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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Apr 27. 2017

나는 그 사과가 여전히 아쉽다

물론 어쨌든 사과는 했다. 비록 '송구'란 말을 쓰긴 했어도,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놨어도, 그 사과에 여전히 혐오가 담겨있더라도, 그게 표계산의 착오에 의해서 다시 설계되었을 거란 의심을 함에도.


군형법 92조의 6은 엄밀히 말하면 동성애가 아니라 섹스의 한 형태를 콕찝어 처벌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본 조항의 위헌심판에서 이를 '동성 간의 성관계'로 인식하고 설명한바 있다. 즉 이 법은 동성간의 섹스를 타겟으로 만든 법이다.  


물론 영내에서는 이성간의 섹스도 규제한다. 나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나 여기엔 찬반의 이견이 있을수 있다. '섹스로 인해 전투력이 손실된다'는 의견은 구닥다리지만 그 이견이 전혀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성간의 섹스 '형사처벌'이 아닌 '징계'의 대상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어떤 행위를 동성 간의 섹스로 규정하며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게 첫번째 문제이며 그 법률을 통해선 '항문성교'를 제외하곤 아무것도(장소의 제한, 객체의 제한 등) 규정하지 않았다는 게 두번째문제다. 동법에 따르면 어떤 여성이 영외에서 항문섹스를 해도 처벌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 법을 적용하려는 군사법당국은 그런데 관심이 없을 거다. 오로지 '남성 동성간의 섹스'에만 관심이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얼마 전 한 군인은 동조항 때문에 표적수사를 받고 감옥에 간 상태다. 동조에 의해 적발되는 것도 문제인데 동조를 적용하기 위해 함정을 파놓고 수사를 했다. 관계당국은 차별이 없다곤 이야기하나, 돌아가는 꼴을 보면 군형법 92조의 6은 명백하게 '게이'를 색출하기 위한 조항이다.


누군가는 내 아들이 동성애자에게 추행을 당하면 어쩔 거냐고 이야기한다. 그거 그 조항 없이도 처벌 가능하다. 강간과 강제추행은 범죄다. 그러면 상사가 추행한 걸 어떻게 함부로 고소하겠냐고 이야기한다. 맞다 그거 문제다. 그런 방식의 추행은 '군 내'에서 '동성 간'에만 나타나지도 않고 군 밖에서 '남성이 여성을 향해서'도 버젓이 벌어진다. 바꿔 말하면 그건 '동성 간 강간'의 문제가 아니라 '강간'의 문제다. 심지어 군대에서는 '동성을 향한 강간 내지 추행'조차도 이성애자에 의해서도 자주 일어난다. 괴롭힘의 한 형태로. 우리는 그런 악마적 행위들과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누구든 피해를 당하면 고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동성애와 싸울 게 아니라.


나는 문재인이 '군 영내 섹스는 전투력 손실'이라고 말했다면 그게 참 구리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그 말을 대통령후보가 했다고 해서 크게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문재인은 '섹스'를 동성애로 치환했다. 나는 영내에서 동성 간의 섹스보다 이성 간의 섹스가 더 빈번할 거라고 예상하고 문재인이 진짜 영내 섹스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이성 간의 섹스도 규제한다고 해야 했다. 하지만 문재인은 그런 구별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문재인은 '조금 더 완화된 형태로'혐오했다.


어쨌든 사과는 했다. 그게 다라면 참 좋겠다. 하지만 문재인은 표적수사로 잡혀간 군인 때문에 시끄러워진지 며칠이 지났지만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나는 그래서 조금 안좋은 상상이 떠오른다. 성소수자가 성소수자란 이유만으로 그릇된 법에 의해 하나둘씩 끌려가고 잡혀갈 때, 어떤 국민은 국민이 아니라며 침묵하고 무시하고 있을 어떤 나쁜 대통령의 모습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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