가 고객의 주문을 받아 그 주문을 물류사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면 아마존의 풀필먼트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 지역 거점에 물건을 미리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유통사는 고객의 주문을 받자 마자 바로 허브에서 바로 ‘포인트 투 포인트’로 배송할 수 있다. 고객은 당연히 주문한 물건을 더 빨리 받아본다. 아마존이 광활한 미국 영토에서 성공적으로 익일배송, 당일 배송을 선보였던 이유나 한국의 쿠팡이나 마켓컬리가 로켓배송,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모두 이런 풀필먼트 시스템이 있었다.
그러나 풀필먼트는 단순히 빠른 배송을 통해 고객에게 만족을 주는 조치만이 아니다. 유통사는 고객의 주문 이전에 재고를 준비해 놓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또 데이터를 통해 엄청난 양의 물류들이 어느 시점에 얼마만큼 필요한지를 계산해 놓고 움직이는 만큼 가장 효율적인 물류 동선을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마존은 판매 업체로부터 주문부터 포장, 배송, CS까지 일괄적으로 처리해주는 대신 다른 회사보다 더 높은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 과거 물류사가 챙겼던 매출과 이윤이 유통사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구축해 놓은 규모의 경제가 신규 진입자들에게는 거대한 진입장벽이 된다는 것은 덤이다. 바로 이것이 아마존을 비롯한 유통사들이 풀필먼트에 집착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의 아마존’이 되고자 함을 숨기지 않았던 쿠팡도 로켓배송을 시작한 지난 2014년 이래로 천문학적인 액수를 물류에 쏟아 붓고 있다. 한때 경쟁자라 불렸던 위매프나 티몬 같은 회사들은 이제 쿠팡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가 애매할 정도로 차이가 나고 있다. 쿠팡도 물류에 투자할 초기에만 해도 아마존과 같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쿠팡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집을 불려내고 있고, 물류를 통한 스케일 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물류 인프라 낙후된 베트남, 테스트베드로서는 최적의 조건?
세계경제포럼이 매년 발간하는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의 인프라부문 경쟁력 지수는 137개국중 79위로 하위권에 속한다. 도로(92위)와 항만(82위), 항공(103위)같은 물류 인프라 부문은 최하위 수준에 가깝다.
베트남의 GDP는 연간 7%가 넘는 고공성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프라 투자는 그만큼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유는 돈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베트남에는 매년 250억 달러에 달하는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그만큼의 재정 여력이 없는 상태다.
정부의 자금조달 능력이 한계에 부딪힌다면 외국 자본을 끌어와서 인프라구축을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여기에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면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내부 반발 여론 때문에 외자 유치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베트남에서 준비중인 인프라 사업은 이렇게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베트남의 국토는 조금 특이하게 발전했다. 북쪽에는 행정 중심지이자 수도인 하노이가 위치해 있고 남쪽에는 경제와 문화 중심지인 호치민이 위치해 있다. 이 둘은 베트남 내 가장 큰 두 도시이면서 인구도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하루에도 엄청난 사람들과 화물들이 호치민에서 하노이로, 하노이에서 호치민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두 도시의 거리는 무려 1722km에 달한다. 제대로 된 도로망 구축이 필요하지만 재원 마련과 사업자 선정 등의 문제로 공사가 계속 미루어 지고 있는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베트남의 물류 산업, 그리고 물류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커머스의 발전 또한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노이에 있는 사람이 호치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전달받는 데 일주일 가까이 소요되기도 했다.
베트남에는 온라인 커머스 발전을 가로막는 문제는 또 있었다. 바로 ‘현금 결제 문화’다 베트남은 아직도 신용카드를 비롯한 전자결제 시장이 크게 발달해 있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물건을 직접 전달받고 현금을 건네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들에게 카드로 상품 대금을 먼저 결제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일은 익숙치 않은 방식이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조금 특이한 온라인 구매 방식이 자리잡았다. 먼저 물건을 주문하면 배송원이 물건을 건네고 주문자는 물건을 확인한 뒤 배송원에게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엄청난 속도로 경제성장을 하는 나라는 이따금 기술 발전의 중간 단계를 건너 뛰기도 한다. 중국은 현금 중심의 문화에서 신용카드를 건너 뛰고 곧바로 모바일 전자결제 시장으로 넘어갔다. 지금 중국에서는 노점상에서도 모바일 페이를 이용해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어쩌면 신용카드를 건너 뛴 중국의 결제시스템과 같은 사례는 베트남에서의 물류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 베트남의 낙후된 물류 인프라와 특수한 국토 형태, 그리고 COD라는 특수한 결제 문화는 오히려 '풀필먼트'의 좋은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베트남은 남북에 위치한 두 개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구와 산업이 분포돼 있다. 온라인 커머스 수요의 상당 부분도 저 두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물류의 동선은 길지만 노드(Node)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따라서 하노이에 거점을 둔 커머스 업체는 호치민에, 호치민에 거점을 둔 커머스 업체는 하노이에 허브를 두고 사용자의 수요를 예측해 재고를 쌓아둔 뒤 주문과 즉시 발송하면 된다. 게다가 베트남은 수많은 오토바이를 바탕으로 저렴하고 빠르게 ‘라스트 마일’ 운송을 할 수가 있다. 즉, 다른 나라보다 손쉽게 풀필먼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금으로 결제하려는 소비자의 특성 또한 풀필먼트로 충족시킬 수 있다. 베트남 현금결제 문화와 온라인 커머스가 잘 결합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반품 리스크가 컸다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물건의 가격을 이미 치룬 뒤에 물건을 건네받기 때문에 반품을 하려면 파손이나 불량 등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배송비를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물건을 수령하기 전까지 돈을 내지 않기 때문에 단순 변심의 경우에도 물건 값을 지불하지 않고 반품 처리하 경우가 많았다. 베트남의 이커머스 반품률은 한 때 30%나 되었고 이는 이커머스를 하는 사업자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왔다. 단순히 반품률이 높은 것도 문제지만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배송된 물건이 반품처리되는 경우라면 다시 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 긴 여정을 거쳐서 되돌아와야 한다. 이때 들어가는 배송비 또한 어마어마했다.
