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꽃신을 신은 원숭이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어느 날 원숭이에게 오소리가 찾아와 꽃신 하나를 선물한다. 그 전까지 원숭이는 꽃신을 신어본 적도 없었고 그 필요성 또한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짜로 준다니 덥석 받았다.
꽃신을 처음 신은 원숭이는 그렇게 편할 수 없다. 촘촘히 맺혔던 굳은살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신이 다 해어질 때 쯤 오소리는 다시 나타난다. 좀 더 예쁘고 편안한 꽃신을 만들었으며 더 이상 공짜가 아니라고 한다. 원숭이는 더럽고 치사해서 더 이상 꽃신을 신지 않고 다시 이전처럼 맨발로 다니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미 굳은살이 사라진 발은 더 이상 맨 바닥을 견딜 수 없다. 흙길에 발을 내딛는 고통을 깨달은 원숭이는 이제 돈을 내고서라도 꽃신을 신고 싶다.
이 이야기는 아동문학가 정휘창 선생의 유명한 작품 <원숭이 꽃신>의 내용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뜯어볼 필요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과연 원숭이를 비난할 수 있을까? 아니면 교활한 수작으로 ‘원숭이를 꽃신에 중독되게 만든 오소리’를 비난해야 할까?
최근 카카오뱅크가 인기몰이다. 영업 5일 만에 100만 계좌를, 13일 만에 200만 계좌를 돌파했다. 남들도 다 해봤다던 그 ‘마통’ 하나 개설하려면 몇십 분 동안 휴대폰을 두드려야 하고, 사소한 문제로 고객센터에 연결하려면 해도 엄청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까지 분노보다는 기대를 더 보내고 있다.
카카오뱅크가 연착륙하고 있는 비결은 여러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오프라인 영업장 없이 온라인 플랫폼만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까닭에 기존 금융사에 비해 비용을 크게 절감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높은 수신금리와 낮은 여신금리를 제공한다. 온라인 기반이라 각종 업무를 스마트폰 만으로 쉽게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다른 어떤 은행보다도 우월하게, 심지어 같은 인터넷 뱅크인 케이뱅크보다도 이용하기 편리하게 서비스가 디자인되었다는 점이 바로 카카오뱅크의 저력이다.
실제 카카오뱅크 앱을 뜯어보면 이용자가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여럿 보인다. 메인화면은 통장 잔고와 대출현황이 알아보기 쉽게 나열된다. 상품도 예/적금 3가지, 대출 3가지 총 여섯 개가 전부다. 케이뱅크가 10여 개가 넘는 상품을 기준 없이 섞어 상품을 판매하는 것과도 대조된다. 케이뱅크는 양반이다. 시중은행은 상품 종류가 셀 수도 없이 많다.
카카오뱅크에는 단 3초 만에 지문인식으로 로그인이 되는 반면 시중 은행은 로그인 시 등장하는 팝업 메뉴를 닫은 뒤 지문인식 로그인 버튼을 클릭한 후 지문인식을 위한 별도의 앱을 로드 하는 보안과정을 거친 뒤에야 로그인이 가능하다. 카카오뱅크가 앱을 터치한 후 한 번도 클릭하지 않고 로그인할 수 있다면 시중 은행은 적어도 3~4회 정도는 터치를 해야 로그인을 할 수 있다. 로그인을 한 후 뜨는 화면들도 생각보다 큰 차이가 난다. 시중 은행은 조회 메뉴만 열 가지가 넘는다. 로그인을 하면 직관적으로 할 일을 끝낼 수 있는 카카오뱅크와는 다르게 시중 은행은 기능은 너무 많지만(TMI-Too Much Information) 막상 들어가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게 된다. 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하단 탭의 경우도 카카오뱅크는 네 개로 심플하게 구성했지만 기존 은행은 스와이프를 해야 할 정도로 하단 탭에 들어간 메뉴가 많다.
사람들이 몰리는 카카오뱅크에 위기를 느낀 시중 은행은 부랴부랴 서비스를 개선해서 내놓는다. 하지만 이제 막 편한 꽃신에 적응한 이용자들은 이야기한다. 대체 왜 우리는 여태까지 맨발로 걸었던 거냐고.
