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주의자다.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by optimist

개인주의라고 하는 단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개인주의자 = 자신만 아는 사람이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가 만든 일종의 '통념'에 불과하다. 왜 사회가 이 통념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우리나라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상명하복의 사회요, 국가주의의 사회다. 학연, 지연, 혈연의 힘이 너무나도 강한 사회. 회사에 합격하기 위해서 모진 압박면접을 참아야 하는 사회. 회사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회. 부당한 명령이라도 선배, 팀장, 사수의 말엔 꿈뻑 죽어야 하는 사회. 나이가 많으면 장땡인 사회. 술자리에서 술을 거부하면 분위기 깬다고 믿는 사회. 국가가 있어야 개인이 있다고 믿는 사회. 멋진 대통령이 나와 어려운 사회문제를 한방에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사회가 우리나라의 본모습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개인주의란 이기주의로 치환된다. 대표적인 예가 위에 서술한 '술자리에서 술을 안 마시면 분위기를 깬다'는 개념이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대략 이렇다. 술을 못하겠다고 하면 "다들 하는데 너는 왜 안 하냐"고 비아냥거린다. 또는 "누구는 술 잘 마셔서 마시는 줄 아냐"며 도리어 화까지 내는 경우도 있다. '술 안 마시는 사람 = 팀워크를 해치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이 상황은 술자리 외에 많은 부분에 적용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가. 일반 사람들과 다른 선택을 하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튄다'라며 싫어했던 적이 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 질문하는 학생을 우리는 '쟨 뭔데 질문하나?' 고 한 번쯤은 속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학 때 교수님의 질의응답 시간은 침묵으로 가득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다.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심지어 유전자가 같고,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일란성 쌍둥이들도 각자의 모습이 다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개인주의의 시작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서로에 대한 포용력이 생긴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고 갸우뚱 거리지 않고,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렇게 때문에 서로의 선택을 존중한다. 서로의 선택에 간섭하지 않는다. 조언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각자가 보는 시선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더 확장시켜보자. 다름을 인정하면 양보도 가능하다.(나는 이것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 개인주의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어감상으로 불일치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개인이 개인을 존중해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외딴섬에서 살아야 한다. 매일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고(개인주의), 그것을 존중하면서 우리는 같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더불어).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개인주의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가지 시선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매우 동감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나만의 목소리를 내도 비난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을 때, 우리 사회가 더 풍성해질 것이라는 것도 믿는다. 나는 내 행복을 위해, 내 목소리를 존중해 주는 사회가 필요하다. 또한 다른 누구도 아닌 각자가 개인주의자가 되었을 때, 서로가 행복해지는 사회가 된다는 것을 믿는다.


마지막으로 '개인주의자 선언'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