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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May 17. 2017

잠재적 독자들과 주제파악중인 기자들

죄수번호 503의 세상도, 지금도 여전히 이상하다


회사에선 소모적인 감정싸움이 늘 반복된다. 상사는 이해되지 않는 업무지시를 쏟아낸다. 그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 하고 더 나은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대화하면 좋으련만, 그게 되는 곳은 잘 없다. 이따금 일을 위한 것일지, 자기감정을 위한 것일지 모를 화풀이도 쏟아낸다. 고개를 반쯤 숙이고 한껏 죄송하단 표정을 지으며 확실히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턴이 쉽게 끝난다. 그렇게 서로의 위치를 판단하고 ‘주제파악’이라는 과정이 끝나야 비로소 자리로 돌아간다.     

그게 회사생활이란다. 역시 돈을 버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며, 때론 몰래 욕도 하고 때론 술도 마시며 상처를 덮는다. 지난한 과정이 흐른 후 내가 그 상사가 될 때 쯤, 내 상사보단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보통은 대화를 선택하기 보다는, 목소리 톤을 더 높이지 않거나 욕을 섞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다. 말이나 태도의 형식이 달라졌지만 위치는 그대로다. 나는 분명 착한 사람인데 저들은 여전히 불만이다. 가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전 방식이 더 낫다며, 잘해주는 건 역시 만만하게 보일 뿐이라고 하소연 한다.     

겹겹이 놓인 계급의 틈바구니에 지친 이들이 스트레스를 풀어대기 위해, 몸 기댈 곳을 찾는다. 어떤 이는 잘 꾸려놓은 가부장의 지위를 이용해 집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제 가족을 부하직원처럼 대하며 스트레스를 풀어댄다. 가장의 지위는 원래 고달픈 거라며, 애써 스스로를 설득한다.      

어떤 이들은 돈을 쓸 곳을 찾아 헤맨다. 값을 지불한 대가로 종업원을 부린다. 돈을 버는 건 원래 고달픈 거다. 우리 사장이 나에게 그러듯, 내 상사가 나에게 그러듯 네가 월급을 받는 대가는 혹독한 거다. 그게 세상의 룰이라고 믿으며 종업원을 다그친다. 오늘도 한껏 스트레스를 받은 종업원이 어디로 발걸음을 돌릴지는 알 길이 없다.     

며칠 째 난리다. 어떤 이들은 언론이 비열하고 치사하다며 연신 화를 낸다. 콘텐츠를 써내는 당사자들은 그게 억울하다며 하소연이다. 언론종사자들도 직업윤리란 게 있다. 그걸 지키지 못하면 질책을 받아야 한다. 면죄부는 대통령에게도 기자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요 며칠 새의 양상이 그 직업윤리와 관련되는 건지는 의문이 든다.      

늬앙스의 문제, 호칭의 문제, 기자 개인의 사상의 문제가 도마에 오른다. 굵직한 오보 같은 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주관적 해석이 덧붙여져야 겨우 문제로 읽힐 수 있는 문제들을 두고 이상한 모양새의 찬반이 형성되고 있다.      

언제든 조건만 맞으면 아량을 베풀고 돈을 지불해 구독해줄 의사가 있는 잠재적 독자들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이에게 ‘돈을 버는 고통’을 알려주겠다며 다그치고 있다. 그 때문에 누군가는 사과와 반성을 하며 열심히 ‘주제파악’을 하고 있다. 그들의 사과가 시민을 향한 것인지 소비자를 향한 것인지도 알 길이 없다.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죄수번호 503의 세상에서도,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된 지금에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죄수번호 503의 세상에서는 한 권력자가 세상을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보았다면,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 된 지금에서는 상처받은 우리 모두가 그 상처 때문에 쏟아내는 비명들이 얼마나 서로를 해롭게 하는지 보고 있다.    
 

세상은 혼자의 힘으로 바꿀 수도 없으며, 빠르게 바뀌지도 않는다. 내가 역사의 진보에 어느 쯤에 서있는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서사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방대한 역사는 고작 글 몇 줄로 기술되고 끝나기도 한다. 그렇게 어렵고 아득한 것이기에 개인에게 진보를 재촉하는 것도 불가하고 그가 변화의 반대편에서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 하더라도 책임을 묻긴 힘들다.     

언제 타깃이 될지 모를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기자들은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자기검열을 택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숙제이지만, 어쩌면 오래된 숙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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