이제 앞서의 동화를 다시 한 번 해석할 차례다. 한번 꽃신을 신은 원숭이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과거보다 획기적으로 개선된 서비스에 대해, 사용자는 적당한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이용할 준비가 되어있다. 물론 오소리는 돈을 주고 꽃신을 팔았지만 카카오뱅크는 공짜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카카오뱅크라는 나비효과는 금융업 전반에 미치고 있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수차례에 걸쳐 “인터넷전문은행이 금융시장 내 건전한 경쟁을 촉진하고 금융산업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카카오뱅크의 돌풍을 지켜보며 “이제 시중 은행은 다 끝이 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카카오뱅크가 과연 태풍이 될지, 아니면 그저 나비효과를 일으킨 한 마리의 나비로 남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카카오뱅크 흥행의 무게중심이 편리한 모바일 서비스에 있는 만큼 기존 금융권이 카카오에 대응할만한 편리한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그만큼 카카오뱅크의 차별점도 사라지게 된다.
실제로 한 관계자는 “카카오뱅크의 열풍으로 기존 금융권 내 실무자가 결정권자를 설득할 명분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의 과보호 아래 서비스 품질 향상에 인색했던 기존 금융권들에게 드디어 변화의 계기가 생긴 것이다. 카카오뱅크에는 분명 IT회사로서의 카카오의 노하우가 많이 녹아들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카오뱅크가 유일무이할 서비스도 아니다.
게다가 카카오가 태풍 그 자체가 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대출과 수신금액의 비율이 거의 1:1에 이른다. BIS기준 자기자본비율 하락의 우려로 한동안 대출을 중단한 케이뱅크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한 증자도 쉽지 않다. 은산분리 규정 때문에 카카오는 카카오뱅크 지분의 10% 이상 보유할 수 없다. 증자를 비롯한 의사결정 대부분을 대주주인 한국투자금융지주(58%)에 의존해야 한다. 정부 여당은 관련법 개정을 논의 중이지만 인터넷뱅크에만 은산분리규정을 예외 적용할 수 없다는 반대논리도 만만치 않아, 법안 통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600조에 이르는 주택담보대출시장에 카카오뱅크가 쉽게 뛰어들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카카오뱅크는 전면 비대면화를 외쳤지만 주택담보대출에는 등기의 과정이 필수적인 만큼, 현행 주택담보대출은 최소 한 번의 대면이 필요하다. 관련 규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카카오뱅크의 오프라인 점포를 구축해야 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기존 은행 한 군데에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여수신액 규모로 유의미한 시장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다만, 카뱅 측은 “100% 비대면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할 시스템”을 갔췄고, “연내 출시”한다고 밝힌 상태. 참조: 머니투데이).
카카오뱅크에는 다른 어떤 금융권, 심지어는 케이뱅크도 갖지 못하는 아주 커다란 차별점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국민이 이용하는 카카오톡은 오직 카카오뱅크만 가질 수 있는 무기이자 강력한 영업망이다. 카카오가 지향하는 사업방향도 바로 이 카카오톡을 이용한 생활 플랫폼 구축이다. 카카오가 택시 서비스와 헤어샵 서비스를 내놓은 것도 앞서와 같은 이유다.
카카오는 카카오뱅크 론칭 이전인 2014년에 비대면 주식거래 플랫폼인 카카오스탁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 서비스는 2017년 6월 현재 월 이용자가 31만 명에 이르고 누적 거래액은 9개월 만에 20조를 넘어섰다. 카카오 측은 아직 확정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방카슈랑스 시장에도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가 모바일 비대면 금융 플랫폼을 완성한다면 우리는 일일이 앱을 열고 주식 매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카카오톡을 통해 ‘삼성전자 주식 전량 매도’라고 명령하는 것만으로 주문을 마칠 수 있다. 챗봇을 불러와 쉽게 보험상품을 문의하고 가입할 수도 있다.
카카오가 기존 은행권을 위협할만한 ‘새로운 은행’이 될 순 없더라도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 금융플랫폼이 될 수는 있다. 금융업계의 비대면 채널 경쟁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이 때에 카카오뱅크는 이미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방향이 더 ‘카카오’ 스러운 방향일수도 있다.
카카오뱅크가 무성한 소문과는 다르게 금융권에 큰 균열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에는 일단 동의한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신발이 익숙해진 원숭이에게 오소리는 반드시 다시 찾아와 자전거를 보여줄 것이고 원숭이는 금세 자전거에 익숙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