반품률 자체를 낮추는 것은 서비스와 상품의 품질 문제이겠지만 반품 비용은 물류의 문제다. 이커머스 사가 풀필먼트 시스템을 구축해 근거리에서 ‘포인트 투 포인트’ 배송을 실시하게 되면 배송의 비용은 물론 반품에 대한 비용 또한 줄어든다.
이커머스 사의 또다른 고민은 배송기사가 돈을 받고는 이를 업체에 다시 넘기지 않는 이른바 ‘배송 사고’였다. 그러나 이 또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유통사가 직접 물류를 콘트롤하게 되면 문제를 줄일 수 있다. 보증된 업체와 라스트마일 운송 계약을 맺고 수금을 하거나 혹은 직접 고용 형태로 운영하게 된다면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풀필먼트를 품기 시작한 베트남 유통업체
앞서 설명한 이유들 때문에 베트남은 물류사가 성장하는 대신 대형 이커머스 사가 자체 물류를 꾸리기 시작했다. 베트남 현지에서 대표적인 이커머스 사업자를 꼽으라면 쇼피, 센도, 티키, 라자다 등 4개가 거론된다(The Gioi Di Dong(2위)은 종합 온라인 플랫폼이 아닌 베트남 내 휴대폰 및 전자제품 전문 판매 업체로 제외한다). 이들 대형 이커머스 사들은 아마존과 흡사한 풀필먼트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적어도 물류를 직접 콘트롤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먼저 온라인 서점에서부터 시작해 업계 4위권에 오른 티키는 젊은 층이 주로 애용하는 업체로 꼽힌다. ‘젊은 기업’ 답게 티키는 발빠르게 풀필먼트를 도입하고 있다. 이미 2019년 전국 4군데에 거점 물류센터를 완공함과 동시에 ‘티키 나우’ 서비스를 런칭했다. 물건을 두 시간 내에 보내주는 서비스다. 시스템은 아마존과 비슷한 전형적인 풀필먼트다. 데이터를 통해 재고를 예측하고 물류센터에 재고를 쌓아둔 다음에 주문과 동시에 발송하는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티키의 라스트마일은 ‘오토바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동력이 더 빠르단 점이다.
라자다 또한 자체 배송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다만 라자다는 물류시스템을 직접 꾸리는 대신 여러 물류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통합 물류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배송은 기존 물류 업체가 하되, 운송 과정을 실시간으로 트래킹 하면서 배송을 콘트롤 하는 방식이다. 라자다가 자체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입점업체들은 배송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소비자의 만족도 또한 높아졌다. 이는 주문 취소율이나 반품률의 감소로 이어졌다.
업계 1위 쇼피도 최근 호치민 근처에 3번째 물류 창고를 지었다. 마찬가지로 거점에서 직접 포인트 투 포인트 배송을 하기 위한 작업이다. 쇼피는 이를 통해 배송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또 물류 창고에 관리 시스템을 적용해 구매자의 주문과 동시에 상품 위치를 즉시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물류의 트래킹 기술 또한 ‘풀필먼트’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한국 업체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국내 유통 업체의 베트남 현지에 판매를 돕는 수출 플랫폼 ‘고미 코퍼레이션’이 대표적이다. 베트남처럼 반품률이 높은 나라에서 주문이 들어왔다고 무작정 제품을 보내는 것도 위험하다. 최근 고미 코퍼레이션은 베트남 지사에 물류 허브를 두고 제품을 선입고해 판매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업체들의 재고 리스크 관리를 줄여주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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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낙후된 물류 인프라와 특수한 국토 형태는 베트남 유통업의 풀필먼트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베트남은 아직 이커머스가 대중화되지 않은 나라다. 아직도 전체 상거래의 상당수가 전통 시장과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젊은 층에서의 움직임은 다르다. 모바일과 전자거래에 익숙한 세대들에게서는 이커머스가 익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베트남 유통업체의 배송 혁신은 물류사가 아닌 유통사가 주도하고 있다. 유통업체들에게 배송은 서비스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이는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한국 업체들에게도 중요한 포인트다. 어쩌면 베트남 유통업의 풀필먼트 장착은 한국의 쿠팡처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무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배송과 결제 모두를 아우르는 필수 요소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