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선입견
"이 나이 즈음엔 이것을 해야해" 라는 말은 우리가 많이 들어온 말들 중에 하나이다. 안들어 봤다면 이런 질문은 어떤가? 20대 초반의 질문 "대학은 갔고?". 20대 중반의 질문 "군대는 다녀왔고?", "취직은 했고?". 20대 후반에서 미혼까지의 질문. "결혼할 사람은 있고?". 이것에 동의하는 사람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문장임은 분명하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 어긋남 없이 살려고 노력했었다.
고3때 였다. 수능이 끝난 후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한 친구, 바로 직장을 잡은 친구, 수능에 다시 도전하는 친구, 아무 생각 없는 친구등 여러가지 부류로 나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운좋게 수시에 붙었기 때문에 재수를 생각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너는 안돼, 그냥 점수 맞춰서 대학가" 라고 장난 섞인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다. 나도 잠시 재수라는 것을 생각했었지만 '1년을 버릴 수는 없지'라는 마음이 강했고, 그 해 3월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살갑게 연락하는 편이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누군가 알려주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타입이었다. 언젠가 친하게 지내던 친구한명이 나에게 친구들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재수했던 애들 2명있잖아. 한명은 재수학원에서 여자친구 사귀어서 완전 망했고, 한명은 우리학교 지원했는데 거의 될 분위기 라던데" 라면서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벌써 1년이 지나버린 건가. 시간 빠르네'
대학교 2학년이 되자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서로의 생활이 바빠졌다.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대화는 거의 줄었고, 가끔 소식이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가끔 연락오는 친구들에게 안부를 물을 뿐,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더 흘러 23살. 공익복무요원를 하고 있던 어느날.
그 녀석을 만났다.
(그 녀석은 위에서 재수했던 애들 중 한명으로 공부에 열심이 있던 타입의 친구였다. 그 친구와 나와의 집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
우연이었다. 나도 그 친구도 그냥 길을 걷다가 만난거였다. 서로 얼굴 근육이 씰룩 거렸고, 도대체 어떻게 지냈냐며 안부를 물었다. 내가 듣기로는 대학에 합격하고도 만족하지 못해서 반수를 했고 반수에 실패. 또 다시 수능 준비를 한다는 소문까지 들은게 다였다. 나는 대뜸 "수능 잘봤냐?"라고 물었고 친구는 더 좋은 대학에 합격을 했다고 이야기 했다. 나는 "잘 됐다" 라고 이야기 했지만 그 친구의 대답은 나를 경악하게 했다. "합격만 하고 그냥 말았어. 더 좋은 대학 가야지. 이렇게 했는데 SKY는 가야되지 않겠냐?" 후에 이어지는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근데 군대는 가야해서 이제 곧 군대간다."
나는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군대에 가게 되면 공부하기가 더 힘들 텐데, 합격하고 군대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군대 전역하면 친구의 나이는 25살. 1년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 26살. 졸업하면 30살. 나는 스트레이트로 졸업하면 27살인데...' 라며 친구의 처지를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지금와서 돌아보면 저런 생각들은 내 선입견에 불과했다.
그 녀석에겐 그 녀석만의 시간이, 나는 나만의 시간이 존재한것 뿐인데 말이다.
나는 그의 처지를 안타까워 하기 이전에 이런 의문을 가져야 했다. '30살에 졸업하면 인생이 망하는가?' 그 이전에 이런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재수해서 여자친구 사귀어서 수능을 망치면 안되나?' 더 이전에 생각을 바꿨어야 했다. '1년을 버릴 수는 없지'에서 '1년정도는 버릴 수 있지' 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난 그것을 내 생각으로 제단했다. '이 시간에 이것을 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 딱한 처지'라고 단정지어버렸다.
지금 와서야 나는 '공부할 시기가 따로 있다', '아직 결혼 안하니?' 라는 말에 반기를 든다. 사람은 각자의 인생이 있고,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의지가 있다.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했던 친구, 재수때 여자친구를 사귀었던 친구, 70대가 되서야 중학교 졸업장을 받으신 할머니, 수백번 시험 끝에 운전면허를 취득하신 분, 취업대신 창업을 선택한 사람, 대기업에 들어간 사람. 우리는 그들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다만 내가 선택했던 시간들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진짜 경험이 쌓인다. 그런 시간들이 모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가 된다. 마지막으로 나는 시간에 선입견에 사로잡혀 갈팡질팡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응원을 해 주고 싶다.
나이에 맞는 시간은 없다. 각자의 인생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