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는 아직 제가 과거에 파이어족이었음을 암시하는 문장들을 그다지 구가하지 않고 있지만 저는 분명히 2011년 8월에 첫 회사에 인턴쉽을 통해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그 시점부터 40살 즈음에는 돈을 많이 모아서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겠다는 꿈을 꿔왔습니다.
그새 더 높은 연봉, 더 나은 워라밸, 더 높은 고용 안정성을 목표로 몇 번의 이직을 감행했습니다.
철새같은 이직 인생의 그 시작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지 만 4년만에 경험한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한 희망퇴직이었습니다.
물론 이때 두둑히 받은 1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위로금 덕분에 지금의 자산을 일구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사업이 아닌 피고용인으로써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도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요.
그 과정에서 법적으로 정년이 보장된다는 공무원 아내와 결혼을 했고 당시에는 상당히 급진적인 경제관념, 직업관을 가졌던, 저는 이걸 파이어족과 일반인의 충돌이라고 표현하는데 아무튼 보통의 생각을 가진 아내와 살림을 합치고 경제적인 부분의 가치관에서 티격태격을 하면서 대략 40대 초중반까지는 조기은퇴를 시켜주겠다, 라는 약속을 통해 여전히 타이트한 저축률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올해 한국나이로 40세가 되었는데 몇 년전에 글로벌 표준에 맞게 나이를 산출하는 방식이 만 나이로 바뀌었음에도 한국나이에 집중하는 이유는 "40세"라는 의미가 늙어간다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기점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한국 나이 39세였던 2025년에는 40대에는 회사로부터 경제적으로 반드시 자립한다는 목표로 일반적인 한국인의 통념상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짓을 감행했습니다.
21대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에 경기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주춤하던 시절 기준으로도 10억을 훌쩍 넘었던 아파트를 나름대로 급매라면 급매로 팔아버렸습니다.
당시에 대출이 약 3억 5천만원 정도가 있었는데 부부합산 DSR로 봤을 때 16% 수준으로 높지 않은 빚이었지만 이마저도 없애 버리고 싶었습니다.
이 짓은 제 아내마저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소원이 내 집을 갖는 것 일지도 모르는게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이니까요.
"정신위생"
이제는 물러났지만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인 워렌 버핏은 딱히 건강관리랄게 없었지만 현재 나이가 95세 입니다.
그리고 그의 영원한 친구이자 이제는 하늘의 별이된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 찰리멍거는 99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역시 현대 의학에서 강조하는 건강한 식단이나 꾸준한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돈이 많았으니 돈으로 어떻게 해결했을 것이라 단정 짓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실 돈으로도 사기 어려운 것이 건강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장수 유전자를 타고난 것도 있겠으나 제가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정신위생"입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싫어하는 일이나 사람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는 삶의 자율성 (Autonomy)를 가졌습니다.
특히 멍거는 질투, 원한, 분노는 장수의 독이라 강조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머릿속에서 즉시 삭제하는 연습을 했고 이는 현대의학에서 제 1의 발암물질로 일컫는 스트레스를 제거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줬을 것이 분명합니다.
어쨌든 현대 의학으로도 달성하기 어려운 99세까지 생존을 달성했으니까요.
저는 하기 싫은 일과 마주치기 싫은 사람을 피할 수 있는 "삶의 자율성"에 큰 가치를 둡니다.
그래서 회사로부터 빠른 경제적 자립을 꿈꿔왔던 것이고요.
회사의 월급에 목을 매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꼽는 대출 마저도 삭제시켜 버리고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출을 갚더라도 아파트라는 자산의 가치는 보존되는데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느냐 할 수 있겠으나 제 기준에서는 이미 이 집을 파는데 총 9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을 경험했던 바,
환금성이 떨어지는 자산은 더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갖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이 더 강해질 뿐이었습니다.
돈에 삶이 얽매이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최근에 조기은퇴, 한때 유행했던 파이어족이 되기를 꿈꿔왔던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글의 제목과 같이 자발적인 FIRE로 현재의 높은 연봉과 그럭저럭 괜찮은 워라밸을 포기하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했거든요.
이 생각의 근간에는 ChatGPT, Gemini, Claude같은 LLM 생성형 AI의 등장이 있습니다.
차량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상당히 이른 시점에 코딩에 AI를 사용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2~3개의 AI 서비스를 월 3만원씩 지불하며 유료구독으로 사용한지도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1994년에 국민학교 입학을 시작으로 2006년에 서울소재 모 사립 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취업하기까지 경험했던 그 어떤 학습방법, 그리고 이 업계에서 10년넘게 있으면서 경험했던 그 어떤 개발방법 보다도 더 강력한 것이 등장했음을 체감하는 중입니다.
이것을 Singularity, 즉 특이점이라고 하던데 저는 이미 이 특이점 구간에 들어와 있고 제 삶을 변화시키는 중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일단 많은 일을 AI를 이용해서 더 빠르게,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처리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설명하자면 글이 장황해지니 한단어로 요약하자면 "개발 중에 난관에 봉착해서 삽질하며 보내는 시간이 사라졌다" 입니다.
그리고 한국 대기업 중에는 손에 꼽히는 재직 중인데 회사 실적은 분명히 호황임에도 신입사원 채용규모는 갈수록 줄어들고 대신 AI 인프라는 빠르게 확대되는 것을 보면 특이점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단 신규채용부터 축소되고 이후에 AI 기술이 더 업무에 깊숙히 스며들면 점차 일이 줄어들어 워라밸이 더욱 향상되어 하루 8시간 근무가 과연 필요한지, 주 5일제 근무가 필요한지, 혹은 회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고용할 필요가 있을지 고민하는 시점이 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고민은 현재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면 어차피 내가 파이어족으로써 조기은퇴를 자발적으로 시행하지 않아도 자율성을 확보하며 회사를 쭉 다닐 수 있게 되어 퇴사의 이유가 사라지거나, 혹은 경직된 한국의 고용환경 덕분에 공짜로 자발적 퇴사를 하지 않아도 또다시 두둑히 희망퇴직 위로금을 받고 조기에 은퇴하게 되는 찬스를 얻게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경영난으로 구조조정하는게 아니라 인건비를 절감해도 충분히 사업이 잘 되는 환경이 AI를 통해 달성되어 질 것으로 보이니까요.
그러나 저는 항상 명심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더라도 과도기인 지금시점에서 섣부르게 대충 어차피 그런 미래일 테니까, 라며 현실을 내려놓으려는 무모한 짓을 하기보다는 이미 내게 주어진 직장, AI기술을 잘 활용해서 어떻게든 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살아나가야 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