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0.5평, 안식처를 찾습니다

지금은 그것으로 만족해요

by 세오

광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기까지 19년,

대학에 입학해 서울에서 9년,

그리고 만 27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나의 유학생활은 지난 7월 코로나를 맞아 황급히 정리되었고, 다시 광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적응할 시간도 잠시, 미국에 있던 친척동생 또한 갑작스럽게 귀국했고 마땅히 격리할 장소가 없어 이 곳 광주 집을 비워주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언니와 막내 고모가 함께 살고 있는 서울 집으로 올라왔다. 이제는 맘 편히 정착하는가 싶더니 하는 수없이 다시금 새로운 곳에 머무는 철새가 된 것이다.




단 2주만 버티면 되지만, 서울로 올라온 둘째 날부터 간절하게 광주로 다시 내려가고 싶다. 그런 마음이 전해졌는지 연락하던 친구가 말한다. 고모집에 있는 것이 힘드냐며 간섭받는 것이 힘들겠다고. 그러나 딱히 간섭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 곳에 있으면 무엇인가 분노가 잘 참아지지 않는 것만 같다. 언니도 고모도 그 누구도 눈치를 주거나 간섭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이곳에 오자 마자 많은 것이 눈에 거슬렸다. 손댈 엄두도 나지 않게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 아무 계획 없이 놓인 것만 같은 모든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단지 내 눈에 불편함을 이유로 어제 도착하자마자 언니의 책상을 치우고 오늘 아침에는 기어코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도 계속 마음에 걸려서 오후에는 부엌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치웠다. 그러나 이 정도 가지고는 처음부터 잘못 선정되고 놓아진 것만 같은 것들을 고쳐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어차피 2주인데 하며 이곳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있었다. 사실 내 집도 아닌데 이런 분노를 품고 수고로움을 만들었다는 것에 황당하기도 했다.


그때, 저녁을 드시고 돌아온 고모가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오셨다. 창고에서 가져온 그것들로 기다렸다는 듯이 영점 오평 정도의 내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작은 공간은 놀랍고도 이상하게 불편하던 마음을 모두 가라앉혔다. 이 공간이 생기고 몇 시간째 이 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 문득 아름답지 않고 정리되지 않아 보였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그 점이 웃기고 황당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노트북 하나와 위태롭게 컵 하나 겨우 놓을 수 있는 테이블이 내 마음을 진정시켜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니 이것저것 생각해보았지만 그냥 나는 편안하다고 느낄만한 내 공간을 원했던 게 아닌가 싶다.




공간에 대한 집착은 꽤나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가구와 가구 사이에 이불을 걸어두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즐겼다. 예를 들면 에어컨과 소파 사이에 이불을 올려 작은 텐트와 비슷한 곳을 만드는 것이다. 좋아하는 퍼즐을 맞추다가 잘 풀리지 않으면 울면서 침대 밑에 들어가 누워 쉬기도 했다. 그러나 고요하고 온전한 내 공간을 늘 꿈꿔왔던 나에게 그것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새 집으로 이사가 새롭게 꾸며진 내 방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막내 고모의 방이 되고 말았다. 언니가 서울로 대학을 가고 나서 다시 생긴 나만의 방은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생이었기에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 있는 시간으로 지워져 버렸다. 게다가 대학생활에서 자취를 꿈꿨지만 당연하게 언니와 같이 살게 되었고, 물론 그 이후로도 단 한 번도 '내 공간을 온전히 가졌다'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짧은 내 1년의 미국 생활에서도 룸메이트 혹은 랜드로드와 함께 살았는데, 그나마 알 것만 같은 혼자만의 생활을 맛보았지만 무언가 완전하지 않은 기분이라서 이것으로 내 공간 마련의 꿈을 이루었다고는 할 수 없다.


어쩌면 진짜 내 공간을 마련해보고 나면 '별거 아니었네' 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만 28년이 지났어도 공간을 온전히 가지고 그곳에서 주체적으로 생활한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은 모든 것과 멀어져서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누리는 것은 혼자 찾아간 카페에서만 가능한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내 집 마련'은 많은 사람들의 꿈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억측이지만 요즘 카페 대유행의 시대가 온 것은 어쩌면 나처럼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갈급함이 가져온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