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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Jul 14. 2017

하루에 두 번 선이와 투닥거린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며 자라왔고 생각했는데 요샌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하루에 두번 선이와 투닥거린다. 선이는 요새 아프다. 외이염을 앓고 있는데 귓 속에 문제가 있는 병이라고 한다. 그걸 내가 안 건 선이 귓밖으로 진물이 튀어나왔을 때였다. 다급하게 병원을 데리고 갔는데 의사선생님은 '어린애인데 좀 많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날 나는 말도 못하는 고양이한테 하루 종일 미안하다고 말했다.



두번을 그냥 연고치료만 했다. 밤마다 서툰 방식으로 선이 귓속에 연고를 집어넣어야했다. 선이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아직 어린 아이라서 힘도 약하다. 탄탄이였다면 내 몸에 몇 개의 생채기를 냈을텐데 선이는 꽉 붙잡힌 내 품 안에서 아등바등거리기만 한다. 세번째 방문이 되어서야 선생님은 약을 건네주셨다.


약 먹기 싫은건 냥이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의사선생님은'신기한 거 하나 알려줄까요? 고양이는 입안으로 들어간 걸 뱉지 못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이는 먹일때마다 뱉어냈다. 대단한 놈.


어쨌든 아침 저녁으로 억지로 약을 먹였더니 생각보다 빠른 호전세를 보였다. 이제 선이 귀는 많이 깨끗해졌다. 물론 아플때나 아프지 않을때나 여전히 엄청 뛰어다닌다. 간식을 당분간 끊으라고 해서 덩달아 간식을 못먹는 탄탄이에게도 미안할 뿐이다.


집에 설치한 시시티비는 애들이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녹화해서 보여준다. 탄탄이는 제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선이는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한 시간에도 몇번씩 움직이고 뛰어다닌다. 이따금 탄탄이가 내려오면 바로 괴롭히러 간다. 선이는 귀찮아도 그냥 꾸역꾸역 참아내다 결국 다시 올라간다. 그러다 지치면 선이는 제 자리에서 발라당 누워 잔다.


엿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하다. 혼자 미소를 짓는다. 서둘러 집에 들어가서는 두 냥이들한테 외친다. '고양이들아 나왔다' 탄탄이는 퉁명스럽게 쳐다보다 내가 짐을 풀고 씻고 침대에 누우면 그제서야 내 곁으로 온다. 선이는 내 곁으로 잘 오지 않는다. 대신 내가 잘때 내 등에 기대서 쌔근쌔근 잔다. 탄탄이는 불만 끄면 내 몸속으로 파고든다. 털있는 짐승 둘과 동거하는 건 꽤나 마음에 큰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이 나를 사랑했겠지만 나는 애정결핍투성이에다가 제 멋대로 오해하며 사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며 자라왔고 생각했다. 요새는 그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누굴 좋아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거 그거 연습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는데 요새는 연습이 좀 되었나보다. 어떤 친구들과 오버워치를 하다가 내가 냥이들한테 "우구구 밥주까?"라고 하면 역겨운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한다. 나에게서 그렇게 친절하고 느끼한 목소리를 들은 적 없을테니. 하지만 그렇게 목소리가 튀어 나온다. 나는 우리집 두 냥이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평생 혼자 살 거라고, 다짐보다는 체념에 가깝게 이야기했다. 요새는 안 그럴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존재에 대한 책임을, 존재를 위한 의무를 하루하루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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